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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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의 책을 읽는 건 쉽지 않다. 지난 8월부터 <마음짐승>을 읽었지만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있다가 기나긴 연휴의 끝자락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에도 꾸준하게 등장하는 차우셰스쿠 독재 아래 시대의 불안은 <마음짐승>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경찰국가 루마니아의 일상은 도청과 감시가 지배한다. 마치 벽과 하늘에도 귀와 눈이 달린 듯이 그렇게 보통 사람의 모든 것이 낱낱이 감시당한다. 독재자와 그의 감시원은 친구마저도 못 믿게 하는 일상의 불안을 바탕으로, 두려움을 분배한다. 그래서 모든 루마니아 사람들, 특히 슈바벤의 소수민족인 독일인은 목숨을 걸고 도나우 강을 건너 그들의 모국어가 사용되는 곳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마음짐승>을 읽으면서, 과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나”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헤르타 뮐러의 자전적 소설은 대학교에서 체육 강사의 추행으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롤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궁핍한 가운데, 검댕으로 만든 마스카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기숙사 안의 네모에 거주했던 어느 여대생의 회상이 이어진다.

시골에 사는 가족을 두고 도시생활을 하는 나의 아버지는 전쟁 중의 나치 무장친위대원이었다. 아버지는 여느 슈바벤 남자처럼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와, 나의 엄마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즈음해서 느슨한 관계를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암울했던 과거와의 단절이 읽혔다.

한편, 노래하는 할머니는 모두가 가슴에 ‘마음짐승’을 데리고 있다고 말한다. 종일 피곤하게 놀았으니 그 마음짐승을 쉬게 해주어야 한다고도 하고, 자신의 심리상태를 그 생쥐나 토끼 같은 마음짐승에 빗대 표현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데리고 있는 마음짐승은 어떤 녀석인가 자문해 본다. 이게 헤르타 뮐러의 소설을 읽고 나서 맞는 적용일까? 이래서 그녀의 글은 읽을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닐까 싶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에서 번역사로 일하게 된 나는 끊임없이 경찰의 감시에 시달린다. 벌거벗은 상태에서 심문을 당하고, 소지품 목록을 작성하는 모욕은 감시가 일상화가 루마니아의 무시무시한 삶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친구라고 믿었던 테레자는 경찰의 끄나풀이었고 자신을 감시하라는 비밀지령을 받고 망명지 독일까지 찾아온다.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였던 파스빈더 감독의 작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불쑥 떠올랐다. 이런 시대의 불안 속에 온전한 영혼을 유지하기란 난망하지 않았을까.

<마음짐승>을 읽으면서, 모국어와 살고 있는 나라의 국가어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작가 헤르타 뮐러의 정체성이 궁금해졌다. 그녀의 책에 나오는 많은 부분이 루마니아 독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경향을 띠고 있지만, 저술활동은 그녀가 ‘모국어’라 부르는 독일어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핍박과 위협으로 결국 독일로 망명한 그녀는 결국 독일인으로 보아야 할까? 서구의 언론에서는 숫제 그녀를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가 아닌 German writer로 표현한다. 기회가 된다면 작가에게 직접 묻고 싶은 질문이다.

국내에 출간된 헤르타 뮐러의 다섯 권의 책을 모두 읽어서 마치 숙제를 다 끝낸 듯한 후련함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과연 헤르타 뮐러 작가의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된다. 헤르타 뮐러 텍스트 분석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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