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호 품목의 경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7
토머스 핀천 지음, 김성곤 옮김 / 민음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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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토머스 핀천의 작품을 읽었다. 그의 작품 중에서 그나마 가장 대중에게 쉬운 편이라는 <제 49호 품목의 경매>는 전혀 이해하기 쉽지도, 주인공 에디파 마스를 따라 약음기가 달린 우편 나팔이 상징하는 트리스테로의 비밀을 찾는 여정도 생각처럼 즐겁지 않았던 것 같다. 은둔의 저자 토머스 핀천이 29세의 나이에 두 번째로 발표한 <제 49호 품목의 경매>는 그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중력의 무지개>(1973)의 전주곡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는 글을 읽고 소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언제 읽을지 모르는 걸작에 대한 경외감에 압도됐다고나 할까.

 

특이하기 짝이 없는 이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정말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소개된 논문을 참조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이 정말 이해가 갔다. 소설이 쓰인 1960년 중반은 세계를 제패한 미국이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번영하던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미국의 생산력은 세계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 1964년 대선과 의회선거에서의 민주당의 압승과 동시에 진행된 흑인인권운동을 필두로 해서, 페미니즘 운동, 확전일로에 있던 베트남 전쟁, 록 혁명, 마약문화의 범람 등의 진보적 흐름이 대세였다. 바로 그 시절에 우리의 주인공 에디파 마스는 전 애인 피어스 인버라리티의 유언 집행인이 되었다는 편지를 받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모험에 나서게 된다. 누군가의 죽음이 주체적 자아로 진실을 추구하게 되는 주인공의 자각을 인도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중고자동차 거래를 하다가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게 된 남편 무초 마스의 아내로 전업주부였던 에디파는 아이젠하워 보수정권 아래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녀의 거주지는 무려 캘리포니아다. 아름다운 자연풍경에 부족한 것이 없는 그야말로 젖과 꿀 그리고 무한정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지상천국 캘리포니아! 그런 그녀에게 히피문화로 대변되는 자유의 물결이 넘쳐나는 시대는 역설적으로 신경증을 유발시켰을 지도 모르겠다. 시도 때도 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환각 증세를 유발하는 약물(LSD)의 효과에 묻는 그녀의 담당 정신과 의사인 힐라리어스야말로 에디파의 신경증을 유발하는 장본인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피어스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샌나르시스(역시 그리스 신화 나르시소스를 연상시킨다)를 찾아간 에디파는 공동유언 집행자인 변호사 메츠거와 만나 스트립 보티첼리 게임을 하며 자연스레 공공연한 불륜관계를 갖게 된다. 뭐 이 정도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소설의 주인공 에디파의 이름은 분명 고대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주인공 오이디푸스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자기 출생의 비밀과 숙명을 알게 되는 오이디푸스처럼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온 에디파도 중부유럽에서 발생한 우편조직인 <툰과 탁시스>와 경쟁관계에 있던 트리스테로의 비밀을 파헤치게 되는 운명이 주어진다. 고작 화장실에서 한 번 본 약음기가 날린 우편나팔의 상징을 쫓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에디파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대중이 느끼는 공포와 소외를 체험하게 된다. 지금 같은 후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보면 평면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설정이 1966년에 되었다고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에디파가 처한 상황은 그동안 그녀가 살아온 인식세계에서 탈피해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새로운 정보들을 분석하고 취합해서 판단하라고 강제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미스터리와 새로운 인물들과의 접촉은 독자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하긴 수백 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중력의 무지개>에 비하면 <제 49호 품목의 경매>는 워밍업 정도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토머스 핀천이 구사하는 서사 구조는 갖가지 상징과 은유로 점철되어 있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어서 이현령비현령 식의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 정도다. 현재까지도 작동하는 지하 우편조직 트리스테로의 존재는 정보의 전달을 담당하는 미합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우편제도에 맞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에디파는 우연히 접하게 된 연극 <전령의 비극>을 통해 트리스테로 비밀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하위문화가 사람들의 무의식 세계를 대변한다고 가정해 보면 연극 무대에 나온 이야기들을 단순하게 볼 수만은 없다고 에디파는 판단한 걸까. 까면 깔수록 그 정체를 알 수 양파처럼 트리스테로의 비밀은 미스터리의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시대를 휩쓸던 마약 이슈에서부터 서브컬처 연극 그리고 맥스웰의 수호정령이라는 이름 아래 엔트로피 이론과 열역학 제2법칙까지 과학까지 아우르는 연결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게다가 프리메이슨 뺨치는 트리스테로라는 비밀결사 조직까지 등장하니 작가가 도대체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에디파는 트리스테로를 추적하는 가운데 소외를 상징하는 모든 것에 약음기가 달린 우편나팔이 나타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매카시즘이 판치고, 보수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보통사람 에디파도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새로운 시대에서 소외된 인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트리스테로의 상징을 볼 수 있었다는 말일까. 에디파 외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남성들인데 에디파와 접촉한 남성 타자들은 하나 같이 기인한 결말을 맞게 된다. 이미 유언장을 남긴 피어스는 죽었고, 남편은 자신이 떠난 LSD 중독자가 되었고, 나치에 협력했던 과거가 드러난 힐라리어스 박사는 총기난동을 부린다. <전령의 비극> 연극 대본의 비밀을 알려준 남자 역시 대서양 바다로 투신을 해버렸고, 메츠거는 나이 어린 여자와 바람이 나서 도망가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마지막 경매에 등장하는 인물이야말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착시현상을 갖게 만들어주지만 결국 독자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죽었다고 알려진 피어스 인버라리티가 꾸민 일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을 것 같다.

 

솔직히 소설이 너무 어려워서 도움을 받은 박은정 씨의 논문에 따르면 이야기의 원래 목적인 경험의 교환과 조언이라는 유용성이 그런대로 작용하고 있던 사회가 지식과 정보의 전달을 담당한 공식적인 우편제도의 등장으로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시절보다 훨씬 더 문명이 발전되어 정보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고급 정보들을 선별해낼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 퇴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쩌면 토머스 핀천의 이 소설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특징 중의 하나를 정확하게 꼬집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온갖 상징과 은유로 범벅이 된 작품 속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구도자로서 에디파의 이미지가 현실을 사는 우리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그만큼 매력적일 지도 모르겠다. 다 읽고 독서모임에 나가서도 수많은 이야기들을 털어 놓았지만 여전히 진실의 벽은 저 멀리 있다는 느낌이다. 여전히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은 내게 도전의 대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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