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귀스타브 도레 그림,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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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도미에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 판화가로 널리 알려진 귀스타브 도레의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도레는 특히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주제로 한 판화로 널리 알려졌는데, 당시 신흥 부르주아 자본가들에게 도레의 작품은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로마인 이야기>에 이어 다시 중세로 돌아간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는 나나미 여사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문장과 함께 귀스타브 도레의 세밀한 판화로 천 년 전 신의 뜻으로 행해진 성전을 되짚어 보는 재미가 있다.

11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성도 예루살렘이 위치한 중동의 팔레스타인에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어느 정도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로 서진하는 무슬림 세력의 비잔틴 공략이라는 국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알렉세이오스 1세가 로마 교황 우르반 2세에게 구조를 요청하면서 천년에 걸친 종교전쟁의 도화선을 당기게 된다. 당시 서유럽 제국 사이에서 최고의 종교권력을 자랑하던 로마 교황은 유럽 각지의 봉건 제후에게 이교도에 빼앗긴 성지 수복이라는 매력적인 화두를 던졌고,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던 기사 계급이 이에 열렬히 호응하면서 십자군 원정의 대단원의 막이 열렸다.

민간에서도 은자 피에르(김태권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에 그 어벙하게 등장하는 선동가)가 프랑스 전역을 돌며, 성스러운 전쟁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천국행 티켓을 약속하면서 십자군 원정의 열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하지만,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병참 문제없이 무턱대고 원정에 나선 민중 십자군은 같은 기독교계 국가에서도 약탈과 방화를 일삼다가 동부유럽의 헝가리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기도 한다. 이들의 소문을 들은 비잔틴 제국은 그들과 적당한 타협을 하고 이들을 소아시아 투르크령으로 실어 나른다.

셀주크 투르크의 술탄 클르츠 아슬란이 이끄는 투르크 전사들과 본격적인 회전을 치르게 된 고드프루아가 이끄는 십자군 전사들은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과시하면서, 이어지는 안티오키아 공방전 그리고 예루살렘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마침내 기독교 세계의 숙원이던 예루살렘 공략(1099년)에 성공한다. 승리 후, 십자군 기사들은 이슬람교도를 무차별 학살하고, 이슬람 사원을 철저하게 파괴하면서 후세에 두고두고 비판받게 된다.

나나미 여사의 글에 따르면, 이때까지만 해도 이슬람 출신 에미르들은 프랑크인(무슬림들이 서방 십자군을 부르던 표현)들이 팔레스타인에 예루살렘 왕국을 필두로 한 영구적인 국가 건설을 도모할 줄 몰랐다고 한다. 원정 초기 서방 제국의 군세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적전분열로 자신들에게도 역시 성도였던 예루살렘 공격에 나서지 못했던 이슬람 세계에서도 불세출의 영웅이 등장하게 된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천년의 인물 중 12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한 살라흐 앗 딘, 우리에게는 <킹덤 오브 헤븐>의 그 관대한 이슬람 군주로 알려진 살라딘이 바로 그다.

살라딘이 이끄는 무슬림 군대 역시 십자군 못지않은 종교적 열정으로 무장하고 조상 전래의 땅에 침입한 외세에 맞서 성전을 개시한다. 살라딘은 하틴 전투에서 예루살렘 왕 기 드 뤼지냥이 이끄는 십자군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결국 예루살렘 수복(1187년)에 성공한다. 이 부분은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도 자세히 다뤄져서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희대의 영웅에게는 맞수가 있기 마련이다. 무슬림 세계에 살라딘이 있었다면, 십자군 기사 중에는 사자심왕 리처드가 있었다. 3차 십자군 원정에서 비록 리처드는 무슬림의 손에 뺏긴 예루살렘을 탈환하진 못했지만, 이미 승세가 기운 팔레스타인에서 십자군 원정이 이후에도 수차례나 반복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리처드로 대변되는 서유럽 기사들의 약속을 중요시하는 기사도 정신이 반드시 지켜졌던 건 아니다. 영국 출신의 사자심왕은 포위된 무슬림 전사들에게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모두 학살한 좋지 않은 사례를 남겼다.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필요 없으리라. 리처드와는 대조적으로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수복한 후, 기독교들을 살려 주었을 뿐 아니라, 재산까지도 가지고 떠날 수 있는 승자가 베풀 수 있는 최대의 관용을 보여주었다.

십자군 전쟁의 맞수 살라딘과 리처드의 대결을 마지막으로 무슬림 세력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을 다시 탈환하겠다는 기독교 제국에 대한 교황의 호소는 공염불로 그치게 된다. 베네치아의 꼬임에 빠져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질 않나, 소년 십자군으로 동원된 소년들을 노예로 팔아 버리는 본래의 순수했던 성전은 세속적 욕망의 현현으로 전락하게 된다. 특이하게도 나나미 여사는 오스만투르크 메메드 2세의 콘스탄티노플 공방전도 “십자군 전쟁”에 포함시킨다.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라는 차원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

십자군 전쟁의 굵직굵직한 사건의 줄거리를 뽑아낸 귀스타브 도레의 일러스트에 나나미 여사의 주석은 금상첨화다. 본격적인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에 앞서 가벼운 몸 풀기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나나미 여사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그랬듯이, 십자군 원정의 정치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십자군 원정이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에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미친 영향에 상술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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