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라트비아인 매그레 시리즈 1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작년부터 야심 차게 선전해온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형사 전집의 첫 번째인 <수상한 라트비아인>을 읽었다. 사람이 구식이어서 그런지 요즘 케이블 텔레비전만 켜면 등장하는 최첨단 스타일의 수사 방식보다는 우직하게 옛 스타일을 고수하는 피터 러브시의 피터 다이아몬드 같은 구닥다리 형사가 좋다. 그러니 휴대전화나 팩스 혹은 첨단을 달리는 지문감식기 같은 장비가 없던 1930년대 창조된 캐릭터인 쥘 매그레 반장도 마음에 들 수밖에.

이미 유럽에서는 1930년대에서부터 국제적 수사공조가 이루어졌는지, 라트비아 출신의 수상한 인물인 피에트르가 유럽을 가로질러 프랑스로 향하고 있다는 첩보가 우리의 주인공 매그레 반장의 손에 들어온다.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매그레 반장은 삽으로 석탄을 퍼 넣는 주철 난로의 온기를 쬐어 가며, 근처 식당에서 배달된 샌드위치와 맥주를 즐기며 상대와의 ‘게임’을 즐긴다. 이제 막 근대적인 수사 시스템이 체계를 갖추어가던 시절의 이야기가 <수상한 라트비아인>을 통해 소개된다.

이 수상한 라트비아인을 마중 나간 기차역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매그레 반장을 특유의 ‘촉’을 발동시켜 유력한 용의자로 짐작되는 피에르트의 뒤를 쫓는다. 세계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파리의 뒷골목과 노르망디의 페캉을 누비면서 범인이 남긴 단서를 수집하는 매그레. 이런 큰 덩치에 잠복이 어울리지 않지만, 범인도 인간인 이상 반드시 틈을 보일 것이라는 “균열 이론”을 자신한다. 이 균열 이론이야말로 매그레 반장이 사건 해결을 자신하는 원천이다.

미행에 나섰다가 암살당할 뻔하고, 신뢰하는 단짝 파트너를 잃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매그레 반장은 굽히지 않는다. 형사는 그에게 천직이었을까? 휴대전화는커녕 전화도 교환원을 통해서 해야 하고, 제대로 된 자동차도 없어서 택시를 타고 미행하는 묘사는 올드스쿨 스타일 수사의 전형이었다. 조르주 심농은 형사가 ‘게임의 상대’(범인)와 집요한 승부를 통해 형성하게 되는 기묘한 심리적 교감도 빠트리지 않는다. 내가 범인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라는 역지사지의 추리는 매그레 반장을 신화의 반열에 올려놓은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조르주 심농은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1930년대 파리의 시대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데도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 세계 곳곳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파리를 찾은 삶의 군상이 그의 손끝에서 부활한다. 빽빽하게 세입자로 들어찬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외국인의 모습이나 오페라 극장 그리고 심야의 살롱을 찾는 부유한 미국 사업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당시의 시대상이 드러난다. 하지만 명확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등장하는 왜 외국인이 프랑스 땅에 들어와 사느냐는 작가의 극우적 시선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프랑스를 위대하게 만든 혁명의 삼박자였던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 정신을 심농은 잊었던 걸까?

이 책을 주문하면서 함께 산 버즈북에서 그의 경력 중에 오점으로 남아 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부역 혐의를 중점적으로 찾아봤다. 전후 나치 부역 혐의로 거주지 지정을 받았고, 1949년 모리스 가르송의 변호로 혐의를 벗었다는 점 정도가 전부였다. 심농이 만약 레지스탕스 저널의 편집장이었던 알베르 카뮈나 레지스탕스 영웅이었던 장 물랭처럼 조국을 위해 적극적인 저항활동을 했다면 과연 이런 혐의를 받았을까? 그가 남긴 한마디 코너에서 빠진 “N"은 어쩌면 나치에 대한 그의 변명이 아니었을까? 부족한 정보로는 심농의 전중 활동에 대한 평가는 잠시 유보해야 할 것 같다.

솔직히 자그마치 75권에 달한다는 매그레 반장 시리즈를 다 읽을 자신은 없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간이 늘 부족하고 읽은 책들은 차고 넘치니 말이다. 책 디자인은 참 마음에 든다. 기존의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고나 할까. 전집 중에서 나중에 선별해서 몇 권 읽어야지 싶다. 그나저나 로베르토 볼라뇨의 다른 책들은 언제나 볼 수 있는 걸까. 심농의 시리즈보다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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