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번지는 유럽의 붉은 지붕 - 지붕을 찾아 떠난 유럽 여행 이야기 In the Blue 5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마냥 부럽다. 이렇게 백승선 씨처럼 많은 유럽의 나라에 가보고, 번지는 추억을 되새겨 볼 수 있다니 말이다. 지금까지 나온 네 권의 번짐 시리즈가 개별 나라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책은 전 유럽을, 그 중에서도 붉은 지붕과 잿빛 지붕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아우른다.

 

언제나처럼 독자를 반겨주는 푸근한 사진이 담긴 기행문은 어느새 백승선 씨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느낌이다. 책을 처음 보는 순간, 삭막한 회색빛 아파트 단지가 삶의 표준 양태가 되어 버린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다채로운 빨간 지붕의 화려한 행렬에 그만 황홀해졌다. 모름지기 여행이란 일상의 권태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붉은 지붕이 주는 시각적 만족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직접 가봤던 파리와 잘츠부르크 그리고 그간의 번짐 기행문에서 만날 수 있었던 두브로브니크, 브뤼헤, 겐트, 스플리트, 토룬이라는 도시 이름이 어찌나 반갑던지.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오래 전에 함께 했던 소중한 여행의 추억이 샘솟는 기분이 들었다. 미처 가보지 못한 피렌체, 바르셀로나 그리고 뤼데스하임 같은 지명에서는 새로운 도전의식을 고취시킨다. 나도 언젠간 가보고 말겠다는.

 

그중에서도 가장 나의 눈길을 끄는 건 몬테네그로의 페라스트였다. 도대체 어디에 위치한 곳인지 알고 싶은데 구글맵으로 찾아보는 수고도 마지않았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페라스트-몬테네그로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나온 블로그를 클릭해 보니 바로 백승선 씨의 첫 번째 범진 시리즈였던 크로아티아의 일러스트 그림이 대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동일한 분의 블로그였던가. 책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훨씬 많은 사진에 그만 입이 쩍 벌어졌다. 때로는 구구절절한 그런 말보다, 한 장의 사진에 더 울림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무언가 좀 부족한 마음에 찾아낸 페라스트의 감흥은 유달리 풍부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기행과 문학의 접목도 인상적이었다. 오래 전에 헌책방에서 만나 사기는 했지만 여전히 읽지 못하고 있는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는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걸까. 캐나다 작가 스티븐 갤러웨이의 장편소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의 배경이었던 사라예보도 마찬가지다. 저격수의 총탄과 박격포탄이 난무하는 내전의 한복판에서 폭격으로 사망한 22명의 망자를 위로하며, 평화를 염원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첼로 연주를 감행했다는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여행의 고갱이는 역시 아름답고 수려한 풍광이 아니라 그 풍광을 완성시키는 인간의 이야기였다.

 

번짐 시리즈를 통해 작가 백승선 씨의 아름다운 풍광을 찾아나서는 창조적인 가치 추구야말로 이 시리즈의 핵심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로 말미암아 번져 나가는 행복 바이러스가 모쪼록 계속해서 창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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