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 : 셀프 포트레이트 비비안 마이어 시리즈
비비안 마이어 사진, 존 말루프 외 글,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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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왜 사진을 찍는가? 특정한 시점의 기록을 위해 혹은 과거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재미로? 오래 전에 사진 찍기를 즐겼다. 그저 사진 찍기만 하고 현상과 인화는 디피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암실에서 현상과 인화하는 법까지 배우고 나니 사진 찍기가 또 다르게 다가왔다. 로버트 카파처럼 결정적 순간을 담을 시간과 공간에 가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미션이다. 그저 선인들이 남긴 결정적 순간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사진 찍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찍기 이유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에 미국 출신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가 남긴 대량의 미현상 롤필름들이 발견되면서, 그녀의 사진들이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 책의 저자인 존 말루프가 그녀의 미현상 필름들을 사들이면서 세상에 그녀가 남긴 사진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현상하지 못한 네거티브들이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렇게 오랫 동안 현상을 하지 않아도 사진이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아날로그 시대의 필름들을 하나하나 현상하고 인화해서 다시 디지털화 하는 작업이 아날로그 필름의 아우라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 지도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이번에 윌북에서 출간된 <비비안 마이어 셀프포트레이트>는 비비안 마이어가 남긴 말 그대로 자신의 얼굴을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사진들은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친 비비안 마이어 자신을 피사체로 삼아, 그녀가 아끼는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로 찍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왠지 그녀의 셀프포트레이트들은 하나 같이 표정이 없고, 뚱한 표정이다. 어떤 사진들은 심지어 자신의 그림자를 찍은 것도 있다. 후대에 존 말루프가 아니었다면, 비비안 마이어가 사후에 지금 세간의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의 입소문을 탈 수 있었을까. 전설은 당대에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세대를 건너 뛰어 창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비비안 마이어의 케이스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거시사가 유행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미시사가 역사 서술 분야에서 대유행인 것처럼, 예전에는 결정적 순간을 담은 사진들이야말로 좋은 사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에 담긴 정보들을 보노라면 소소하지만 일상의 풍경을 담은 그녀의 사진 속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때때로 장소 불명, 시간조차 알려지지 않은 사진들도 많이 있지만 시카고와 뉴욕의 거리에서 찍은 사진들은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당대의 찰나들을 매혹적으로 잡아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바로 그 지점이 비비안 마이어 사진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머리에 롤을 말고 바닷가에서 선탠을 하는 어느 여성의 사진, 자동차 윈도우가 올라가고 있는데 그 사이로 코가 꿰어서 더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연출된 고양이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보니 고양이가 코가 꿴 자동차 유리창에도 비비안 마이어의 반사된 모습이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사진첩을 넘겼는데 다시 보니, 편집자의 그런 묘수가 숨어 있었다.

 

비비안 마이어에게는 모든 공간이 그리고 순간들이 포획의 대상이었나 보다. 코믹 북스토어의 거울에서도(요즘은 가게마다 사진 찍지 마시오 정책이 일반화되서,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예전이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공공장소에 놓인 재떨이의 둥근 부분도 모두모두 그녀에겐 좋은 피사체였다. 요즘처럼 자동초점 카메라로 순간 포착이 쉽지 않았을 텐데 비비안 마이어는 용케도 그런 순간들을 잘도 짚어냈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사진에 담긴 "Here's a real eye opener"란 표현이야말로 다시 재평가를 받게된 비비안 마이어 작품에 대한 편집자 존 말루프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유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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