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로열 -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요즘 즐겨 찾는 사이트가 하나 생겼다. <소설리스트>라고 몇몇 작가와 서평꾼들이 주로 새로 출간되는 소설에 대해 알려주는 그런 사이트다. 뭐 절대적인 정보는 아니라지만, 아주 유용하게 사용 중이다. 특히 지난 연말에는 올해의 베스트 3라는 타이틀로 여러 책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책지름신이 강림하여 여러 권을 책을 사게 됐다. 쿠라하시 유미코의 <성소녀>를 필두로 해서 플래너리 오코너 그리고 사쿠라기 시노의 <호텔 로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을 사모았다. 그리고 작년 말부터 해서 오늘까지 <호텔 로열>을 읽었다.

 

아무래도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솔직히 잘 모르는 사쿠라기 시노란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그녀는 고향인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작품활동을 한다고 하는데, 관능소설 작가란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그 방면에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다. 역시 역자후기를 통해 알게 된 정보인데, 작가의 부친께서 진짜 <호텔 로열>이란 이름의 러브호텔을 경영했었다고 한다. 남녀관계의 궁극을 너무 일찍 깨달아서일까, 작가가 괜히 관능소설의 대가가 된 게 아닌 모양이다.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사람과 풍경이 있는 소설 <호텔 로열>은 연작소설집으로 공간적 배경은 호텔 로열과 직간접적 연관성을 이루며 역순으로 전개된다. 한창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사랑을 나눌 곳을 원하던 연인들에게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던 호텔 로열의 폐허에서 연인의 누드 사진을 찍겠다고 찾아오는가 하면, 한 때 문전성시를 영업을 마치고 폐업하던 날 그동안 성실하게 성인용품을 대주던 업자와 일탈을 감행하려던 주인장의 딸의 유혹이 배어 있기도 하다. 가족의 봉안을 맡은 주지 스님의 처는 대를 이어 가며, 사찰을 후원하는 단가의 자제와 묘한 관계를 맺는다.

 

예의 스님이 다른 곳으로 독경을 하러 가게 되어 굳은 돈으로 빡빡한 현실에서 벗어나 러브호텔을 찾은 중년부부의 이야기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자그마치 20년 동안이나 자신의 스승과 불륜 관계를 맺은 아내에 대한 실망으로 출장길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제자와 어디론가 떠나 버리는 수학 선생님의 이야기는 구슬프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이 <호텔 로열>에서 벌어진 정사(情死) 사건의 주인공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홋카이도 동부 지방에 위치한 구시로(釧路) 습원은 두루미와 사슴으로 유명한 명소라고 한다. 아칸 산 부근에 위치한 국제 두루미 센터는 자연생태 사진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소설의 어디선가에서도 아마 두루미가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푸른 녹지가 장관이라는 곳 언덕에 위치한 러브호텔, 그곳의 풍경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사람들의 희로애락 이야기가 <호텔 로열>을 채우고 있다.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소설은 그렇게 풍경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네 삶처럼 평범한 이들이 빚어내는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배어 있다. 그 이야기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즐겁다.

 

연작소설 특유의 서사구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게 이어진다. 때로는 <호텔 로열>이라는 공간이, 혹은 전작에 등장한 캐릭터가 다음 이야기에서 접점을 이루면서 실타래처럼 얽힌 소설의 인과관계를 설명해준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복잡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단순하면서도 명징함이야말로 <호텔 로열>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작가가 관찰한 그네들의 삶에 어떤 절묘한 해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정말 오랜 시간 바람을 피웠다는 무력감에도, 오래전 집을 나가 자수성가했다고 생각한 아들이 실은 조폭이었다는 사실에서도, 마트에서 파트타임으로 어렵게 번 돈으로 분위기도 모르는 남편과 러브호텔에 가고 싶다는 아내의 바람에서도 소소한 삶의 진실이 느껴진다. 그런 삶의 진실에 관능까지 더하니 어찌 맛깔스럽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쿠라기 시노 작가와의 첫 만남은 강렬하면서도 담백했다. 작년에 모두 그녀의 작품이 세 권 출간됐는데, 남은 두 편의 작품에 도전해 보고 싶다. 양양한 을미년이 이제 시작이니, 이루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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