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재앙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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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 아메리칸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건, 연전에 읽은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덕분이었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 이제는 절판된 디 브라운의 ‘미국 인디언 멸망사’라는 부제가 붙은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를 통해 다시 한 번 미국 인디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번에 읽은 루이스 어드리크의 <비둘기 재앙>으로 다시 한 번 고달픈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삶을 한 발짝을 내딛는다.

2009년 미국 유수의 문학상인 퓰리처상 파이널리스트에서 수상작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와 경합을 벌였던 <비둘기 재앙>은 네이티브 아메리칸과 독일계 미국인 혈통을 지닌 루이스 어드리크의 최신작이다.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비둘기 재앙>을 통해 과거 조상의 영광과 부족의 전통을 오늘날에도 영위해 가는 그네들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었다.

책에 나오는 지명이 실재하는 지명인 줄로 알고, 이번에도 역시 구글맵의 도움을 빌려 보려고 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가공의 지명이 지도에 나올 턱이 없지 않은가! 책의 뒷부분에 실린 글을 보고서야 나의 노력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간접적으로나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노스다코타와 미네소타 탐험은 유쾌했다.

이야기의 첫 번째 주자로는 에블리나 하프가 등장한다. <비둘기 재앙>에는 여럿의 화자가 등장을 하는데 한편으로는 주 이야기꾼 중의 한 명인 에블리나의 성장기도 다루었다가, 그녀의 무셤(할아버지) 세라프 밀크가 들려주는 과거의 끔찍했던 일가족 몰살 사건에 대한 에피소드, 그에 대한 사적인 보복 그리고 인디언 보호구역에서의 삶을 교차하는 이야기가 잔잔하게 채색된다.

무셤과 할머니인 주네스의 운명적인 만남과 필연적인 도주, 미치프족의 영웅 루이 리엘 등에 대한 이야기에, 무셤과 그의 동생인 로맨티스트 샤멩과를 자주 찾아오는 캐시디 신부와의 위스키 한담으로 줄줄이 이어진다. 에블리나는 사촌인 코윈 피스의 이름을 자신의 몸에 백만 번 쓸 정도로 애착해 하면서도, 새로 학교로 부임해온 메리 애니타 버큰도프 수녀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그녀에게 ‘고질라 수녀’라는 별명을 붙여 주고서 고민하는 에블리나의 모습에서 여느 십 대 같은 이중성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에 그들이 사는 타운인 플루토에서 벌어진 끔찍한 한 사건이다. 한 가족이 끔찍하게 살해되고, 그 범인으로 일단의 인디언들이 지목되면서 살해당한 가족의 이웃인 버큰도프와 와일드스트랜드 집안의 무장한 남자들이 세 명의 무고한 인디언들을 잡아서 교수형에 처했다는 비정하기 짝이 없는 과거의 실체가 드러난다. 보안관으로 대표되는 공권력도 제지하지 못하는 사적인 폭력인 린치에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억울한 외침이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 중의 한 명인 홀리 트랙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모티브로 작용한다.

또 다른 중요한 화자인 안톤 바질 쿠츠 판사의 좀 더 객관성이 담보된 시각이 반가웠다. 사실 에블리나나 뒤에 등장하는 만 월데(만 피스)의 이야기는 신화화된 상징성 탓에 현실계에서 조금은 벗어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타운의 어느 연상녀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안톤 쿠츠가 어느 날 자각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길을 뒤따르는 법률가의 길을 걷게 되고 에블리나의 이모인 제럴딘과 운명적 만남을 하게 된다는 설정은 확실히 네이티브 아메리칸에게 부족 중심의 사회 시스템이 갖는 중요성을 각인시킨다. 안톤 쿠츠가 들려주는 부모 이전 세대에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선 원정대 이야기에서는 잔혹한 린치를 휘두른 폭도로 변한 버큰도프네가 공유한 운명 공동체의 원형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 뒤에 나온 빌리 피스와 존 와일드스트랜드가 벌이는 어이없는 부인 인질극에서는 정확하게 영화 <파고>의 줄거리가 떠올랐다. 실제로 1987년에 미국의 미네소타에서 벌어진 일을 영화화했다고 하는데, 루이스 어드리크도 아마 같은 소재에서 영감을 받았을까? 사건의 주모자 중의 하나인 빌리 피스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는 얼토당토않은 신앙 공동체를 건설한다. 그의 법적인 부인인 만 월데의 입을 빌려 듣는 거의 불사신 같은 빌리(그는 벼락을 맞고도 살아난다!)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는, 과학적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종교의 지배를 받는 미국 중산층의 단면을 엿보기도 한다.

<비둘기 재앙>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개별적이면서도 서로 등장인물이나 네이티브 아메리칸 사회에 대한 작가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한다. 이 사실 역시, 책의 뒷부분에 나온 설명을 듣고서 서로 다른 잡지에 발표된 글들을 한데 묶어서 출간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가 있었다. 근사한 외모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로맨티스트 샤멩과의 장례식에서 캐시디 신부가 지껄이는 어이없는 추모사 부분에서는 어드리크 작가의 블랙유머가 돋보였다. 드디어 대학생활을 하게 된 에블리나가 영원의 도시 파리와 아나이스 린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정신병원에서 보조사로 일하게 되는 과정은 작가 루이스 어드리크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작가가 소설의 곳곳에 배치해둔 복선과 암시의 부비트랩은 맨 마지막 화자로 배턴을 이어받은 코델리아 로크렌이 맡아서 확실하게 폭파시켜 준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져, 독자가 의심하기 시작한 부분을 명징하게 물 위로 떠올려준다.

어드리크의 문장은 아주 매혹적이다. 그녀의 글에서는 마치 노을이 지는 황혼녘이 연상된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과거의 이야기를 읊조리는 관조적인 서술은 애잔함 그 자체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하나는 에블리나가 일하는 정신병원에 찾아온 코윈의 바이올린 연주 묘사다. “음악의 낫이 너른 공간을 휙 베”었다는(394쪽) 구절은 플루토를 감싼 어두운 과거와의 단절이 느껴졌다. 다른 하나는, 우표수집에 목숨을 건 에블리나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우표가 “값비싼 작은 먼지 무덤”이(427쪽) 되는 것을 지켜보는 장면이다. 도대체 이 세상에서 물질이 무엇이건대 채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그렇게 집착하는 걸까?

소설의 어디선가 로맨티스트 샤멩과의 바이올린 연주에 파편화된 상식과 인정받지 못한 갈망이 담겨 있다고 했던가.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괴리된 채, 보호구역에서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뻑뻑한 삶이 읽혔다. 우리가 꿈꾸는 자유는 마음, 머리 그리고 손에 있다는 샤멩과의 고백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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