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6
오오카 쇼헤이 지음, 허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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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카 쇼헤이,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어서 구글과 위키피디아의 도움으로 그의 행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일본의 명문 교토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 그중에서도 스탕달 전문가였던 그는 태평양 전쟁 막판에 강제 징병되어 필리핀 전선에 투입되었다. 패망해 가는 일본 제국주의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필리핀 전장에서 무기며 병참마저 없는 가운데 그야말로 맨주먹으로 파죽지세로 밀려오던 미군과 맞서 싸우다 결국 포로가 된 과정을 작가는 전쟁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포로기>를 통해 펼쳐낸다.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해서 재구성된 <포로기>는 우선 어떻게 해서 오오카 쇼헤이가 포로로 잡혔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태평양 전쟁 말기, 심각한 병력 부족에 직면한 일본 군부는 궁여지책으로 징병연한을 넘긴 삼십 대 장정들까지 징병하기에 이른다. 36세에 그렇게 이등병으로 군에 입대한 작가는 3달의 교육을 마치고, 필리핀 전선 민도로 섬에 배치되게 된다.

 

태평양 전쟁 초기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호주로 도망갔던 맥아더는 복수를 벼르면서 압도적인 물량을 앞세워 레이테 섬과 민도로 섬에 차례로 상륙전을 감행한다. 사실 필리핀의 주도인 루손 섬에서 결전을 치르겠다는 일본 군부로서는 그 수많은 필리핀 군도의 섬들을 방어할 여력이 없었다. 한편, 작가가 주둔했던 민도로 섬의 일본군은 빈약한 장비와 보급물자의 부족 그리고 말라리아라는 무서운 질병이 만연한 가운데,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운 미군은 궁지에 몰린 일본군들을 토끼몰이하듯이 그렇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오오카 쇼헤이 역시 말라리아에 걸려 도저히 미군을 상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속해 있던 니시야 중대를 따라, 필리핀의 정글을 떠돌지만, 빈번한 게릴라의 습격과 기아에 시달리던 중에 결국 미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만다. 초반에 작가는 투항과 포로로 잡힌 것에 대한 명백한 구별을 시도한다. 일본 군부에서는 포로로 잡힌 일본군은 모두 처형이 된다는 날조를 서슴지 않았고, 또 포로가 되는 것은 치욕이라는 세뇌교육에 전념했다. 그 결과, 일본군들은 투항하느니 차라리 자결을 강요받았다. 이런 상황들은 이미 타라와, 사이판 그리고 이오지마에서 수없이 연출됐었다.

 

역시 인텔리 출신답게, 오오카 쇼헤이는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면서도 어떻게 해서 자신이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는가에 대한 사유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개인을 말살하려는 거대한 폭력의 실체로서 일본 군부와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을 유감없이 표명하기도 한다. 아울러,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대상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으로서의 공포에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역시 일본 제국군의 일원으로 투항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포로가 되었다는 수동형에 집착하지 않았나 싶다. 초반에 등장한 인물들을 모두 익명으로 처리하면서, 포로가 된 사실을 치욕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혼네[本音]’를 드러내기도 한다.

 

야전병원 그리고 포로수용소로 전전하면서, 작가는 군부에 의해 세뇌받은 수치와 치욕 대신 살기 위한 인간의 본능 선택한 이로써 동족들을 대할 때 느끼게 되는 공범자의 수치심에 대해 적확한 묘사를 한다. 근대소설의 창시자로 캐릭터의 심리묘사에 달인이었던 스탕달 전문가다운 사물과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심미안으로 전쟁포로 아닌 수인의 신분으로 갇혀 있던 포로들의 심리적 변화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자신도 전쟁이라는 불가피한 거대한 폭력 앞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동정하지 않겠노라는 선언을 한다.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한 때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라는 격언으로 싸우던 적의 손에 의해 구원을 얻게 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천황의 <군인칙유><전진훈>으로 태평양 전선을 누비던 일본 제국군들이 포로가 되는 순간, 그들은 군인의 마음가짐을 잃어 버렸다고 작가는 냉정하게 꼬집고 있다.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잃어 버린 그들에게는 오로지 생존과 먹을 것에 대한 탐욕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자신은 미군을 쏘지 않았노라는 작가의 변명이나 휴머니티, 신의 존재감에 대한 인텔리의 고백은 그저 관념의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민도로 섬의 야전병원에서 레이테 섬의 포로수용소로 이송되면서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 체험기는 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영어 통역병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아무런 기술이 없는 일반 병사들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과 수용소 내 포로간의 권력관계를 조근조근하게 분석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통역으로 미군에게 아첨하거나 구걸하지 않았다는 변명을 작은 목소리로 내기도 한다. 그가 레이테로 이송될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으로 동포들이 미군기의 폭격과 기아에 떨고 있을 때, 대조적으로 남국의 아늑한 포로수용소에서(물론 자유가 박탈되었지만) 무위도식하는 자신들에 대한 혐오의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작가도 노름이나 음주 같은 무의미한 행동으로 충만한 포로생활을 질책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통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외부 작업에서 빠져 영내 생활을 하며 영문 잡지나 탐정소설을 탐하면서 얼치기 프로이디즘에 입각한 미국인들에 대해 분석을 하기도 한다. 흑인은 여전히 백인의 노예다라는 그의 글에서,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한 일제의 허구성을 엿볼 수가 있었다. 인텔리 지식인 역시 전체주의 국가의 세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또는 전쟁에 모자라는 자질을 가진 교활하고 나태한 중년 병사들을 모습을 서술한다. 전범들이 가진 생물학적 생존 본능에 대한 지적 또한 일품이었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냉철하면서도 균형감 있게 기술한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기>는 전쟁 문학의 한 획을 그을 만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게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쟁의 원흉이었던 일본 국가의 책임회피였다. 그들이 태평양 전쟁 당시 외쳤던 <대동아공영>은 그들의 새로운 식민 질서를 위한 공허한 구호에 불과했다.

 

그 어느 나라도 기존의 식민 지배자를 대신한 그들의 침략을 원하지 않았다. 일본 제국주의는 아시아에서의 공영이 아니라 아시아 제국의 자원과 노동력이 필요했을 뿐이다. 전쟁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갈수록 현지인들과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보다도 특히 필리핀에서 일본군의 현지인 학대와 잔혹 행위는 필리핀 민중의 원한을 사기에 충분했다. 오오카 쇼헤이는 일부 병사들의 잔학 행위로 애써 축소하려고 했지만, 마닐라와 바탕가스 그리고 필리핀 전역에서 자행된 일본군의 만행은 씻을 수가 없는 전쟁 범죄였다. 자신들이 저지른 조직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 피해자라는 주장 앞에서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그들이 침략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미국도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우수한 전쟁 문학을 만났다는 반가움과 또 한편으로는 반성 없는 지식인의 변명을 들었다는 불편함이 내 가운데서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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