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캐리커처 - 유쾌한 20세기 디자인 여행 디자인 그림책 1
김재훈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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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한여름의 휴일 오전에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디자인 책 한 권을 읽었다. 사실 어젯밤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일주일 동안의 업무 스트레스로 그만 몇 장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다.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아침에 다시 집어 들었는데 단박에 다 읽어 버렸다. 그만큼 가독성과 재미가 있다는 방증이리라.

오래전에 모 신문에 연재하던 만화를 보고 팬이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작가가 바로 <디자인 캐리커처>의 지은이 김재훈 씨였다. 당시 그의 홈피를 바지런히 드나들며 그가 그린 일러스트들을 모으곤 했던 좋은 기억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당시에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이었던 사도 바울을 탁월한 후발 주자 출신 마케터라고 평했던 일러스트를 보고 고개가 갸웃거렸었는데 그가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 한때 신학교에 몸담았었다는 말에 바로 이해가 갔다. 자, 초장의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디자인 캐리커처>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우선 표지에 나와 있는 “디자인 그림책”이라는 말대로 나 같이 디자인에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그만의 스타일로 빚어내는 디자인과 그에 얽힌 이야기 삼매에 빠져드는 마력을 가진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살바도르 달리나 코코 샤넬 혹은 다시 생각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뉴욕의 구겐하임 뮤지엄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같은 거장뿐만 아니라 정말 생소한 디자이너들의 향연이 <디자인 캐리커처>를 통해 펼쳐진다.

아이들이 즐겨 먹는 막대사탕 추파 춥스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말이다. 마치 사탕을 포크에 찍어 먹듯이, 막대에 쿡 찍어 놓은 단순한 발상이 대박 신화의 비밀이었다고. 더 놀라운 건, 추파 춥스 포장의 로고 디자이너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실은 더 놀랄 노자였다. 하나의 상품에도 그런 디자인과의 하르모니아(조화)가 숨어 있다는 점에서 디자인의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볼 수 있는 지하철 노선도의 창시자인 해리 벡의 아이디어 역시 세상을 바꾼 디자인 중의 하나다. 사실 실제와는 엄연한 차이가 보이지만, 대도시의 지하를 미로처럼 누비는 지하철 노선에 대한 정보를 ‘왜곡’해서 단순함을 극치화한 해리 벡의 디자인 작업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다시 살펴봐도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뮌헨 올림픽에서 픽토그램이라는 기호로 인류 공통적인 소통 방식으로 논리적 규칙성을 강조한 오틀 아이허 역시 대단한 디자이너였다. 책 후기에 등장하는 잉게 숄이 그의 부인이었다는 말에 짠한 감동이 몰려오기도 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 몇 번 본 기억이 나지만, 김재훈 작가가 들려주는 것만큼 현대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어 버린 자동차 디자인 열전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도 세계의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존재한다는 나만 모르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몇몇 정치인들이 <디자인  서울>입네 하는 행정구호식 디자인을 외쳐 대지만, 전 세계의 명물이 된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 같은 한 도시의 랜드마크는 만들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디자인이 유행을 선도하는 걸까, 아니면 유행을 디자인이 좇는 걸까라는 단순한 질문이 들었다. 디자인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애플의 아이팟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두 배제해 버리고,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라는 신개념을 선도한 애플의 초대박 밀리언셀러다. 애플에서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 아이폰으로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도약을 마련해 준 그야말로 효자 같은 녀석이 아니던가. 아이팟 이후에 출시된 제품들도 선배의 길을 따라 너무 복잡해서 소비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그런 복잡한 기능보다는 쉽게 작동할 수 있고, 쿨해 보이는 디자인을 좇게 되지 않았던가.

이 세상 아래 새로운 게 없다는 말처럼 포스터 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엉클 샘의 모병 포스터 역시 그보다 먼저 세상의 빛을 본 영국의 것을 그대로 본뜬 것이었다. 굳이 가짜가 진짜를 대신한다는 보들리야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대량 복제의 시대에 김재훈 작가가 말하는 오리지널 아우라의 광휘는 점점 더 찾기가 어려워진다는 느낌이다.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의 중요성이 주목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디자인이 그 첨병의 자리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밀턴 글레이저의 <I♥NY>처럼 언제 봐도 미소가 떠오르는 그런 멋진 디자인을 기대해 본다. 물론 그의 저작권 프리 정책처럼 나눔의 미덕까지 함께 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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