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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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의 글과 이제야 만났다. 이미 책은 작년 창비 문학팟캐스트 황금시대의 책소개를 통해 알게 되었고, 차일피일 미루던 독서는 갑오년 새해에 드디어 마칠 수가 있었다. 이미 <인생>, <허삼관 매혈기> 같은 전작의 명성으로 중국 체제에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위화 작가에 대한 풍문은 많이 들어왔지만, 직접 읽어 보니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하나 틀리지 않았다.

 

소설 <7>은 작년에 내한한 작가가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소설이 아무리 황당해도 중국 현실을 따라가지는 못한다는 말처럼 온갖 황당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소설은 죽었으나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양페이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서사는 기본적으로 플래시백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양페이의 전언을 바탕으로 그의 삶을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 인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보다는 상부 계층으로 대학교육을 마치고, 어엿한 회사의 중견 사원으로 양페이는 삶의 계단을 차곡차곡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잘 나가는 아내와의 이혼 그리고 평생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아버지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자 아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아 가출을 하면서 원하지 않던 질곡으로 빠지게 된다. 그리고 자주 들르던 탄가네 식당에서 화재사고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엔딩을 의미하지만, 위화 선생의 <7>에서 영원한 이별 같은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재화의 많고 적음으로 평등이 나뉘는 사바세계로 가면 누구나 평등할 줄 알았지만, 저승에서도 불평등은 존재한다는 역설을 위화 작가는 예리하게 지적한다. 사후 돌봐줄 이 하나 없이 죽은 이들에게 수의, 상장 그리고 묘자리 등은 철저하게 타인의 이야기일 뿐이다. 심지어 빈의관(화장터)에서조차 생전의 지위, 계급 혹은 부의 많고 적음에 따라 플라스틱 의자에 구비된 일반석으로 가거나 아니면 가죽 소파가 놓은 VIP석으로 안내받게 마련이다. 누구나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라고 선전하는 중국의 이면을 작가는 저승세계에 빗대 일갈한다.

 

지금까지가 소설의 워밍업이었다면 이제 카론의 도움으로 스틱스를 건너기 전, 양페이가 만나게 되는 삶의 진실은 소설 <7>의 핵심이다. 우리나라 막장소설의 필수요소로 자리 잡은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화는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기차에서 태어난 양페이가 어떻게 21살난 젊은 선로 전환공 양진뱌오의 아들이 되었는지 그리고 젊은 아버지는 어떻게 양페이를 훌륭하게 키웠는지 위화 작가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 유려하게 전개한다.

 

양페이의 연애이야기 또한 압권이다. 누구나 눈독들이던 아내 리칭을 얻게 된 과정 그리고 짧지만 행복했던 순간들과 이별이 이어진다. 양페이의 이웃 셋집에 살다가 남자친구가 진품 아이폰 대신 짝퉁 아이폰을 사주었다고 홧김에 죽은 슈메이와 그런 슈메이의 묘자리를 구해 주기 위해 장기밀매를 했다가 역시 같은 신세가 된 우차오의 희극반 비극반의 이야기들이 소설 <7>을 수놓는다. 중국 당국의 엄격한 산아제한으로 유기된 영아들을 의료 쓰레기라 부르는 장면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그런 아기들을 저승에서 사랑으로 보살피는 리웨전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며 양페이가 재회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빈의관에서 아버지와의 재회는 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과 이웃한 우리나라도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개발 같은 이슈가 근현대사를 장식하고 있듯 이웃도 만만치 않은 역사의 궤적을 지니고 있다. 외세의 침략, 제국시대의 종말, 국공내전, 문화대혁명 등은 문인들에게 화수분 같은 글쓰기의 소재가 되는 동시에 쉽게 접근하기 쉽지 않은 그야말로 계륵 같은 존재다. 수천 년 검열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은 예전 같은 무조건적인 판금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느낌이다. 오히려 작가들을 전업작가로 채용해서 국가의 녹을 받은 시스템에 편입시켜 작가의 사회비판을 순치하는 고단수 전략을 구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였을까? 중국 지도부가 풀어야할 미래의 난제인 개혁 개방의 파고에 기인한 상상을 초월하는 빈부의 격차와 양극화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위해 위화 작가는 작품의 무대를 사바세계에서 카론의 시간이 지배하는 저승으로 옮겼다. 그리고 중국 내에서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위화 작가가 짜깁기했다는 비판도 있다고 하는데, 소설보다 황당한 현실이 판치는 중국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위화 작가가 시전한 신의 한수로 보인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생각한 죽음조차 빈부의 격차에 따라 평등하지 않을 수 있다는 소설의 설정은 위화 작가가 <7>에서 보여주는 희비극의 정수다. 어쩌면 진흙탕 같은 사바세계에서 도피하기 손쉬운 방법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삶의 진실이 당면한 속수무책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고려한다면 그것조차 어쩔 수 없겠지. 그래서 소설의 결말이 모두가 평등한 안식의 세계로 향하는 적당한 타협에서 마무리된 점이 조금 불만스럽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만하다.

 

역순으로 돌아가 <허삼관 매혈기><인생>를 읽어보고 싶다. 순화되었다는 평을 듣는 <7>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그리고 내가 작년에 <7>을 읽었다면, 내가 읽은 2013년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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