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각설하고 본론으로 직접 들어가자. 이 책의 역자 홍성광 씨는 서두의 <해설>에서 글쓰기의 본질을 독자적 사고, 독창성이라고 못 박는다. 힐링의 시대를 지나 소통의 시대, 다시 한 번 글쓰기 능력이 각광을 받고 있다. 사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사고를 가다듬는 글쓰기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스펙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텍스트 읽고 쓰기에 전혀 훈련이 되지 않은 몰지각한 이들이 세상에 넘쳐난다. 역자가 꼽은 글쓰기에서라면 둘째가라고 한다면 서운해 할 두 명의 철학자가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그들이 바로 쇼펜하우어와 니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먼저 고백해야할 점이 한 가지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다 들어봐서 아는 이 철학자들의 저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책은 아예 접해본 적이 없으며, 니체의 저술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읽긴 했지만 여전히 이해불가며 그나마 쉽다고 생각한 아포리즘 모음집 역시 예상과 달랐다. 이렇게 스스로의 무지에 대해 고백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먼저 쇼펜하우어는 독자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무턱대고 읽는 독서를 지양한다. 독서는 자신의 생각이 아닌 타인의 생각에 매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사고가 막혀 있을 때만 독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독자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는 현실세계에서 모든 것을 체험하면서 사고의 능력을 기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호함과 확고함으로 준비된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표현하려는 것을 정확하게 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읽다 보니 어째 니체의 위버멘쉬가 떠오른다.

 

저술가의 분류에 있어서도 쓰기 위해 쓰는 사람보다 사물 자체를 서술하는 낫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그는 표절이 난무하는 21세기 한국에서도 새겨 들을만한 정직하지 못한 저술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익명성에 대해서도 쇼펜하우어는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하는데, 요즘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익명의 덧글논쟁과도 일맥상통한다. 익명으로 행해지는 비평음 모두 거짓말과 사기로 규정하는데, 자유주의자들이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저술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쇼펜하우어는 간결하면서도 구체적인 표현으로 누구나 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요즘 다수의 신문기사는 물론이고 문학비평 같은 경우에는 해설이 없으면 이해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표현이 명료하지 못하고 모호한 문장에 대해서는 어딘가 정신적으로 빈곤하다는 반증이라는 지적이 무섭다. 충분한 사고를 한 다음에 쓴 글이 그럴 수 있을까? 상대방과의 소통을 위해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책을 많이 읽어 바보가 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가? 쇼펜하우어는 독서의 맹점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마지않는다. 어떻게 보면 독서하는 나의 머리는 타인의 생각이 뛰노는 놀이터에 불과하단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다시 한 번 독자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점을 독자에게 주지시킨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 세상이란 참으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터득할 것을 주문한다. 글쓰기를 뛰어 넘어 양서를 접하고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선배 독서가의 충고는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쇼펜하우어가 글쓰기/독서에 대해 구체적인 실천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이와는 달리 니체는 불가의 선문답 같은 아포리즘으로 독자에게 도전한다. 모든 진리는 서로 통달한다고 했던가. 잘 쓰기 위해서는 보다 잘 생각(사고)해야 한다고 니체는 말한다. 불멸의 문체는 꿈꾸는 이들에게는 이 같은 아포리즘을 남기기도 했다. 문필가가 되기 부끄러워 하는 자야말로 최고의 저자가 될 것이라고.

 

아이러니하게도 서툰 문필가도 우리에게는 필요하다고 니체는 말한다. 어쩌면 막장 드라마가 범람하는 우리 현실에 딱 들어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덜 발달하고 미성숙한 이들의 취향에 제격이라니 말이다. 그들만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미성숙하고 서툰 문필가 또한 필요하단다.

 

쇼펜하우어의 명확하면서도 간결한 글쓰기에 대한 글들은 그야말로 귀에 쏙쏙 들어왔다. 반면 니체의 쉬워 보이지만 오히려 수많은 사고를 거듭해야 비로소 알까말까하는 아포리즘들은 전혀 와닿지 않았다. 니체가 자신의 글이 읽히지 않기를 바랐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그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에 좌절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물론 이조차도 자위적 사고의 발로이겠지만. 어쨌건 20세기를 주름 잡았던 두 명의 철학자의 글을 통해, 글쓰기에 대해 한 수 배웠다. 그들은 끝없이 독자적인 사고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하라고 목 놓아 외치는데 그들의 충고가 앞으로 나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여전히 남의 생각의 놀이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글쓰기가 될지, 아니면 깨달음 대로 그것을 뛰어넘는 독자적 글쓰기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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