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조 사코 지음, 정수란 옮김 / 글논그림밭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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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래 전에 조 사코란 미국 만화가이자 저널리스트의 <팔레스타인>을 읽었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당연히 리뷰를 썼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미처 쓰지 않았나 보다. 그 후에 읽은 <안전지대 고라즈데>에 대한 리뷰는 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소개된 지 10년만에 다시 나온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을 읽게 됐다. 전편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한지라 아무래도 이번에는 새로운 이야기에 집중할까 한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조 사코의 작품에 대한 촉발점은 기 들릴의 <굿모닝 예루살렘>이었다. 예의 작품에서 기 들릴은 <팔레스타인>을 다룬 조 사코의 작품을 언급했고, 나의 관심이 그쪽으로 돌려졌다. 조 사코는 현재 팔레스타인의 상황보다 그 상황을 있게 한 1956년 수에즈전쟁 당시 벌어졌던 칸 유니스와 라파에서의 학살 사건에 주목한다. 저자가 말한 대로, 과거를 캐내는 편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서였을까. 그가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이스라엘 독립전쟁으로부터 비롯된 아랍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를 들려 주고자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목표로 삼은 주제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미국 저널리스트의 옹고집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만약 그였다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역사로 관심을 넓히지 않았을까 싶다.

 

조 사코는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페다이로 알려진 전직 반유대 게릴라 전사들을 비롯해서 현재 이스라엘의 추적을 받고 있는 칼레드라는 인물에 이르기까지 1956년 11월 가자지구 남부의 칸 유니스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사실을 들려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인터뷰한다. 현재에도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점령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박해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인터뷰이들은 본명을 밝히길 거부한다. 그 점 때문에, 사실을 추적하는 과정은 난망하기만 하다. 그리고 기록된 정보가 아닌 구술과 증언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다 보니 아무래도 엇갈리는 진술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어쨌든 조 사코는 최대한 자신이 접한 사실을 가감 없이 다루기로 작정하고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작가가 밝혔듯이 칸 유니스 사건의 중요성은 그동안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간의 분쟁이 수에즈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 정부군이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가자 지구를 점령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페다이 게릴라를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저항하지 않는 비무장 팔레스타인 성인남자들을 무차별학살했다는 것이 칸 유니스 사건의 핵심이다. 그 이면에는 당시 아랍세계의 맹주로 자처하던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과 2차 중동전쟁(수에즈전쟁)의 기원이 자리한다. 북아프리카와 시리아까지 아우르는 아랍제국을 표방했던 나세르가 정력적으로 추진하던 아스완 댐 건설을 지원하기로 했던 미국, 영국, 프랑스가 나세르 정권이 무기금수조치에 대항해서 체코와 소련에서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전쟁물자를 수입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지원을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더 복잡해진 것은 나세르가 영국이 그동안 지배권을 행사해오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알제리 전쟁에서 알제리 반군을 지원하자 본때를 보여주기로 결심한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비밀협상을 벌여 수에즈 운하를 포함한 시나이 반도 전체를 점령한다.

 

이런 국제 정세 가운데, 나세르의 관심은 가자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운명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서방 세계는 물론이고, 같은 아랍권의 맹주라고 볼 수 있는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조차 신생국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거주지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불법적인 유대인 정착촌 건설로 조성된 민족 간의 긴장을 아예 해소하기로 결정한 이스라엘 군부를 대표하는 모셰 다얀 참모총장과 벤구리언 전 총리 같은 강경파들은 이참에 가자 지구를 무력으로 정복하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조 사코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의 전반부에서 다룬 칸 유니스 사건의 배후에는 이런 복잡한 역사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었다.

 

행간마다 조 사코는 불도저를 앞세운 이스라엘 정부의 강제철거를 비롯해서, 이스라엘이 세운 분리장벽과 점점 수를 늘려가는 정착촌 유대인의 테러 위협에 노출된 팔레스타인 현지인들의 참상을 자신의 만화를 통해 증거한다. 최소한의 거주에 필요한 집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토끼처럼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싸우겠다는 어느 팔레스타인 엄마의 절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어린이와 여자 그리고 노인을 해치면 안된다고 하는데 그런 사실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군인이라며 공격해대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주장이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얼마 전 읽은 허핑턴포스트에 실린 아랍 청년의 하마스의 자살폭탄 공격과 인간방패 전략에 대한 비판도 일견 이해가 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실질적인 지지를 받는 하마스를 서방과 이스라엘에서는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대화 상대로조차 인정하지 않지만, 교육과 의료를 통해 지지를 획득하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그들을 부정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아이러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이야말로 꼬일 대로 꼬여서, 가자지구를 포함한 모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두 민족의 공존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조 사커는 책의 두 번째 이야기인 라파 사건에 대해 좀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여전히 그와 동료 아베드는 여전히 1956년 11월 12일 가자기구 라파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행해진 폭력행위와 무차별적인 학살 사건의 진상을 캐기 위해 증언할 사람들을 수소문한다. 저널리스트답게 저자는 증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크로스체크를 통해 몇 번이고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근 50년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한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기란 난망하기만 하다. 게다가 사건의 핵심인 이스라엘 정부는 UN에 의해 드러난 라파 사건을 왜곡 축소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러니 저자가 책의 중간에 기술한 대로, 사실이 조금 옆으로 샜다면 사과하겠노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치 독일의 끔찍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민족이 다른 민족(팔레스타인 사람)에게 그들이 체험한 것 이상의 극단적 폭력을 행사하는 조 사커의 묘사를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피해자의 뇌리에 각인된 충격과 공포 때문에 적대적 환경에 둘러쌓여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는 논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중무장한 이스라엘군의 상대는 저항을 포기한 비무장한 민간인들 아니었나. 민간인 사이에 잠입한 페다이 민병대와 이집트 패잔병을 체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조 사커의 전작처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에서도 어떤 특정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독자는 저자가 인도하는 1956년 11월의 칸 유니스와 라파로 여행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릴 뿐이다. 전작에서도 궁금했던 점이지만, 조 사커는 왜 오늘날의 비참한 팔레스타인 현실 대신 집요하게 1967년도 아닌 1956년에만 유독 관심을 보이는 걸까. 그의 주변에서 다른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주장이 내 귀에만 들리는 걸까. 사건의 원형 구성을 위해서라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직후 발생한 1차 중동전쟁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보다 정확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라엘 측의 끝없는 가옥 파괴에 맞서 자신의 모든 것들을 잃으면서도 조상 전래의 땅에서 떠나지 않고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며 끝까지 맞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이 기묘하게도 신의 뜻에 따라 약속의 땅에 마침내 거주하게 된 유대민족의 그것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이스라엘측의 공격으로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만, 2003년 국제연대운동 회원으로 이스라엘의 불법 가옥파괴에 맞서 싸우다가 죽은 미국 출신 레이철 코리의 죽음만큼 국제적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조 사커의 지적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들이 악이 축이라고 믿는 미국, 영국 그리고 이스라엘에 맞서 싸운 이웃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영웅시 되는 장면도 못내 충격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후세인이야말로 중동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으로 알아오지 않았던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중동평화를 위한 로드맵이 무슨 이유 때문에 어려운지 조 사커의 만화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리딩데이트]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오후 1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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