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허풍담 2 - 북극의 사파리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냥꾼 외에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 북극의 오지에서 16년을 산다고 가정해 보자. 게다가 그곳은 하루종일 해가지지 않거나 반대로 하루종일 해가 안 뜨는 적도 많지 않은가.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곳을 동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건 아닐 것이다. 속세의 번뇌를 피하고자, 악다구니 써야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쩌면 그곳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천국이 아닐까.

 

덴마크 출신의 작가 요른 릴은 이런 오지 그린란드에서 자그마치 16년이나 살았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으니 분명 남들이 보지 못한, 하지 못한 일들을 숱하게 체험했을 것이다. 여기에 글을 쓰겠다는 욕망만 더해지면, 정말 대단한 작품이 나오지 않겠는가 말이다. 요른 릴은 극 중에서 명백하게 자신의 페르소나인 안톤 페데르센으로 분해서 자신의 동료 사냥꾼들과 그린란드 북동부의 오지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제 막 시험을 치른 안톤은 꿈꿔오던 북극의 영웅이 되고자 조국 덴마크를 떠나 바다표범 사냥선인 베슬 마리호를 타고 그린란드에 도착한다. 물론 처음에는 이것 저것 배울 것이 많아 고달픈 시절을 보내기도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과 별 볼 일 없는 북극 생활에 염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러던 차에 중대한 결심(?)을 한 안톤에게 한 마리의 눈멧새가 찾아 오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마치 의상대사가 해골 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듯이, 우리의 안톤도 그런 유심론에 도달하게 된다.

 

북극 사나이들의 허풍은 그야말로 끝이 없다. 얼치기 사냥꾼 시워츠는 자기를 밥으로 생각하고 공격해오는 흰곰의 습격을 받고 스트립쇼를 해대며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다. 하지만 엉겁결에 그만 은신처로 사냥총을 가져 오지 못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그렇다고 마냥 절벽 빌라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어 부지깽이와 손도끼를 무장하고 사냥총을 회수하러 나섰다가 흰곰과 마주치는 봉변을 당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흰곰 못지 않은 짐승같은 포효로 위기를 모면하는 시워츠. 얼치기 사냥꾼보다 한수 위인 흰곰은 자기 고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빌라의 지붕에 올라가 사냥감을 엿본다. 시워츠는 이 위기를 실수 한 방으로 멋지게 해결한다. 그야말로 잊지 못할 신의 한수 같은 허풍이다.

 

배는 부서지고 엉뚱하게 빙산에 올라 바다표범을 잡아먹으며 며칠을 여행한 끝에 구조되는 이야기,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여인인 엠마를 거래하며 기나긴 겨울을 보내는 사냥꾼들의 터무니없는 허풍까지 북극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하나 같이 금시초문이다. 문제는 요른 릴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 허풍이 재밌다는 점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진실성도 담보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북극에 가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북극 허풍담> 두 번째 인스톨에서 압권은 역시 부제인 <북극의 사파리>였다. 영국에서 오신 저명한 숙녀의 요구대로 북극 사향소를 잡기 위해 동원된 안톤과 그의 동료 원주민. 그들은 행여라도 숙녀의 심기에 불편함을 끼쳐 드릴까봐 고약한 냄새로 얼룩진 자신의 오두막을 청소하고 난리법석을 떨지만, 고명하신 레이디는 북극 사냥을 원한다. 그들처럼 오로지 방한을 위해 되는 대로 걸치고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욕조까지 동원한 사파리 팀이 구성된다. 한편 돈 밖에 모르는 올슨 선장은 북극의 원주민들에게 협잡을 부리려다가 걸려 옴팡지게 댓가를 치른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생각지 못한 모자와 고기 요리도 맛보게 되는 장면을 상상하면 정말 유쾌해진다. 그런 그들을 끝까지 북극에 사는 원주민이라고 생각하는 숙녀의 착각은 정말 일품이었다.

 

요른 릴은 허풍이라는 유머를 밑밥으로 해서, 우리가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세계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사는 북극의 사냥꾼들의 모습에서 어떤 감흥이 드는가? 단순하게 우리와 다른 이들의 삶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 즐겁고 재밌는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작가의 글은 인류사적 측면에서 내가 체험해 보지 못한 다른 공간에 삶에 대한 진실한 르포르타주의 방식으로 삶의 본질을 관통한다. 작가의 그런 정신과 공명하게 된다면, <북극 허풍담>은 더할 나위 없는 보물일 것이다.

 

<북극 허풍 시리즈>는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일단 1권에서 3권까지 세 권이 나왔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시원치 않은가 보다. 이 책의 편집을 맡은 편집자의 말에 따르면 나머지 7권을 출간시키기 위해 사장님에게 출간 압박용 메일을 보내란다. 친절하게도 그 주소는 책의 맨 마지막 장에 뚜렷하게 인쇄되어 있다. 먼저 두 번째 인스톨을 읽고, 지금은 첫 번째 인스톨을 읽고 있는데 목하 사장님에게 이메일을 써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이 시리즈를 계속 만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여전히 읽어야할 다른 책들이 많으니 어찌 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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