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 발칙한 혁명 - 비틀스, 보브컷, 미니스커트 - 거리를 바꾸고 세상을 뒤집다
로빈 모건.아리엘 리브 지음, 김경주 옮김 / 예문사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우울한 이야기로 리뷰를 시작해 볼까. 지금으로부터 그러니까 반세기도 전인 53년 전인 1963년에 가능했던 그 모든 게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말이다. 가위와 펜, 붓 그리고 기타로 무장한 베이비붐 세대는 영국에서부터 하나의 혁명을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문명 자체를 시험에 들게 했던 전대미문의 전쟁이 끝난 뒤, 대륙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탱했던 대영제국은 빈사상태에 빠져 버렸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식민지들은 하나둘씩 독립을 쟁취했으며 식민지 모국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식량배급 제도로 자국민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간신히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을 세계 곳곳의 전쟁터로 보내지 않아도 될 징병제가 폐지되면서 비로소 새로운 세대에 의한 혁명의 맹아가 싹텄다. ‘젊은이 반란의 해라고 명명된 1963년 어느날 비틀스와 뉴욕 출신의 음유시인 밥 딜런이 대영제국의 공중파 방송을 통해 데뷔하면서 공식적인 반란이 선언됐다.

 

<1963 발칙한 혁명>의 저자 로빈 모건과 아리엘 리브는 생존한 63 혁명 세대의 생존자 48명을 상대로 한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부활시킨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가능했다. 지금처럼 살인적인 주거비가 들지도 않았고, 도처에 일자리에 널려 있었다. 획기적인 피임약의 개발로 프리섹스주의가 만연했고, 리버풀이나 뉴캐슬 지방에서 튀어나온 노동자 출신 밴드가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고리타분한 영국 고래의 계급주의를 일거에 해소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다. 가령 예를 들어 롤링 스톤스(이하 스톤스라 부르겠다) 같은 밴드의 경우만 하더라도, 중산층 출신의 보컬리스트 믹 재거와 나머지 노동자 출신 멤버들의 이질적 집단이었다. 이들은 미국 시카고발 리듬 앤 블루스 가락을 바탕으로 해서 머디 워터스와 척 베리를 추종하며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개발해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경이적인 사실 중의 하나는 블루스 기타의 신이라 추앙받는 에릭 클랩튼과 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가 사실은 악보조차 볼 줄 모르는 기존 음악에 대한 문외한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해 본다면, 이런 점이야말로 기존 질서를 뒤엎은 천재들에게 그런 장애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기타를 잡은 청년들이 놀고 먹는 클럽문화의 전위대였다면, 패션 계에서도 역시나 그런 스타들이 존재했다. 지금은 고등학생들까지 즐기는 미니스커트의 실질적인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메리 퀀트의 옷을 입고, 비달 사순에게 머리를 맡긴 젊은이들이 런던을 뒤덮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머리는 어머니가 잘라 주었으며, 옷도 어머니가 물려주신 옷들을 입던 그들에게 기상천외한 헤어스타일과 저렴한 비용으로 마음껏 옷을 사 입을 수 있는 부티크들이 넘실대는 런던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던 모양이다. 테리 오닐이라는 불세출의 사진가는 바로 그 시절을 카메라 앵글에 담는데 전력했노라고 저자들은 증언한다. 데이비드 베일리라는 사진가의 이름 역시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봤고, 최초의 슈퍼모델 타이틀에 빛나는 진 쉬림튼도 생소하기만 했다.

 

한편, 일체의 규제의 속박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음악을 생산해내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넘치는 당대 음악계의 모습은 거대 메이저 음반회사나 기획사에 소곡된 아티스트들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음악을 생산해내는 오늘날의 그것과는 천양지차의 모습이다.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들의 후예들이 어쩌다 오늘날 기성세대의 그것을 뛰어 넘지 못하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가두리에서 뛰노는 신세가 되었을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1963 발칙한 혁명>의 저자들은 대서양 왼편의 미국보다 반대편의 영국에 좀 더 비중을 둔 느낌이 든다. 전술한 대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동질의 영어문화권이라는 바탕에서 미국과 영국은 서로 상호보완하며 문화혁명을 선도해 나갔다. 미국 음악의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이 밴드를 조직해서 소위 말하는 첫 번째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에 나선 반면, 미국에서는 리듬 앤 블루스와 소울로 무장한 걸출한 뮤지션들이 차례로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한때 자동차의 천국이라 불리던 디트로이트 모타운 출신의 마빈 게이를 필두로 한 일단의 그룹들에 대한 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개인적으로 여성보컬그룹 슈프림스와 다이애너 로스에 대한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던 소녀들이 마침내 빌보드 차트를 정복했지만, 터무니없는 불공정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던 현실에 대한 리포트가 이어진다.

 

말미로 가면서 미국의 가장 젊은 대통령이었던 JFK의 죽음에 대한 애도 그리고 곧 망각에 빠진 이들이 이제 막 미국에 상륙한 비틀스를 필두로 한 영국 밴드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케네디의 암살은 신장하고 있던 시민권 운동의 종말이기도 했다. 영국의 젊은이들은 무엇이든 시장에 나오는 대로 소비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시기에 등장한 밴드들의 음악은 무한정으로 팔려 나갔고, 메리 퀀트와 비달 사순이 창조해내는 스타일 역시 비슷한 속도로 소비되었다.

 

한 가지 재밌는 점 중의 하나는, 당대를 살았던 셀리브리티들이 나이 들어 회고하는 장면이 상당 부분 미화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마리화나와 각성제, LSD를 즐겼지만 자신은 안하고 대신 와인을 마셨다고 했건다. 영국 보수당 맥밀런 정권을 공중분해시킬 뻔했던 프러퓨모 스캔들에 연루된 맨디 라이스-데이비스은 자신이 빌 애스터 의원의 공공연한 정부(情婦)였노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이 내용은 훗날 뮤지컬로도 제작되었단다. 히트 차트에 들기 위해 자신들의 음반을 사재기하기도 했노라는 고백도 이어진다. 지금이라면 비도덕적이라며 비난받을 만한 일들이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시절을 체험한 노동계급 출신 스타들이 이제 꼰대가 되어 기사 작위를 받으며 기득권층이 된 지금, 반세기 전의 그런 혁명은 이제 어디에서고 가능하지 않다. 빅뱅을 외치며 무한자유를 주창하던 이들이 이젠 반혁명의 선봉에 서 있는 역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963 발칙한 혁명>은 반세기 전 시대를 바꾸었던 젊은이들의 반란의 이모저모를 자세하게 취재한 흥미로운 보고서다. 동시에 그 시대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변명이기도 하다. 물론,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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