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8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소년 사이에서 속칭 왕따라는 소외 문제는 더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고질적 사회적 병리현상이 되어 버렸다. 교육의 전당에서 벌어지는 무한경쟁에서 촉발된 순위 매김에 아이들이 질식할 지경이라는 비명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다. 함께 사는 법이 아니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에서 나 홀로 살아남는 검투사의 투쟁을 배우는 극한에 내몰린 아이들의 일탈이 이젠 새로운 뉴스거리도 아니게 되어 버렸다.  일본 출신의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는 가수활동도 병행하는 문필가라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 이런 왕따 문제에 정면 도전장을 던진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중학교 2학년의 평범한 14살 소년이다. 아니 이미 소설의 주인공이 된 이상, ‘평범’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평범하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시인 눈 때문에 학교에서 나름대로 잘 나간다는 니노미야 패거리에게 왕따를 당한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나를 괴롭히는 그들에게 저항할 의지를 상실해 버렸다. 나의 유일한 위안은 같은 반에서 다른 여자아이들에게 비슷한 대우를 받는 고지마의 편지다.

여름이 시작되던 날, 달 뜬 마음으로 고래공원에서 만날 약속을 한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이 어렵지만,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여니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별세계가 펼쳐진다. 문자와 이메일이라는 편리한 방법 대신 편지라는 구닥다리 방법으로 오가는 나와 고지마 사이의 교류에는 다른 이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이너써클’의 미학이 숨겨져 있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고지마에게는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아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꼬질꼬질하게 옷을 입고 다니고,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고지마와 남몰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비로소 삶의 낙을 찾는다. 그렇지만 나에게 주어진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 최고 악당 니노미야가 분필을 먹이고, 배구공을 씌우고 인간 축구를 하다가 온몸에 멍이 들고 엉망진창으로 다쳐도 제대로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한다. 피해자의 체념이라고나 할까. 비슷한 처지의 고지마는 니노미야 패거리가 자신과 다른 나의 외모가 두렵기 때문에 그렇게 왕따를 하는 거라는 나름 의미 있는 분석을 제시한다.

니노미야 패거리에게 당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통원하던 중에 그들 중 한 명인 모모세와 떨리는 담판은 피해자의 시선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시선에서 왕따라는 소외 문제를 바라보게 해준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자식들이 타인과 어울려서 조화로운 삶을 살길 바랄 것이다. 니노미야와 모모세 같이 폭력적인 왕따를 자신의 자식들이 하리라고는 절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사실이라고 밝혀져도 끝까지 부인할 것이다.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다고! 그럼 도대체 괴롭힘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의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학교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왕따와 집단 괴롭힘 문제는 아이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직은 부모의 슬하에서 자랄 나이의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책임은 그들의 부모를 비롯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가정은 이제 집어치우자. 그리고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자는 게 가와카미 미에코의 주장이 아닐까 싶다.

나와 고지마가 꿈꾸던 “헤븐”에 안착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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