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수녀는 왜 모두의 적이 되었는가 - 17세기 수녀원의 내밀한 역사
크레이그 할라인 지음, 이영효 옮김 / 책과함께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읽을 책을 고를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을까? 물론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주제에 따라 책을 고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주제가 크로스오버된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 책을 살 것이다. 크레이그 할라인의 <마가렛 수녀는 왜 모두의 적이 되었는가>는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에 있어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종교 개혁 시대 그리고 미시사(microhistory)라니. 정말 오래 간만에 읽는 활자 책의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미국국립인문학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구 활동의 일환으로 구 스페인령 네덜란드, 지금의 벨기에의 기록보관서에서 오래된 서류를 뒤지던 크레이그 할라인 교수는 신구교 할 것이 없이 종교개혁의 바람이 몰아치던 17세기 초반 뢰번(나는 왜 루뱅이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드는 걸까)에 있던 회색 수녀회 소속 베들레헴 수녀원의 어느 수녀가 남긴 장문의 편지를 발견해냈다. 그 편지 뭉치가 이번에 읽은 <마가렛 수녀는 왜 모두의 적이 되었는가>의 단초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뢰번의 마가렛 스뮐더르스 수녀는 프로테스탄트의 신교개혁에 대항해서 구교의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각종 개혁안이 포고되던 17세기 초반, 뢰번의 작은 수녀원 베들레헴 수녀원에서 종신 서원을 하고 수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예의 수도원 생활은 그녀가 서원했던 신에 대한 경건과 수도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고해신부의 스캔들로 그녀는 처음으로 수녀원에서 쫓겨나게 된다. 마가렛 수녀는 베들레헴 수녀원을 관할하는 고위 성직자에게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편지로 알리기로 결심한다. 그 결과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400년 전, 지구 반대편의 작은 수녀원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당대의 사회상을 분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와 만나게 됐다.

 

마가렛 수녀와 베들레헴 수녀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수녀들과의 작은 전쟁은 어느 시각에서 보면 성실한 고해신부 헨리 요스와의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마가렛 수녀의 진정으로 알려진 스캔들 때문에 헨리 요스 신부는 베들레헴 수녀원 고해신부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진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혁과 교정을 원하는 일단 수녀와 기존의 체제를 고수하려는 다수 수녀의 대결로 비화된다. 저자 크레이그 할라인은 마가렛 수녀의 기록을 신중하게 검토하며, 그녀의 손을 들어준다. 그녀가 베들레헴 수녀원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쫓겨나는 치욕을 감내하면서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원장 수녀였던 아드리아나 트라위스와 그녀의 충실한 추종자 안나 피흐나롤라와 마리아 요스 일파의 비난이 수녀원의 제일 가는 덕목 중의 하나인 자매애와 상반되는 것이 아닌지 독자에게 꾸준한 질문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경건한 묵상과 성무일도 그리고 공동노동과 분배가 당연하게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중세/근대 수녀원의 실상은 마가렛 수녀의 기록과는 정반대였다. 상대적으로 기부금 모금이 자유로웠던 남자 수도원과는 달리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수녀원에서 연금 형식으로 지원받는 부유한 수녀와 마가렛처럼 그렇지 못한 수녀의 차별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할 수녀원의 공동재산이 수녀원의 권력을 지배하고 있는 원장과 재무 담당 수녀에 의해 편파적으로 집행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일부 몰지각한 수녀들이 신에게 헌신이라는 본업보다 질 좋은 맥주를 실컷 마시고 흥청대는 파티를 벌이고, 수녀원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속인 남자들과 수다 떠는데 열중하는 장면에서는 이들이 신에게 서원한 수녀인가 하는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아드리아나 원장을 비롯한 대다수의 수녀들에게 수녀원 밖에서 망루의 참새처럼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감시하고 상급 성직자들에게 고발하는 마가렛 수녀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대주교가 내린 명령도 가볍게 무시하고, 기존의 문제를 교정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크레이그 할라인은 그 원인을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차로 분석한다. 용서와 화해라는 종교적 미덕이 두 적대적인 세력 사이에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물론 크레이그 할라인 교수는 마가렛 수녀의 치명적인 실수도 빠트리지 않는다. 마가렛 수녀는 치유를 위해 머물던 성지 스헤르펜회벌에서 후원자들의 허가 없이 베들레헴 수녀원으로 복귀를 감행하면서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의 이런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은 그녀의 적들에게 좋은 공격거리를 제공해 주었고, 후원자들을 실망시켰다. 개인적으로 더 궁금했던 점은 왜 그녀가 베들레헴 수녀원에 그렇게 머물기를 원했는지 알 수가 없다. 객관적으로 판단해 봤을 때 자기 정화능력도 그럴 의지도 없는 베들레헴 수녀원과 동료 수녀들에게 미련을 가질 필요가 있었을까?

 

베들레헴 수녀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돋보기를 대고, 종교개혁이나 종교전쟁 같은 거시적인 안목이 아니라 수녀들 간의 불화 혹은 다툼 같은 미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한 크레이그 할라인 교수의 시도와 관점이 신선하다. 주관적인 점이 없지 않지만, 당시 수녀들을 강제하던 조직적인 시스템과 위계질서에 대항한 마가렛 수녀의 기록은 그런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다. 스스로 고립된 수녀원 생활을 선택했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편애와 따돌림에 고통 받으면서도 절망하지 않은 그녀의 노력 덕분에 격변의 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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