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갔어, 버나뎃
마리아 셈플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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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시애틀에서 온 친구 한 명과 친하게 지낸 적이 있다. 커피와 책을 좋아하고, 날씨 탓인지 항상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친구였다. 비가 오던 눅눅한 날을 유난히 좋아하던 그런 친구로 기억된다. 반면, 랄라랜드(LA)에서 온 친구도 한 명 알았는데 시애틀 친구와는 정말 분위기가 달랐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그런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어제 읽은 마리아 셈플의 <어디 갔니, 버나뎃>을 읽으면서 친하게 지내던 그 두 명의 친구 생각이 났다.

 

이 소설은 랄라랜드에서 TV작가로 활약하던 마리아 셈플이 시애틀로 거주지를 옮겨 발표한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은 MS(마이크로소프트) 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 시애틀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연히 소설의 내레이션을 맡은 15살 짜리 꼬마 숙녀 비 브랜치의 아버지 엘지도 MS에서 250명의 휘하 직원들을 거느리고 잘 나가는 서맨사 2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특급 코드 원숭이(프로그램 설계자). 딸의 졸업선물로 남극탐험을 떠나기 며칠 전, 비의 괴짜 엄마 버나뎃 폭스가 갑자기 사라진 원인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푸는 것이 <어디 갔니, 버나뎃>의 주요구성 얼개다.

 

한때 사커맘으로 알려진 극성 엄마들처럼 미국에서도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시켜주고 싶은 엄마들의 맹모삼천지교를 육박하는 교육열은 뜨겁다 못해 데일 지경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의 재미를 위해 전격투입된 오드리 그리핀이라는 열혈 사커맘이 등장한다. 오드리는 자신이 주도하는 학부모회의 모든 일에 시큰둥한 이웃 버나뎃의 네메시스 같은 존재다. 자신의 정원을 침범하는 집이라고 부르기 조차 민망한 버나뎃네 블랙베리 덩굴을 제거하는 것을 필두로 해서, 각종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오드리를 버나뎃은 각다귀떼라 부르며 경시하니 이 둘의 다툼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참 한 가지 빼 먹은 점이 있는데 소설의 전개는 다양한 방식의 커뮤케이션 방법으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메일로 시작해서, 팩스, 손으로 직접 쓴 쪽지, 편지, 의료상담 내용 그리고 심지어는 FBI 수사기록에 이르기까지 전업 TV작가 답게 다양한 방식의 소통 수단을 이용해서 어떻게 해서 한때 촉망받는 건축가로 잘 나가던 버나뎃 폭스가 시애틀 촌구석의 집까지도 않은 집에 사는 괴짜가 되었는지 독자는 알게 된다. 좀 입맛이 씁쓸해지는 부분은 그 모든 것이 여피족인 부모, 특히 MS의 기대주 아버지 엘지 브랜치가 밤낮없이 일한 덕에 벌어들인 재정적 여유에 기반한 삶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4만 달러가 훌쩍 넘는 사립학교 등록금에, 남극 크루즈여행이라니! 그냥 재미로 본다면 모르겠지만, 최근 벌어진 구의역사건으로 흙수저 금수저 논쟁이 격화되고 있는 사실을 그냥 간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버나뎃과 엘지 가정에 불화의 원인이 되는 한때 너무 잘 나가다가 주위의 시기와 질투로 꿈을 접고 랄라랜드를 떠나 시애틀에 정착한 이유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버나뎃의 과거가 드러내 주는 건 소설의 전개상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겠지만, 동부의 유명 사립학교 출신에(엑세터와 초트 출신이다) 아이비리그 출신의 부모라는 설정은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물론 과거의 맥아더 수상자가 유사 약물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괴짜가 되었노라는 설정이 소설의 전개상 과하다는 건 아니지만. 무엇이든 가능한 것이 소설적 상상이 아니었던가.

 

책을 읽기 전에 유튜브를 통해 마리아 셈플 작가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았는데, 실제로 처음에 시애틀에 정착했을 당시에는 외지인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설의 상당 부분이 작가의 자전적 경험에 의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소설에서 발라크리슈나(비 브랜치)가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을 그런 다양한 삶의 체험(엄마의 실종, 아빠의 의도하지 않은 외도, 유명 사립학교에서의 적응과 월반 등)을 통해 다른 단계의 삶으로 전이 혹은 발전해 나가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 속에서 한 가지 정도의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미래로 전진하는 발목을 잡는 트라우마들을 다루면서 사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은 마치 발라크리슈나가 아버지 엘지와 남극여행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비 브랜치가 궁극적으로 엄마 버나뎃을 찾는 장면은 가히 해피엔딩을 위한 소설적 판타지에 가깝지만 말이다.

 

, 한 가지 말하고 싶은 점을 빼먹을 뻔 했는데 만사가 다 귀찮은 버나뎃이 인도에 있는 가상비서 만줄라 카푸어를 시간당 75센트에 고용해서 병원예약을 잡고, 시애틀에서 잘 나가는 식당예약을 하고 온갖 잡다한 일을 시키는 장면에서는 정말 빵 터졌다. 나중에 인터넷 사기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남편 엘지가 MS에서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고 있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현실 삶에 적용시키기 위한 서맨서 2 프로젝트의 본질을 아내 버나뎃은 이미 현실세계에서 충분히 이용하고 있지 않았던가. 너무 멀어 보이는 이질적 간극은 사실 뒤집어 보면 그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사커맘 오드리가 그렇게 열불 내면서 아들 카일을 위해 악전고투했지만, 마약쟁이가 된 카일 때문에 호텔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체포되는 장면은 정말 통쾌했다.

 

<어디 갔니, 버나뎃>은 나중에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주얼한 점에서 특출한 장면들이 많았다. 나중에 소설이 영화화가 된다면 조조 모예스처럼 마리아 셈플 작가가 직접 각색을 맡을까하는 점도 궁금하다. 결말 부분이 생각보다 좀 약했지만, 충분히 재밌는 소설이었다.

 

[뱀다리] 소설에서 버나뎃은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덕분일까.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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