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신부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3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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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그리스가 신문지상을 요란하게 장식하고 있다. 우리가 십여 년 전 치욕을 당했던 바로 국가 채무불이행 사태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경제에 위기를 불러온 나라 그리스의 과거는 우리의 그것과 아주 많이 닮았다. 터키에 정복되어 수백 년간 식민지 생활을 경험했고, 나치 점령이 끝난 뒤 극한의 좌우 대립도 겪었다. 그리스 출신의 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독일의 점령이 끝난 후 시작된 그리스 내전기의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의 연대기를 <전쟁과 신부>라는 제목으로 소설화했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70대 야나로스 신부다. 그리스 정교회 소속으로 신실한 신앙으로 무장한 노신부는 조상 대대로 살던 고향에서 쫓겨나 타의에 의해 디아스포라를 경험한다. 한때 아토스 산에 입산해서 수도사의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역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신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속세로 하산한다. 하지만, 야나로스 신부가 진짜 하산한 이유는 너무나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는 수도사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서다. 보통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아이들은 흙을 퍼먹고 있는 마당에 어린양을 인도해야 할 성직자들은 하릴없이 풍족한 삶을 누리면서 한가롭게 그림이나 그리고 있는 현실에 야나로스 신부는 분노한다. 이것이 정녕 신의 뜻이란 말인가?

가난하고 굶주린 자를 구원하기 위해 지상에 강림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현실 세계와 갈등하는 야나로스 신부에게 좌우로 나뉘어 극한 대립을 하며, 동족상쟁을 치르는 내전은 또 다른 고통의 원천이다. 붉은 두건과 검은 두건, 정부군과 반란군 유격대로 갈려 하루가 멀다고 에피루스에 있는 카스텔로 마을을 두고 벌이는 쟁탈전으로 수많은 젊은이가 죽어나간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조국 그리스에 대입한 야나로스 신부는 어느 편에 서지 않고 공정하게 대하려 하지만, 정부군에게서는 볼셰비키로 그리고 반란군에게는 파시스트로 불린다. 도대체 어떤 것이 신의 뜻이란 말인가.

부활절 연례행사대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는 제례를 거부하고, 사랑과 평화 그리고 형제애를 강조하는 현실적인 설교를 하지만 증오에 눈이 멀고 귀가 먹은 이들에게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새로운 협조자가 레닌이라는 이성의 속삭임이 실제로는 악마의 말이 아닐까 하는 끊임없는 의심과 번뇌 속에 야나로스 신부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산에 오른다. 그리고 신화 같은 명성을 쌓아가고 있던 드라코스 대장과 담판이 기다린다. 자, 과연 카스텔로 주민들의 운명을 어떻게 될 것인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신앙과 정치적 갈등의 첨예한 대립 구도를 바탕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 넣는다. 반란군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무장도 하지 않은 7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총살한 정부군 대위, 사랑하는 애인을 그리며 죽어가는 청년 레오니다스, 무자비하게 반란군을 진압하는 정부군 대위 남편에게 환멸을 느끼고 입산한 대위의 아내,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겠다며 신성모독을 마다하지 않는 신부 등 평범한 시대에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그런 역동적인 삶을 치열하게 산 캐릭터가 줄지어 등장한다.

한 때 공산주의에 경도된 카잔차키스의 사회개혁에 대한 열망은 성모의 허리띠로 혹세무민하는 수도사의 재물을 빼앗아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장면으로 치환된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인류 구원을 위해 내버린 그리스도가 무엇 때문에 세상의 재물을 필요로 한단 말인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이 질문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야나로스 신부는 여러 사람의 전언을 통해 성경에 등장하는 협조자(보혜사, helper)가 강림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듣는다. 더 놀라운 건, 그 협조자가 레닌이라는 것이다. 이런 신성모독에 가까운 주장으로 카잔차키스는 당시 그리스에 만연해 있던 사회정치적 불의를 고발한다.

오래전에 읽은 그리스 출신 미국 저널리스트 니콜라스 게이지가 쓴 <이리니>를 통해 그리스 내전의 비극과 처음 만날 수가 있었다. <전쟁과 신부>는 <이리니>로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그리스 역사의 단편과 그리스 민중 속에 스며든 종교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끝을 맺기 전에 여담 한 가지. 리뷰를 쓰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1957년 노벨문학상 후보 경쟁에서 알베르 카뮈에게 1표 차로 떨어졌다고 한다. 훗날 카뮈는 카잔차키스의 미망인에게 고인이 자기보다 백배는 더 수상의 영예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동안 카잔차키스의 많은 책을 사기만 하고 미처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그를 읽을 시간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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