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세계문학의 숲 40
카슨 매컬러스 지음, 서숙 옮김 / 시공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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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카슨 매컬러스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다 읽었다.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사실 집중해서 읽었다면 2-3일이면 다 읽었겠지만, 그 사이에 내 관심을 파고든 하니프 쿠레이시의 책들을 만지다 보니 좀 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해서 마무리 짓지 못한 책들이 몇 권이던가.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는 아직도 다 못 읽었다.

 

이 책 역시 역시 올해부터 관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모던 라이브러리 100선 중의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미국 출신의 카슨 매컬러스가 23세에 쓴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소설에는 모두 6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벙어리 유대인 존 싱어와 그의 절친한 친구 스피로스 안토나풀로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남부의 어느 소도시에 자리한 뉴욕 카페의 주인장 비프 브레넌, 고작 14살 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외국에 나가 자신만의 공간에서 살며 하고 싶은 일을 하겠노라고 일기장에 꼬박꼬박 적어대는 믹 켈리, 알콜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떠돌이 제이크 블런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흑인 계몽을 위해 자신을 바친 코플랜드 박사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외로운 영혼들이다. 친구 안토나풀로스말고는 달리 친구가 없는 존 싱어는 은둔자 같은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태양 주변을 맴도는 위성들처럼 존 싱어의 주변에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하나둘씩 모여 들기 시작한다. 당찬 소녀 믹 켈리는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돌보며 하루를 보낸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지만, 시계수리를 하며 사는 켈리 집안에서는 불가능한 꿈일 따름이다. 직업학교에 진학해서도 작곡 공부를 하며 돈을 모아 피아노 살 궁리만 하는 켈리. 동생 버버가 장난삼아 쏜 총에 진짜 탄환이 이웃집 베이비의 머리에 맞으면서 단란해 보이던 가정에 곤궁함의 폭풍이 몰아닥친다. 그녀에게 위층에 세들어 사는 존 싱어는 경외의 대상이다.

 

뜨내기 제이크 블런트 역시 마찬가지다. 오갈데 없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뉴욕 카페의 주인장 비프 브레넌처럼 존 싱어는 제이크에게 당장에 급한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해준다. 말을 하지 못해 한이 맺힌 사람처럼 제이크는 1930년대 말 미국 사회가 당면한 온갖 문제점들에 대해 토로하며 주변 사람들이 각성하지 않음을 광야의 선지자처럼 외치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공허하기만 하다. 그런 제이크에게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는 존 싱어와 그가 머무는 거처는 하나의 안식처로 작동한다. 존을 유일한 친구로 인정한 제이크는 숱한 방문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 초반에 무엇보다 음식을 좋아하는 스피로스 안토나풀로스는 일탈과 기행을 일삼다 결국 주립 정신병원에 보내지게 된다. 존 싱어가 누리는 행복 중의 하나는 친구들의 방문과 멀리 병원에 갇힌 신세가 된 안토나풀로스를 찾아가는 일이다. 여러 가지 선물을 준비해 가지만, 존의 뚱보 친구는 색다른 먹거리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평소 차분한 성정의 존은 오랜 친구를 대면하는 순간 수다쟁이가 되어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며 안토나풀로스에게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풀어 놓는다. 물론 안토나풀로스는 싱어의 말 아니 수화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대개 우리의 관계란 그런 일방통행이 아닐까. 삶에서 상호간의 교감을 이루는 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카페 뉴욕의 주인장 비프 브레넌도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제이크 블런트 같은 이에게 동정을 아끼지 않는다. 사실 장사에도 별로 뜻이 없어 보인다. 사랑하는 아내 앨리스를 잃고 나서도, 그는 영업을 계속한다. 마치 카페 문을 닫는다면 자신의 생이 다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이다. 매일 치의 신문을 모으는 기벽도 가지고 있다. 도대체 그 많은 신문을 모아서 다 어쩔 것이냐는 죽은 아내의 지청구도 모른 척하고 심지 굳은 사내는 자신의 할 일을 다하고, 카페를 24시간 돌리는 데 전력을 다한다. 카페를 찾아 담배를 사서 피우는 14살 짜리 꼬마 믹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다 지나 가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철저하게 주변인을 자처하면서도 소설의 한 풍경을 담아내는 인물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인물은 바로 코플랜드 박사다. 1930년대 대공황의 여파에서 막 벗어나는 순간의 미국 남부 시골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보인다.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세례가 도착하지 않는 미국판 벨 에포크 시대라고 해야 할까. 카슨 매컬러스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시대적 공간에서 동족에 대한 계몽을 평생의 임무로 삼은 박애주의자의 초상을 담대하게 그려낸다. 적어도 자신이 낳은 네 명의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아내 데이지와의 결혼생활도 지켜내지 못했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들과의 끊임없는 불화로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근처 켈리네 집에서 집안일을 도와주는 막내딸 포셔만이 왕래하면서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해주고, 음식도 해주는 일상의 풍경을 볼 수 있다. 한편 무신론자인 아버지 코플랜드 박사와 달리, 독실한 신자인 포셔는 혈육인 윌리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 생활을 하던 중에 백인 간수들의 가혹 행위 때문에 두발을 잃게 되자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아버지 코플랜드 박사 역시 판사에게 항의를 하러 법원을 방문하지만 보안관 일행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얻어터지고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소설은 그렇게 후반부로 가면서 모두가 행복했노라는 해피엔딩 대신 피할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938년과 1939년은 유럽 대륙에서 파시즘이 대두하고 있던 시기였다. 파시즘의 본질을 알지 못했던 꼬마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 국가의 본질을 일찌감치 깨닫고, 그들을 증오한다고 이웃의 믹에게 선언한다. 제이크가 일하는 서니 딕시 쇼단의 놀이공원에서는 흑인과 백인들이 충돌해서 결국 살인사건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그 중의 한 희생자는 코플랜드가 5달러 상을 준 랜시 데이비스였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꼬마 소년은 백인에 대한 흑인들의 증오를 숨기는 대신, 백인들을 내쫓고 흑인들이 지배하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황당한 생각을 당당하게 발표한다. 흑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폐병까지 숨겨 가며 전력투구하던 코플랜드 박사는 아들의 억울한 사정을 백인들의 방식으로 처리해 보겠다고 나섰다가 그들에게 말도 되지 않는 린치를 당하고, 가족들과 함께 낙향을 선택한다. “소도시”는 순수함과 동시에 끊이지 않고 유전되는 인종간의 폭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기묘한 공간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냉장고가 없어 아이스박스가 그 역할을 대신 하던 시절, 그리고 자동차 엔진의 시동을 걸기 위해서 크랭크를 돌려야 하는데 지나가는 흑인에게 명령하던 시절의 생경함이 소설의 곳곳에 묻어난다. 소설 <스톤 다이어리>에도 등장했던 1934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다섯 쌍둥이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카슨 매컬러스가 그냥 소도시라고 부르는 뉴욕 카페가 있는 마을에도 대공황 탈출기에 있던 미국의 날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일상화된 인종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심판의 날이 곧 올 것이라는 광신도의 모습을 비롯해서 제이크로 형상화된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의 목소리도 들리고, 장애를 가진 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꼬마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소녀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미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의 하나인 총기사고까지 빠지지 않고 소설은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미국 사회는 그 시절보다 더 나아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카슨 매컬러스의 소설은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정치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을 빼놓지 않는 절묘한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물론 그 중심에는 제목에서 말하는 ‘외로운 사냥꾼’들의 이야기가 서 있다. 모두가 외롭다고, 비록 물리적 대화를 나눌 순 없지만 예의 공간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 준다고 생각하는 벙어리 존 싱어에게 달려가 하소연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을 고작 23살 짜리 아가씨(이 소설이 발표됐을 때 이미 유부녀였던가)가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아무리 현대판 고전이라고 하지만, “고전이 다 그렇지 뭐”라는 나의 편견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상당 부분 교정되어야 할 것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 소설이 매력적이라는 말이다. 카슨 매컬러스는 생전에 모두 4편의 장편소설과 한 편 단편소설집(슬픈 카페의 노래)를 발표했는데, 마침 절판된 열림원에서 출간된 <슬픈 카페의 노래>가 집에 있기에 시간 나는 대로 도전해봐야겠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표지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좀 더 고색창연한 카페 테이블 사진이었다면 좋았겠지만.

 

[리딩데이트] 2015년 11월 8일 ~ 14일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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