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갈증
미시마 유키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미시마 유키오에게 천황제 부활을 요구하는 쿠데타를 선동하다가 스스로 배를 째고 죽은 극우 파시스트 문인이라는 레테르를 붙이고 그의 책을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여름, 한국을 대표한다는 소설가가 탐미주의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작가이길래 베낄 정도인가 하고 말이다. 그의 장편소설 데뷔작이라는 <가면의 고백>은 독서모임 때문에 구입하긴 했지만 역시 읽지 않았다. 최근에 그의 대표작이라는 <금각사>도 구입하긴 했지만, 머뭇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서커스 출판사에서 나온, 하지만 이젠 절판되어 구할 수조차 없는 <사랑의 갈등>이라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내용을 살펴보니, 이건 1950년대판 막장 드라마가 아닌가. 탐미주의 작가가 쓴 막장드라마에 호기심이 발동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절판본이라니 더더욱.

 

지난 주에 독서모임에 나갔다 와서 미시마 유키오의 이름을 듣고 나서 도서관에서 <부도덕 교육 강좌>라는 50년대 에세이집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속에서 만난 미시마 유키오는 내가 알고 있던 극우 파시스트 미시마 유키오와는 너무 다른 유쾌한 모습이어서 좀 당황스러웠다. 특정인에 대한 편견에 대한 교정이 필요한 걸까.

 

미시마 유키오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출신의 수재로, 대장성에 근무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문재를 보인 이 천재작가는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그리고 <가면의 고백>(1949)과 <금각사>(1956)를 비롯한 일단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일약 일본의 전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심지어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노벨문학상 후보가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신빙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극우 파시스트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다가 결국 만 45세의 나이에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런 희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사랑의 갈등>은 태평양 전쟁의 참담한 패전 후, 오사카 근처의 마이덴이라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치정극을 그 중심에 두고 있다. 스기모토 야키치는 도쿄 출신으로 고학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오사카에서 상선회사에 다니면서 일가를 이룬 그야말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야키치는 특히 군부에 대해 악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질 수밖에 없는 전쟁에 나선 군부에 대한 미시마 유키오 사고의 투영이 아닐까 싶다. 소작농 아들 출신답게 마이덴 마을 근처에 1만평이나 되는 대지를 사고 은퇴 후, 식솔들을 거느리고 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식솔들의 구성이 기이하다는 점이다. 징병에서 면제되고 징용도 피하기 위해 낙향한 장남 겐스케 내외, 시베리아에 잡혀 있는 유스케 그리고 상부(喪夫)한 둘째 며느리 에쓰코가 그 구성원이다. 소설은 주로 에쓰코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전국시대 명장 집안의 규수인 에쓰코가 남편인 료스케를 장티푸스라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잃고 시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촌마을에 내려와 산다. 듣기만 해도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야키치는 자신이 가진 재력을 바탕으로 스기모토 집안과 자신의 영토를 봉건영주처럼 지배한다. 자신이 소유한 전답에서 나는 가장 상품의 소출을 며느리 에쓰코와 독점하고, 심지어 손녀딸도 손대지 못하게 한다. 해골의 애무라는 표현에서 독자는 야키치가 에쓰코에게 남편을 잃은 며느리를 돌보는 것 이상의 용무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문제는 에쓰코에게는 다른 사랑의 대상이 있다는 점이다. 스기모토 집안에 일꾼으로 일하는 18세 소년 사부로가 주인공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 비정상적인 관계를 전후 일본 사회에 비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태평양전쟁 이전에도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해괴한 논리로 아시아 세계에서 탈출해서 세계열강 진입을 도모했지만, 미국과의 전쟁에서 참패하고 다시 주저앉은 상황을 그는 시아버지와 상부한 며느리의 동거라는 기묘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재현해냈다. 구질서가 상징하는 부와 권력은 새로 거듭나기를 원하는 신일본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 작가의 진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쓰코는 새로운 문물을 신속한 속도로 일본에 전파하고 있는 사부로/미국에게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는 플래시백으로 에쓰코의 죽은 남편 료스케의 최후를 진술한다. 잘 나가던 남편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자를 거느린 소위 능력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잘못 마신 우물물(일본 군국주의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치명적인 장티푸스(태평양전쟁의 패전)에게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겐스케 부부로 대변되는 지식인들의 행동거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그들은 사부로를 애정하는 에쓰코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한담만 늘어놓을 따름이다. 어쩌면 미시마 유키오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이 직접 행동에 나서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이 아닐까. 일본 사회에서 전공투로 대변되는 좌익 세력이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시기, 그의 대척점에서 메이지 유신 때처럼 경제력에 바탕한 쇼와 시대의 화려한 부활이야말로 자학사관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세계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을 지도 모르겠다.

 

죽어가는 남편 료스케를 필사적으로 간호하는 에쓰코의 모습은 일본의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이라는 우리에 갇혀 발버둥치는 정치세력에 대한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극한의 고통에 몰아넣지만, 결국 에쓰코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이기적 행복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설정들은 오른쪽으로도 그렇다고 해서 왼쪽으로도 갈 수 없는 처지에 처한 전후 일본 사회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신여성의 대표주자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전국시대 이래 명장 가문의 후손이라는 계급의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계도 가진 에쓰코가 스기모토 집안의 머슴 사부로를 사랑한다는 고백부터 위악적이다. 에쓰코는 사부로의 애인이었던 미요를 내쫓고, 기어이 사부로로부터 자신을 사랑한다는 강요에 의한 고백을 듣지만 그것은 가학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골이 하는 애무라는 용무를 가진 야키치로부터 벗어날 생각조차 안하는 그녀에게 선택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소설은 파멸로 치닫는다.

 

단순한 치정에 얽힌 사소설처럼 보이는 <사랑의 갈등>에 너무 많은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 걸까. 아직 난 미시마 유키오의 상상력으로 무장한 극단적 탐미주의라는 이름의 모험 비행에까진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25세 청년이 쓴 글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묘사와 감정선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차근차근 미시마 유키오를 읽어봐야겠다.

 

[리딩데이트] 2015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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