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시티 민음사 모던 클래식 17
레나 안데르손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인류는 창조 이래 유토피아를 꿈꿔 왔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위한 노동이 없는 곳이야말로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아니겠는가. 산업화와 그에 따른 기계문명의 발달이 우리에게 그런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 거라고 믿어왔지만, 그건 한낱 환영에 지나지 않았다.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으로 보다 많은 생산물을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재화의 불균등한 분배 때문에 잉여 생산물의 집중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리고 영양분의 과다 섭취와 운동부족으로 우리 몸은 날로 비대해져 가고 있다. 이렇게 언 듯 보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자본주의와 생산 그리고 비만이라는 상이한 소재를 가지고 스웨덴 출신의 작가 레나 안데르손은 <덕 시티>란 발칙한 창조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예전에 대학에서 나에게 상징에 대해 설명해주신 교수님의 강의에 따르면, 영화 포스터 하나만으로도 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논리를 그대로 <덕 시티>의 책표지에 적용시켜 보면 좀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현실을 픽션화한 소설 <덕 시티>의 주인공 중의 한 명인 도널드 D(명백히 월트 디즈니 만화 주인공의 의인화다), 도널드가 사랑해마지 않는 대학교수 데이지 그리고 이 둘과 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는가 하면 실제적으로 덕 시티를 지배하는 자본가 존 폰 앤더슨이 나란히 표지에 등장한다.

 

부차적인 설명을 할 것도 없이 <덕 시티>는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 미국을 상징한다. 아들 조지 W. 부시 시대에 쓰인 이 소설에는 전쟁도 등장한다. 덕 시티의 에이햅군은 지방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해서 그야말로 치열한 살과의 전쟁을 벌인다. 고도비만이 일상인 삶 가운데, 도널드는 삼촌 존 폰 앤더슨이 운영하는 도넛 공장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도넛 생산에 여념이 없다. 가끔 나오는 불량 제품은 그의 입으로 쓱싹 사라져 버린다. 우리의 주인공 도널드는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욕망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발현이라고 해야 할까.

 

한편, 이미 영양의 과잉 섭취로 뚱뚱이들이 넘쳐 나는 가운데, 새로운 먹거리 상품을 개발해서 시장에 내놓으려는 탐욕스러운 자본가 존 폰 앤더슨이 있다. 자기 나름의 성공 신화에 빠진 그는 자신의 제품에는 절대 입조차 대지 않는다. 자기가 만든 다양한 제품 때문에 자유와 평화가 넘쳐 나는 덕 시티 시민들은 당뇨를 필두로 한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지만 그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 체지방 관리에 엄격하며, 혹독한 다이어트를 일상처럼 수행한다. 각성한 자본가답게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 가문처럼 문화 후원은 물론 대학 강의에 참석하며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속물처럼 보이지만, 성공신화에 내몰리는 현대인의 표상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현대문명 비판 소설 <덕 시티>는 숱한 상징들로 넘실거린다. 인슐린과 설탕 자원으로 덕 시티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본가 존 폰 앤더슨은 투자가 아닌 투기로 세계 경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도 막대한 공적 자금으로 회생한 월 가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소설에 나오는 흰 고래들은 그저 다달이 손에 쥐여지는 급여로 근근이 버티는 보통 사람을 의미한다. 어느 순간 공공의 적으로 내몰려, 에이햅군에게 이끌려 강제수용소로 향하는 흰 고래들의 모습에서는 지난 세기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도 한다. 영양 과잉 섭취로 비만에 시달리면서도 운동으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다수의 흰 고래들은 문자 그대로 잉여취급을 받는다. 우리의 주인공 도널드 D도 예의 부류에 속할 테지만, 든든한 뒷배(존 폰 앤더슨) 덕분에 강제수용소행도 면하고 좋은 의료진의 도움으로 생을 이어간다.

 

모든 것이 계량화된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인간의 몸 역시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아름다움의 다양성은 무시되고, 획일화되고 성형된 아름다움이 미의 기준으로 제시된다. 건강한 몸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엔 뚱뚱한 몸이 부의 상징이었다면, 바뀐 시대에는 비만은 나태와 의지박약의 상징일 뿐이다. 돈과 시간이 충분한 사람들은 권력화된 자신의 이상적 몸만들기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다. 그리고 채소와 과일 같은 제대로 영양 섭취를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비만에 시달리게 되는 역설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덕 시티>에서 진짜 무서운 요소는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는 전체주의적 통제다. 예전에는 불온한 사상을 통제했다면, 덕 시티에서는 암묵적인 동의 아래 공공의 적인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뚱뚱하다 하더라도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게 하는 통제가 초래할지도 모르는 문제야말로 이 책에서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다. 책에 등장하는 지식인 해럴드 벨은 권력자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먹고 싶은 걸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맛대가리 없는 건강식 대신 불법 레스토랑에서나 취급하는 프렌치 프라이, 고기 파이 같은 진짜 먹거리야말로 인류가 추구해야할 음식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주장하는 음식에 대한 자유의지는 이제 어쩌면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덕 시티>를 읽는 동안에 참 많은 생각들이 들었었는데, 막상 리뷰를 쓰다 보니 대부분 휘발되어 버렸다. 전장에 투입된 도널드의 세 명의 조카들, 도널드-데이지 그리고 존 폰 앤더슨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에 대한 이야기, 인류가 단 것을 먹기 위해 진화해 왔노라는 이야기 등등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종잡을 수 없어지는 서사 구조 탓으로 돌려야할까. 현대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한 현대판 우화를 본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감독은 다음의 사람을 추천한다. 마이클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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