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뜨기 부처
하니프 쿠레이시 지음, 손홍기 옮김 / 열음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아침 출근길에 록웰의 <Knife>를 들었다. 예전에 어려서 팝송을 신나게 듣던 시절에 좋아하던 노래라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옛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매개로 음악만한 게 또 있나 싶어졌다. 지난 며칠 동안 읽은 하니프 쿠레이시의 <시골뜨기 부처>는 아마 1990년대 독자들에게 1970년대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는 그런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사실 1970년대, 그것도 영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작가의 인도를 따라 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소화해낸 느낌이다.

 

원래 영화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쿠레이시의 소설 데뷔작이기도 한 <시골뜨기 부처>의 주인공은 사우스런던에 사는 17살난 카림 아미르다. 소설에서 사우스런던이라는 교외, 혹은 제목에서 지칭하는 대로 시골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시간적 배경은 1970년대로 비트 제네레이션의 세례가 아직 지나가지 않은 듯, 잭 케루악의 소설 제목 <다르마 행려>가 눈에 띄어 반가웠다. 게다가 카림은 인도 검둥이라 불리는 혼혈이기도 하다. 아버지 하룬/해리는 모국 인도 봄베이 출신의 잘 나가는 집안 출신이었다고 하는데, 식민모국 영국에서는 하급 공무원으로 봉직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부처 행세를 하며 영적으로 갈급한 이들에게 요상한 계시를 하며 일약 스타가 되기에 이른다. 하룬은 영국에 정착해서 산지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길치고, 아들 카림을 내세워 모임장소인 에바 케이의 집으로 향한다. 카림이 그곳에 목격한 것은 앞으로 펼쳐질 가정파괴의 전주곡이었다.

 

늘씬한 외모의 소유자 에바와 결국 바람이 난 아버지 하룬은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살림을 차린다. 두 아들 중, 앨리는 어머니가 그리고 카림을 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소설은 교외에서의 삶과 성공을 위해 달리는 에바의 노력으로 욕망의 도시 런던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도 검둥이라는 둥, 카레 칠을 한 얼굴이라는 인종차별적 비하와 심지어 길가다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인 교외에서의 삶은 영국으로 이주한 인도 사람들의 갈등을 정확하게 타격한다. 게다가 아버지와 함께 봄베이를 떠나온 안와르 아저씨는 자신의 딸 자밀라(급진적 진보주의자)의 사위로 자신과 같은 봄베이 출신의 샹제를 점지해서 데릴사위로 들이는 구식 결혼을 추진한다. 이미 자밀라와 숱한 섹스를 해온 카림에게 이런 상황은 불편할 수밖에. 게다가 샹제와 절친한 사이가 되었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결국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한 자밀라는 샹제와 부부가 된다. 그들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 그런 어정쩡한 관계의 법적 부부일 뿐이다. 한편, 아버지 하룬은 물질적 성공만을 추구하던 이모부 테드에게 모든 것을 털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예시를 던져 멀쩡한 남자를 신경쇠약에 걸리게 만든다. 어쩌면 소설 <시골뜨기 부처>는 영국의 1970년대 막장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중요한 인물을 하나 빼먹었는데 카림의 새어머니 에바의 아들인 찰리 케이/히어로가 그 주인공이다. 초반부터 모든 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찰리는 결국 팝스타의 길을 걸으며 성공가도를 달린다. 카림은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찰리에게 동성애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살짝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사우스런던의 교외에 사는 모든 이들은 구질구질한 삶에서 탈출해서 신세계처럼 보이는 도시 런던행을 꿈꾼다. 그것은 마치 영국 제국주의의 침탈당한 식민지 인도 사람들이 꿈꾸는 영국행을 연상시킨다. 그렇게 영국에 도착한다고 해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신사의 나라 영국 사람들이 보여주는 노골적이지 않지만 파렴치한 차별이 아니었던가. 쿠레이시 작가는 그런 민감한 이슈에 더해,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유머를 섞어 넣는다. 회교도 출신 하룬이 부처 행세를 하자 배교자라는 표현을 쓰질 않나, 회교도 안와르 아저씨가 돼지고기 파이를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해치우고, 샹제와 결혼한 자밀라와의 질탕한 사랑놀음 장면을 친구가 목격하는 장면을 보라. 마냥 웃을 수만 없는 그런 스타일의 은근한 유머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안와르 아저씨가 운영하는 파라다이스 가게에서 벌어지는 소동과 해프닝은 정말 대책 없다.

 

소설의 1부 <교외에서>가 워밍업이었다면, 아미르 일가가 도시 런던으로 뛰어든 2부 <도시에서>는 한층 더 가열된 그들의 욕망이 분출한다. 에바는 아파트 인테리어를 해서 되파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해 나가는 부동산 개발업자로 변신하고, 주인공 카림은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매튜 파이크를 통해 연극배우로 발탁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그 와중에 같은 극단 소속의 엘리너와 유사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1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하룬은 2부에서는 영성을 잃고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카림이 처음 맡은 배역을 뼛속까지 제국주의자였던 루디어드 키플링의 <정글북>에 나오는 정글소년 모글리였다. 어때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도시에서의 세련된 삶을 동경해온 카림에게 주어진 역할은 인도 토속 억양에 히피족과 펑크족이 물결이 이루던 당대에 반하는 옷 같지도 않은 팬티 하나 달랑 걸친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2세대 이주문학의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힌다는 쿠레이시는 바로 그런 역설에 주목하고 있다. 아무리 영국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경고일까. 소설에는 수많은 경고와 교훈들이 등장하지만 이주민 자신이 느끼는 정체성 이슈에 대한 울림에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잘 나가는 찰리의 뉴욕행에 동승하기도 하고, 한 순간의 성공에 탐닉하기도 하지만 십대 소년에서 이제 이십대에 접어든 카림은 주위의 모든 것들에 대해 회의적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특히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었던 엘리너의 관계가 사실은 자신의 성공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연출가 파이크의 농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런던으로 돌아오게 된다. 3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에 보통 사람이라면 체험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체험한 소년은 성장해서 삶이 행복만으로 가득하지 않고, 비통함도 느껴야 하며 무엇보다 익숙해진 것들이나 길들여진 것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삶의 진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주변의 산재한 가치들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된 것이야말로 카림의 이야기에서 얻은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자 이제 아쉽게도 나의 하니프 쿠레이시 작가의 독서 여정은 이제 단 한 권(<바디>)만을 남겨 두고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작품이 달랑 세 편 뿐이니 어쩔 수가 없다. 열음사에서 시나리오 <마더>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소설의 뒷날개에 적혀 있었는데 현실화되지 않은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한 작가의 글 세 편 정도는 읽어야 그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다행인지 그 기준은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꽤 두툼한 책이었는데 예상 외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올해 만난 베스트 10에 넣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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