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
김기연 지음 / 그책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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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처음으로 접한 음악을 듣는 도구는 바로 카세트 플레이어였다. 그 시절을 풍미했던 독수리표 카세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집에서 텔레비전을 빼고 유이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치였다. 이제 구식이 되어 버렸지만, 에잇트랙(eight track)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카세트 플레이어, 휴대용 워크맨 CD 플레이어 그리고 지금의 mp3 플레이어에 이르기까지 참 음악 미디어가 많이 바뀌었구나 싶다. 그 시절에는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는 음악들이 참 많았는데 이젠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못 듣는 음악이 없는데 음악에 대한 열의는 예전만 못하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추억의 음악/음반들을 카피라이터, 캘리그래퍼 혹은 아트 디렉터라는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김기연 씨의 <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에서 만나볼 수가 있었다.

 

솔직히 이 책에서 소개된 레코드 앨범 커버를 통해 해당 음반의 뒷이야기 혹은 아티스트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내 기대와는 달리 <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는 전적으로 김기연 씨가 만난 음악/음반에 대한 사설(私設)이 주를 이룬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령 예를 들어 정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하드록 그룹인 레드 제플린의 전설적 네 번째 앨범 파트에서 지미 페이지의 신들린 듯한 기타 연주보다 표지에 나온 노인네가 등에 진 땔나무에서 바로 아궁이 솥밥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 간다. 그 유명한 <천국의 계단>(stairway to heaven)에 대한 언급은 조금도 없이.

 

한창 전성기를 도모하던 시절의 빌리 조엘의 앨범에서도 역시나 내가 궁금해 하던 앨범에 대한 에피소드나 그 음반에 실린 수록곡에 대한 이야기 대신, 당당하게 짱돌로 유리집을 쳐부수려는 어느 용감한 사나이에 대한 헌사로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실 이름은 정말 많이 들어 봤으나 80년대 달달한 팝송에 물든 청소년기를 보낸 나에게 유라이어 힙 혹은 제스로 툴 같은 밴드의 이름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언젠가 대학로에 있는 LP바에 들러 그야말로 밤을 세워 가며, 어려서 한창 듣던 헤비메틀/하드록 음악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 가게의 주인장 역시 이제는 구하기도 어려운 플라스틱 LP로 음악듣기를 고집하는 아날로그 예찬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시절 누구나 다 LP를 들을 적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이제 LP는 그야말로 극소수의 매니아들만 찾는 레어 아이템이 되면서 그 희귀성 때문에 자체가 예스러움의 정수가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말로만 듣던 롤링 스톤즈의 그 유명한 <스티키 핑거즈>의 앨범 표지를 보며 정말 앨범에 지퍼가 달렸을까? 직접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더블 앨범도 그렇게 가지고 싶어했지만 결국 수중에 넣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떨렁 전화기 사진 하나만 걸어 놓은 J 가일즈 밴드의 앨범 표지도 참 인상적이다. 이제 CD 시절에는 불가능해져 버린 앨범을 쭉 펼치면 원래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그것이 나오는 앨범 트릭도 이젠 찾아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외국의 저명한 레이블 소개는 개인적으로 좋았는데,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요즘에는 거의 음악을 듣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는 레이블만으로도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의 음반을 골라낼 수가 있었다. 영국 출신 가수들이 주로 애용하던 버진, 크리설리스 같은 이제는 추억의 저장고에서나 들을 수 있는 레이블 이름이 참 반가웠다. 역시 영국 출신 밴드인 데프 레퍼드도 버티고 레이블이었던 것 같은데 왜 히트곡 <Pour Some Sugar On Me>가 국내 라이선스 음반에서는 들을 수가 없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책에 실린 흑백 사진을 보며 또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클래식 음반에 관한 부분이었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LP판 중에 분명 클래식 음반도 있을 텐데, 한 장의 사진에 실린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발터 기제킹, 소설 <새벽의 약속>에도 카메오로 등장하는 로맹 가리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예후디 메뉴인 그리고 베를린필 카라얀의 전임이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사진이 실린 앨범 표지를 보니 클래식에 대해서도 좀 다뤄줬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여전히 몇 장의 레코드를 가지고 있다. CD가 널리 보급되면서 애지중지하던 음반들을 모두 친한 친구에게 줘 버렸지만, 그 뒤에 어찌어찌해서 손에 넣게 된 레코드는 레코드 플레이어의 부재로 들어 보지도 못했다. 나중에라도 기회가 닿게 되면 레코드 플레이어를 구해서 들어 보고 싶다. 그 희망이 언제나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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