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들
김중혁 지음 / 창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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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퓰리처상 작가인 주노 디아스가 방한해서 그를 만나 싸인을 받겠노라는 생각으로 작가와의 만남 장소로 발걸음을 부지런히 했다. 그런데, 그 날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는데 바로 다른 한 명이 오늘 이야기할 <좀비들>의 작가 김중혁이었다. 자신이 하루에 원고지 한 장 쓰는 일매라면, 주노 디아스는 한달에 한 장 쓰는 월매라고 했던가.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누군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의 책은 하나도 읽은 적이 없기에. 그런 다음, 다시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도 그의 책은 읽지 않았다. 더 시간이 지나고서야 최근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의 책 <좀비들>을 읽었다.

 

좀비가 등장하는 하드코어물을 즐기는 지라, 한국판 좀비 이야기가 분명한 <좀비들>에는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다. 김중혁 작가의 <좀비들>은 한국판 종말론을 다룬 그런 소설이 아니라 온전하게 상실과 극복에 대한 드라마다. 좀비는 다만 작가가 상실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와중에서 만난 한 가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 나처럼 유혈이 난무하는 하드코어를 기대한 독자라면 좀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죽음조차도 이 시대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죽었으면서도 죽지 않은 좀비라는 존재에 열광하니 말이다. 며칠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세상이 온통 좀비들로 뒤덮였더라는 미드 <워킹 데드>조차도 시즌을 넘기면서 시들한 마당에 좀비와의 대결보다는 온전하게 홀로 사는 세상 이야기가 더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형이 죽고 나서 형이 남긴 LP판을 차에 싣고 다니며 허그쇼크라는 첨단기술로 튐방지를 하고 음악 감상을 즐기게 된 주인공 채지훈의 이야기로 소설 <좀비들>은 시작된다. 이제는 그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LP라는 매체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구닥다리 느낌이 팍팍 풍기는구나. LP도 이런 취급을 당하는데, 에잇트랙이나 카세트테이프 타령을 하면 어디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줄 알겠는걸. 어쨌든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이라니 글쟁이들에게 안성맞춤이로구나.

 

안테나 감식반의 채지훈은 형이 남긴 이안 데이비스의 스톤플라워라는 공통점으로 뚱보130와 고리오 마을(발자크에 대한 오마쥬인가)의 홍혜정이 차례로 소설의 무대에 등장한다. 결핍이라는 요소를 두루 갖춘 삼총사는 딴따라 음악 감상회에서 스톤플라워의 음악을 온전하게 소비하는 가운데 동질감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균질감은 홍혜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와해되는가 싶었지만, 그녀의 딸 홍이안의 등장으로 다시 긴장감이 촉발된다. 그리고 고리오 마을에 살기 시작한 채지훈의 집에 뜬금없이 나타난 좀비 때문에 서사는 비로소 좀비소설다워지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줄거리와 전개는 예상대로다. 채지훈, 뚱보130과 홍이안 일행은 고리오 마을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격리되게 되고, 군부대의 실험 대상이 된 좀비들이 하나둘 탈출해서 그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소설 초반에 등장해서 그다지 비중이 없어 보이던 채지훈의 동료 이경무까지 다시 출현해서 현실세계에 도저히 존재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좀비에 대한 비밀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장장군과 심소령이 주도하는 군부대에서 비밀리에 좀비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으며, 좀비 사냥으로 살인에 무감각한 병사를 양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 와중에 뚱보130이 조종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좀비에게 물리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채지훈은 분명 군인들이 치료 백신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사지에 뛰어든다.

 

사실 종말을 다룬 대개의 소설이 그렇듯 <좀비들> 역시 대강의 줄거리와 고리오 마을의 비밀을 알게 된 후부터 결말은 중요한 요소가 되지 못한다. 캐릭터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작가가 추적하는 서사는 무엇 때문에 보다 “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유에 대한 분석이라고 해야 할까. 어머니의 죽음 이래, 나홀로 사는데 익숙한 채지훈은 형의 죽음을 계기로 비로소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댓가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 사랑인지 아니면 동정인지 모를 그런 감정으로 홍혜정의 딸 이안을 대하는 태도나, 뚱보130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채지훈의 감정을 읽을 수가 있다. 어머니나 형의 죽음 앞에서 무력했던 이 청년은 더 이상의 상실을 거부하고 자신에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는데 모든 것을 건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나서 기대한 것과 너무 달라 잠시 혼란스러웠다. 제목의 <좀비들>은 정녕 낚시였단 말인가. 책을 읽는 동안은 즐거웠다. 하지만, 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리뷰를 쓰겠다고 책상머리에 앉았을 때 당혹스러웠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건가? 물론 오독도 독서의 수많은 방법이라지만 여전히 내가 작가가 원래 예상한 궤적을 제대로 따라갔는지 아리송하다.

 

어쨌든 신작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을 만나기 전, 김중혁을 읽겠노라는 나의 결심은 지켜졌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아니면 한창 독감을 앓으면서 읽어서 그런 거라고 위로하고 싶다.

리딩데이트 : 2014년 4월 18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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