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의 그녀
가쿠타 미츠요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이 소설 역시 순전히 소설리스트에서 소개된 <종이달> 덕분에 읽게 되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오프라인 서점에 들렀다가 습관처럼 신간 도서 코너를 둘러보게 됐다. 지난 11월부터 시행된 도서정가제 덕분에 이제 더 이상 구간은 잘 사지 않게 되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도서관이나 아니면 중고서점을 이용하게 되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서점 매대에서 일본 작가 가쿠타 미치요의 <종이달>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나오키상을 받았다는 내용을 얼핏 본 것 같다. 물론 신간 <종이달>이 나오키상 수상작은 아니다. 그럼 그녀의 나오키상 수상작은 뭐지라는 궁금증에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봤다. 바로 이 책 <대안의 그녀>가 가쿠다 미치요 작가의 나오키상 수상작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에 나온 책인데 벌써절판의 운명에 처해졌다.

 

그 때 이미 난 다른 책을 읽고 있었는데 <대안의 그녀>를 한 번 읽기 시작하니까 자꾸만 이 책에 손길이 갔다. <대안의 그녀>에는 모두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남편 슈지와 결혼하면서 전업주부로 세 살박이 아카리를 키우고 있는 사요코, 그런 사요코가 구직에 나서 만나게 된 플래티나 플래닛의 사장 동갑내기 사장 아오이 그리고 아오이의 고등학교 시절 단짝친구 물고기 새끼[魚子]라는 이름의 나나코. 작가처럼 주인공 모두 여성이다. 가쿠타 미치요는 사요코의 현재와 아오이의 과거라는 교차서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현재의 사요코는 딸 아카리와 더불어 공원순례를 다닌다. 자신처럼 숫기가 없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딸을 보며, 어느 순간 자신도 자신만의 일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직업전선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이웃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경단녀(경력단절녀)에 아이까지 가진 유부녀가 일자리 찾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남편 슈지와 아카리를 맡아주는 시어머니의 시선도 곱지 않다. 이런 와중에 대뜸 자신을 받아 주겠다고 하니 그녀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녀의 보스는 바로 또 다른 주인공 아오이다.

 

그렇게 현재의 주인공이 사요코라면, 과거의 주인공은 아오이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대도시 요코하마에서 왕따사건에 휘말린 아오이는 부모님을 졸라 시골 군마에서 새출발을 다짐한다. 왕따는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인 걸까?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요코와 아오이가 겹쳐 보였다. 너무 튀지도 그 반대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서서 아오이는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만난 나나코는 그녀와는 너무 다른 성향의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아오이는 당연히 그녀는 자신 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리라고 단정한다. 물론 나나코 삶의 이면을 알기 전까진 말이다.

 

가쿠타 미치요 작가는 마치 한편의 미스터리물을 풀어 가는 그런 구성을 따른다. 현재의 사요코에게 과거의 아오이가 가진 사연에 대한 실마리를 슬쩍 흘리며, 독자를 유혹한다. 도대체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하고 독자를 유혹해내는 작가의 뛰어난 수완이 돋보였다. 한편, 사요코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청소대행업을 하면서 존재감이 엷어진 자신의 자아를 찾기 시작한다. 사요코가 어렵게 찾은 두 번째 직업은 청소다. 지우고 싶은 과거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노동과 그에 따른 소득을 통한 자존감의 회복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걸까. 그녀의 대척점에 놓인 매사에 자신감 넘치고 앞뒤 가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스타일의 사장 아오이를 그녀를 마냥 부러워한다. 마치 그녀와 함께라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고까지 생각하지만, 그 정점에서 그녀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그것은 마치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친구 나나코가 왕따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변호해주지 못한 자신의 비겁한 모습에 환멸하던 아오이의 감정이 연상됐다. 나나코와 아오이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펜션 아르바이트를 마친 뒤 감행했던 일탈에서 나이든 독자는 그녀들이 행여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지 노파심이 앞선다. 정말 그들은 어디로 가려고 했던 것일까.

 

이 작품에서 가쿠타 미치요 작가의 방점은 모두 관계로 모아진다. 우리는 살기 위해 사회적 관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내가 시리게 투명한 관계를 원한다면, 진정성 있게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렇지 않은 관계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휘발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왕따문제는 삶이 너무 단조롭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뒤틀리고 파행적인 관계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강 건너 기슭에 서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물질적 궁핍 때문에 아이들이 서로에게 잔인해질 수 있다는 점도 그 과정에서 읽을 수가 있었다. 나나코가 사는 임대주택이라는 공간이 누군가에게 관계의 카스트제도로 작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대안의 그녀>의 결말은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 이들의 새출발로 귀결된다. 아니 새출발이라는 진부한 표현보다 리셋(reset)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진정성 있는 관계를 바라는 사요코처럼 작은 희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보다 상대방을 우선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녀처럼 용기를 내어 자신의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리셋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보통 이상의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사요코와 아오이 그리고 나나코의 이야기를 통해 관계에 대해 한 수 배웠다.

 

[리딩데이트] 2015116~ 18일 오후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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