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그거 참 제목이 요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청접대과>라는 제목 만으로는 이 소설을 짐작할 요량이 없다. 하지만, 이 요상한 제목의 저자 아리카와 히로가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의 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야릇한 기대가 들기 시작한다. 이번엔 또 무슨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독자를 즐겁게 해줄까하는 그런 기대 말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작가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을 바탕으로 해서 재구성한 소설 <현청접대과>는 마음에 쏙 들 정도로 재밌었고, 단박에 읽었다.

 

리뷰를 쓰기에 앞서 소설의 무대가 되는 일본 시코쿠 섬의 고치 현이 어디쯤 있는지 구글맵으로 검색해 봤다. 그러자 소설의 주인공 가케미즈가 판다 유치론의 기요토 가즈마사에게 강제로 떠밀려 패러글라이딩을 했던 묘진산을 비롯해서, 서포터 묘진 다키와 아이스크림 데이트(?)를 아키 바닷가 그리고 고치현 관광부의 접대과가 일본 전국에 홍보하려고 노력했던 시만토 강과 니요도 강 같이 소설을 통해 익숙해진 지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야말로 시코쿠는 도쿄나 오사카 같은 도회와는 다른 산과 일급수로 유명한 강 그리고 바닷가로 둘러쌓인 관광에 최적화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정보다. 이런 정보가 빛을 보기 위해[觀光] 유람을 떠나는 이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관광입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고치 현의 공무원들이 이 중차대한 문제를 맡았다는 점이다.

 

이십몇년전에 이미 고치 현에는 관광객을 동원하기 위해 서일본에서 처음으로 동물원에 판다를 유치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낸 기인이 있었다. 문제는 복지부동, 비효율의 대명사로 소설에서 묘사되는 공무원들이 이 기발한 기획을 내던진 입안자를 내쳤다는 사실이다. 시간을 그렇게 흘러흘러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게 없는 고치 현은 많은 돈을 들여 관광입현을 목표로 공무원들을 닦달하기 시작한다. 민간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공무원들은 그저 기획과 공무원 마인드로 철저하게 무장한 나머지 실제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쌈박한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 가케미즈 역시 그들 중의 하나지만 고치 출신의 소설가 요시카도 씨를 홍보대사로 임명하게 되면서 극적인 전환을 이루게 된다.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 요시카도 씨는 전화로 따끔하게 가케미즈를 혼내면서, 고수가 하수를 훈련하듯 접대과의 말단 공무원을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한다. 공무원 마인드에 푹 절은 가케미즈에게 요시카도의 지적은 그야말로 복음처럼 들린다. 그의 지적을 따르기만 한다면, 고치현의 목표인 관광입현도 불가능한 임무는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다. 우선 똑똑한 여성 스태프를 한 명 고용하고, 민간의 관광 전문가에게 쌈박한 기획안을 의뢰하는 것으로 가케미즈는 요시카도가 던져준 화제를 풀기 시작한다. 마치 준비된 것처럼 여성 스태프로 묘진 다키가 등장하고(독자는 바로 그녀와 가케미즈가 썸을 타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연이어 20년 전 판다 유치론의 주창자 기요토 가즈마사 씨와 만남을 통해 고치 현을 통째로 레저랜드로 만들자는 그야말로 야심찬 플랜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다 좋은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예산과 심의를 맡은 고치 현 간부들의 승낙을 얻느냐는 것이다.

 

융통성 없지만 정면돌파를 선택한 가케미즈는 기요토의 딸 사와 씨에게 물벼락을 맞기도 하고 또 뺨까지 맞아 가면서 이 어려운 난제를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게다가 고치현 레저랜드 계획을 세운 기요토 씨가 현청의 고루한 고집쟁이들 때문에 도중하차하는 사태까지 겹치면서 한 때 난관에 봉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리카와 히로 작가는 그 때마다 적절한 유머와 이제 막 썸을 타기 시작하는 남녀간의 미묘한 관계 설정 그리고 역시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작가 요시카도와 그의 양아버지 기요토의 알려지지 않은 관계를 조금씩 풀어가며, 풋내기 가케미즈를 멋쟁이 남자로 거듭나게 만드는 구성으로 소설 <현청접대과>를 흥미진진하면서도 유쾌한 소설로 유도해낸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한창 규제개혁과 더불어 각종 사회공공시설의 민간참여가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전에 앞서, 관료개혁이 우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민에게 복부해야할 관료 계급이 하나의 기득권층이 되어 시민 위에 군림하는 형세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불필요한 규제 또한 개혁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규제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관료/공무원이 아닌가. 소설 <현청접대과>는 공무원들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효율적인 마인드로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일본과 무역 거래를 하면서 문서 타령을 수도 없이 해대는 그들의 모습에서 관청의 각종 규제와 씨름하고 있는 그네들의 일면을 볼 수도 있었다. 트러블슈팅에 있어 문서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불필요한 문서 작업으로 요시카도가 소설에서 지적하는 무엇보다 귀중한 시간 잡아먹기로 발목을 잡고 있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소설 <현청접대과>에서 재밌는 점 중의 하나는 작가 자신의 역할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는 점이다. 물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도무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공무원들을 조종하기 위해 언론의 힘을 빌고, 퍼블릭 코멘트/옴부즈만 시스템을 이용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 포인트야말로 여론에 약한 그네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아리카와 히로 작가의 클린 히트였다고나 할까.

 

이 소설로 우리에게는 정말 알려지지 않은 시코쿠 고치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볼거리와 할거리 그리고 먹거리로 넘치는 곳이라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그리고 관광의 빈틈을 메워주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권리에 대한 지적도 멋지다. 훗날 내가 시코쿠에 가게 된다면 그건 전적으로 아리카와 히로 작가의 <현청접대과>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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