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최민석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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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독서 취향에 대해 말해 보자면, 때로는 고상한 고전 순수문학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으나 대개의 고전문학이 지루하기 때문에 너무 읽기 어려우니 B급 취향이라고 솔직히 자수해야 하나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다수의 우리 문학 창작가들이 그래도 순수문학 계열을 추구하다 보니 어쩌다 등장하는 오늘 이야기할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의 최민석 작가 같은 양반은 문단의 이단아라는 느낌이 든다. 그의 대선배에 해당하는 미국의 찰스 부코스키가 있지만, 그의 19금 필력에는 조금 미치지 못한다고나 할까.

 

소설에 문득 나오는 필자의 창작 수준이 역행 혹은 퇴행하는 게 아닌가라는 데 대한 자신의 직접적인 설명이 나오는데, 늦깎이로 문단에 데뷔해서 전업작가로 먹고살기 위해(여전히 그의 행적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써제낀 단편소설들을 끌어 모아 이제야 소설집을 발표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보니 <능력자>, <쿨한 여자> 같은 경장편에 이어 소설집이 나온 점이 요사스러웠으나, 작가의 변을 듣고 나니 절로 이해가 갔다.

 

총 6편의 단편과 보너스 트랙으로 구성된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중에서 혈기방장한 수컷의 본색을 숨기지 못한 나의 눈길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독립운동가 변강쇠>였다. 마치 오래 전 즐겨 보던 양영순의 <누들누드>의 소설판이라고나 할까? 대물을 자랑하는 한국의 변강쇠 아니 변강석이 독립운동의 현장에 뛰어 들어 중국 마적떼와 친일 변절인사 노무라와 서방 변강쇠 스티글리츠와 한판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황당하기 그지 없지만, 묘한 카타르시스를 지어내는 그런 촘촘한 재미를 선보인다. 아직 그의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 제하들에게 경고하노니, 너무 기대할지 말지어다. 기대는 보다 큰 실망을 불러 오는 법이니.

 

<국가란 무엇인가>에서는 좀 더 큰 국가 담론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그것 또한 끔찍한 오산이리라. 그가 처음부터 까놓고 말했으니 이것은 대하(大蝦:길이 30~36cm에 달하는 보릿새우)를 막장에 찍어 먹는 그런 황당무계를 기반으로 한 서사다. 오, 작가의 재기 넘치는 이 따위 말장난이란 정말. 소시의 제시카야말로 국내 걸그룹 중에 독보적인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지질하거나 횡설수설을 삼가지 않는 예의 작가는 이북의 리혁수 동무를 터무니없는 계기로 귀순시켜(개연성이나 도덕성 따위는 강아지에게나 줘 버리라고), 수구정당국회의원으로 둔갑시키고 나아가 이북에서 남파된 “그들”에게 납치되어 ‘손시’(손녀시대)의 요리와 함께 갇히게 된다는 설정은 그들이 나중에 대하를 찍어 먹는 막장 뺨치는 전개였다. 아, 과연 어쩌면 정말 이 의미 없는 소설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는 나의 노력이야말로 부질없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그에 비해 <이방인 부르스의 말로>는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외계인의 신분으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한국 땅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문제는 그가 배운 한국말이 로버트 할리 뺨치는 부산말이었다는 점이다. 중앙무대, 다시 말해 서울 바닥에서 뜨기 위해서는 표준 서울말이 필요했다. 그래서 볼펜을 깨물고 표준어를 배우기 위해 침을 질질 흘리며 사투를 벌이는 우리의 주인공 부르스. 그런데 우리의 부르스는 그 흔하디흔한 할리우드 영화 한 편 안본 모양이다. 외계인의 표준어는 우리의 언문이 아니라 영어란다 영어. 자신에게 표준 서울말을 가르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던 야매 한국어교습소의 원장마저 필상의 생존을 위해 클래스에 앉아 있는 것을 본 부르스는 그야말로 좌절한다. 이 부분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통해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예의 관문을 지나면 그 다음 목표인 취업을 위해 각종 스펙을 쌓는 우리네 청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스펙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어학실력을 입증하는 토익 점수를 따기 위해, 막상 입사한 다음에는 그다지 필요 없는 스펙쌓기에 오늘도 여념이 없는 그들의 모습이 요사하게 겹치고 있었다. 이 스펙쌓기에는 외계인도 열외 없다는 표현이려나.

 

리뷰의 제목으로 달았지만, 최민석 작가의 글이 지질하거나 횡설수설해도 난 좋다. 근엄하거나 젠 체 하지 않으니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지 않은가. 그냥 그가 갈긴 그대로 읽으면 될 듯 싶다. 의미없다고 목놓아 외치는 작가의 횡설수설을 지나치게 분석하거나 그럴 필요도 없지 않은가. 또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말고. 어쩌랴, 책은 필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나머지 부분, 해석이나 오독 모두 오롯하게 독자의 몫이지 않은가 말이다.

 

자, 일필휘지로 갈기는 리뷰의 대단원을 장식할 시간이 됐다. 오리지널과 속편으로 구성된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를 이야기하지 않고 끝낸다면 혹시라도 작가가 섭섭할지도 모르니 잠깐이라도 언급하고 마치기로 하자. 어느덧 우리나라도 백만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합법적 혹은 비합법적으로 사는 그런 거대 공동체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백의민족, 순수혈통 따위는 유효하지 않는 표어가 됐다. 주인공은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초이아노프스키다. 원래 이름이 훨씬 더 길지만 그대로 인용했다간 리뷰를 늘려 먹으려는 수작이라고 할테니 간단히 그가 일하던 가발공장의 악덕기업주 안면몰수 씨가 붙여준 최 씨라 부르기로 하자.

 

얼마 전 무려 집권여당의 사무총장이 무슨 박물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고 혹사시켰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어쩌면 우리의 횡설수설 작가는 바로 그 사건에서 이 이야기의 모티브를 취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우리의 초이아노프스키 아니 최 씨는 부조리한 현실세계의 억압과 착취, 무엇보다 콩고에서 온 동료 주글리레 주씨가 안면몰수 사장이 제공한 떡을 그야말로 게눈 감추듯이 허겁지겁 먹다가 허무하게 죽어 버린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처한 주변의 부당함을 깨닫고 분연하게 의거를 도모하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간다. 몽골 엘리트 출신 바타르 박씨와 쿠마리 구씨와 작당해서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버스에 불을 붙이고 청와대로 돌진하자는 그들의 무(모)한 도전은 허무하게 사그라진다.

 

뭐 사실 최민석 작가가 농 혹은 유머로 담아 낸 이야기의 밑바닥에는 그저 웃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그런 층위의 서사들이 녹아있다. 아마 그런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면, 타이핑을 날리는 나의 손가락들이 매서운 혹사를 당할 지도 모르겠다. 진짜 이야기는 그렇게 다 웃고 난 뒤에, 비로소 자각하게 되어 생각하게 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작은 빗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어 바다로 나가는 듯이, 일면 지질하거나 횡설수설해 보이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도전하는 이 B급작가의 도전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글을 읽는 재미까지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뱀다리] 그의 전작 어디에선가 본 심이(心耳)라는 표현을 이번 소설집에서도 만나볼 수가 있었다. 그냥 마음의 귀로 듣는 소리인가 싶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적여 보니 ‘심이’는 의학용어로 “심장에서, 좌우 심방의 일부를 이루는 귓바퀴 모양의 돌출부”라는 뜻이란다. 에이, 설마 그런 뜻에서 작가가 쓴 건 아니겠지. 그러니 그냥 내 맘대로 마음의 귀로 듣는 소리로 규정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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