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의 몸값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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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소설의 원제부터 살펴보자. 원제가 <King's Ransom>이란다. ‘랜섬이란 무슨 뜻이냐, 그렇다 몸값이란 뜻이다. 범죄의 세계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한 범죄가 있다.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범죄는 어린이 유괴라고 생각한다. 55편이나 되는 87분서 시리즈를 써 제낀 상고수 에드 맥베인은 <킹의 몸값>에서 어린이 유괴 범죄에 도전한다.

 

개인적으로 전작주의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렇게 많은 작품 컬렉션을 갖고 있는 작가라니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킹의 몸값>은 비정한 기업가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주식매집을 통한 경영권 확보를 추구하는 냉혈한 사업가 더글라스 킹의 집에서 시작된다. 고급 여성화 제조에 일가견이 있는 그레인저 제화에서 잔뼈가 굵은 킹은 그야말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독자는 사건 전개와 더불어 그가 얼마나 냉정하고 유능한 인물인지 알게 된다.

 

더글라스 킹은 스모크 라이즈라 불리는 아이솔라 시에서도 부유층이 사는 동네에 거주하는 성공한 사업가다. 미모의 아내와 아들,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그에게 끔찍한 비극의 징조가 엿보인다. 유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복수의 범인들은 50만 달러라는 거금을 이 부자 주인공에게 요구한다. 문제는 이 얼치기 3인조 유괴범들이 킹의 아들인 바비가 아니라 바비의 친구이자 킹의 운전사네 아들인 제프리 레이놀즈를 잡아갔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소설은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분절로 접어든다.

 

당연히 자기네 관할에서 유괴사건이 발생하자, 87분서 소속 형사들이 현장에 파견된다. 사실 <킹의 몸값>은 형사들의 활약보다는 아슬아슬하게 위기에서 빗겨 나간 더글라스 킹과 유괴범 트리오가 사실상의 주인공이다. 라디오 장비를 훔쳐 경찰간의 교신 내역을 죄다 엿들으면서 경찰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에디 폴섬은 어려서부터 학교를 들락거리며 다양한 기술을 습득한다. “학교라는 별칭이 딱 어울리는군. 그의 아내 캐시는 이런 에디를 사랑하지만,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사랑의 방조죄라고나 할까. 딱 한 번만 은행을 털고 멕시코로 도망가서 살겠다는 그녀의 의도는 이렇게 유괴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불쌍한 제프리를 도와 탈출시도도 해보지만, 악당 사이 바너드의 마수에서 벗어나기엔 역부족이다.

 

, 두서없이 글을 쓰다 보니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빼먹었다. 범인들은 물주 더글라스 킹에게 제프리 레이놀즈의 몸값을 요구한다. 당연히 비정한 사업가이자 자본가인 더글라스는 한창 집중하고 있던 그레인저 제화의 주식매집을 위해 2/3에 해당하는 50만 달러를 내놓을 용의가 전혀 없다고 목놓아 외친다. 그러자 그의 아내이자 선량한 사마리아 여인으로 등장하는 다이앤은 더글라스를 협박한다. 제프리를 위해 몸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의 곁을 떠나 버리겠다고. 이야기가 정말 재밌게 흐르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더글라스와 다이앤이 목소리 높여 싸우는 갈등이야말로 소설 <킹의 몸값>을 이끌어 가는 추동의 근원이다.

 

1959년에 발표된 이 소설에서 나름 과학적 초동대응을 위해 범인들이 훔친 차량의 타이어 자국을 유심히 조사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긴 요즘처럼 DNA나 각종 첨단장비를 이용해서 범인검거에 나서는 시대에 비하면 격세지감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초반에 더글라스의 아들이 유괴되는 방향으로 사건이 진행될 줄 알았던 독자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면서 에드 맥베인은 묘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 시작한다.

 

킹의 아내 다이앤은 성공만 바라보고 질주하는 남편을 맹렬하게 비난한다. 가난을 모르고 자란 그녀가 과연 입지전적 성공을 이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외치는 남편 더글라스를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대척점에는 어린이 유괴 공범이지만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캐시가 서 있다. 두 캐릭터 모두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얄궂게도 피해자와 가해자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독자는 87분서 소속 형사들이 뛰어난 수사 실력을 발휘해서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짓길 바라지만 그것 또한 요원할 따름이다. 에드 맥베인은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보다는 어쩌면 스스로 추동되어 굴러가는 플롯에 더 매력을 느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스토리를 방임하는 느낌이다. 하긴 우리네 삶이 언제는 기승전결 구조로 전개되었던가.

 

이젠에 읽은 <아이스>에 비해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처음으로 만난 에드 맥베인의 <조각맞추기>보다는 낫다는 느낌이다. 이제 다음 타자는 <살인의 쐐기>가 될텐데 그 작품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읽을수록 찰진 맛이 나는 에드 맥베인 87분서 시리즈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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