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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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가 과대평가된 작가라는 생각을 그가 쓴 몇몇 소설들을 읽으면서 느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이번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프리모 레비나 조르조 바사니의 작품들처럼 부러 수고와 시간을 내서 전작을 읽지 않고 방치해 버렸다. 그러다 이번 여름 폭염 속에서,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읽으면서 그런 나의 편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후기에 작가가 친절하게 알려준 대로, 이 소설은 요즘 유행하는 노벨라처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그런 연애소설이다. 타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예능인을 연상시키는 이름의 광수가 자그마치 13년을 짝사랑해온 영문과 대학 동창 (이)선영과 결혼에 골인했다. 그런데 문제는 둘 사이에 동창 소설가 진우라는 장애물이 끼어 있었다는 점이다. 결혼식 날 선영이 던진 부케가 꽂혀 있던 팔레노프시스(호접란의 학명)가 꺾여 있었다는(deflower를 의미하는 걸까) 사실을 알게 된 광수는 절친한 친구 진우에게 맹렬한 질투와 시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말로 이런 쫀쫀한 사내 같으니라고 치부하기에는 셰익스피어의 무어인 총독 <오셀로>를 찜 쪄 먹을 법한 의심이 폭풍처럼 몰아닥친다. 내게 너무 늦게 도착한 작가라고 해야 할까? 김연수 작가는 <사랑이라니, 선영아>에서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모든 것이 금전출납부에 계량화된 수치로 찍혀야 안심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랑학개론과 부르주아 결혼 시스템을 설파한다. 플라톤의 <향연>과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넘나들며 독자에게 들려주는 2002년 러브 스토리의 핵심은 사실 사랑이 실은 공산품이었노라는 비밀이다. 모든 것이 휙휙 지나가 버리는 탈낭만주의 시대에 사랑은 그저 환상이고 음모이자 프로파간다란다. 개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랑은 천 송이 꽃의 마지막 한 송이를 채우기 위한 개인이면서 전체이고, 또 모두이면서 특별할 수밖에 없는 사랑에 대한 소심한 고백으로 다가온다.

 

 

문득 우리는 어떻게 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지 생각해 봤다. 숱한 공을 들인 질문과 대답의 과정을 통해 구체화된 호기심은 추상적 개념으로 진화하게 될 거라고 작가는 청산유수처럼 거침없는 서사의 힘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학생운동과 변절 운운하면서 선영과 광수의 집들이에서 세상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풀어내는 코드는 특히 일품이었다. 한편 작가는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고 점잖은 목소리로 충고를 아끼지 않기도 한다. 잘못하다간 주화입마, 아니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아니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지?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에 대한 대답에 대해서는 이렇게 절묘하게 빠져 나가 버릴 지도 모르겠다. You never know!라고.

 

결말을 향해 달려가던 소설에 나온 다음의 문장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네(119쪽).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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