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인형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링컨 라임 시리즈의 저자 제프리 디버의 이름을 많이 들어봤다. 이미 영화로 만났던 링컨 라임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본 컬렉터>에서 시작된 범죄 스릴러는 링컨 라임이라는 탁월한 천재 법의학자라는 캐릭터를 독자에게 선사해 주었다. 그리고 시리즈의 7번째로 소개된 <콜드 문>에서 등장한 캐트린 댄스라는 출중한 프로파일러를 따로 독립된 주인공으로 삼은 첫 번째 작품이 바로 <잠자는 인형>(2007)이다. 놀랍기만 하다, 한 명의 빼어난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거기서 분화된 제 2의 캐릭터를 창조해내는 작가의 능력이!

장장 700쪽에 달하는 이 ‘슈퍼 스릴러’ <잠자는 인형>은 희대의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의 아들로 불리는 다니엘 펠이 기발한 방법을 사용해서 탈옥하면서 시작된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이자 동작학의 대가로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해내는 캐트린 댄스는 그 전에 펠이 탈옥하기 전에 그를 만난다. 자신에게 경도된 일단의 ‘패밀리’를 이끌던 펠은 8년 전 일가족 몰살사건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잠자는 인형>은 도망가는 범죄자와 그를 좇는 법집행관이라는 전형적인 스릴러 구조에, 존 스타인벡의 문학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 해안의 몬터레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스타인벡의 작품인 <통조림공장 골목>을 읽었는데, 캐너리 로 같은 익숙한 지명이 등장할 때마다 아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스릴러는 자신의 뒤를 좇는 경찰의 허를 찌르는 신출귀몰하는 빼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다니엘 펠과 정확하게 딱 한발씩 늦는 캐트린 댄스의 추리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하긴, 초반에 그렇게 맥없이 범인이 잡히리라고는 얼추 한눈에 봐도 엄청 두꺼운 책의 구조상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다니엘 펠의 탈옥은 피라미드의 정점으로, 캐트린과 캘리포니아 연방 수사국(CBI)이 그의 뒤를 좇으면서 드러나는 과거의 그의 행적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는 소통 부재로 인한 가족의 해체에 고통 받는 젊은이들을 포섭해서 철저하게 자신이 통제하는 ‘패밀리’의 일원으로 삼고자 한다. 그는 마치 중세 하멜린의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감언이설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어느 산 속에 자신만의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망상에 젖어있다. 그래서 자신의 목표에 장애가 되는 건 가차 없이 제거해 나간다. 수십 건의 각종 범죄를 저지르면서 용의주도하게 법망을 빠져 나가던 그는 실리콘 밸리의 천재 프로그래머 윌리엄 크로이튼 일가를 습격했다가 그만 영어의 몸이 되고 만다.

제프리 디버는 유능한 법집행관 캐트린 댄스와 신출귀몰한 범죄자 다니엘 펠이라는 구조에, 그가 이끌던 컬트 집단의 트리오, 범죄의 원형을 파헤치는 르포 작가 모튼 네이글 그리고 크로이튼 가 참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잠자는 인형’인 테레사 크로이튼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플롯에 다양성을 제공한다. 게다가 다니엘 펠의 도주를 돕는 제니 마스턴에 이르기까지 악당을 동정하는 워너비들까지 캐릭터의 일거수일투족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소설의 초반부가 다니엘 펠의 탈옥과 도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중반부는 퍼즐조각을 맞추듯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캐트린 댄스의 프로파일링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소설 중간에 제프리 디버는 댄스와 자신의 다른 시리즈 링컨 라임과의 짧은 조우도 빼놓지 않고 친절하게 배치한다. <잠자는 인형>은 정말 마지막 장까지 단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그만큼 반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비트랩처럼 곳곳에 치밀하게 잠복해 있다.

사실 <잠자는 인형>을 통해 ‘동작학’이라는 학문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작가는 소설에서 묘사되는 심문의 과정을 하나의 예술의 경지에까지 끌어 올린다. 프로파일러는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보이는 반응으로 범죄자의 사기와 기만을 폭로한다. 제프리 디버는 특히 피심문자의 스트레스 반응에 주목을 하는데, 상대방이 말할 때 보이는 동작의 패턴을 통해 심리의 저변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아울러, 프로파일링을 자신의 공적인 업무뿐만 아니라, 자기 아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데이트 상대에까지 적용하는 캐트린 댄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렇게 제프리 디버는 소설적 재미와 휴머니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개의 돌로 사냥하고 있었다.

범죄자 다니엘 펠에 동조해서 그의 범죄를 도운 ‘패밀리-컬트집단’에 대한 문제 제기도 빼놓지 않는다. 왜 그렇게 젊고 일견 똑똑해 보이는 이들이 컬트 리더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통제 받으면서 범죄마저 저지르게 되는가. 희대의 범죄자 다니엘 펠은 취약한 가족의 연결고리를 공격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족이라고 받아들여진 컬트집단으로부터 버림 받지 않기 위해 범죄마저도 마다하지 않는 개조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한편, 다니엘 펠의 희생자들은 하나 같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의 협박을 순순히 따르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잠자는 인형>의 속편 격인 <노변의 십자가>가 작년에 발표되었고, 3탄인 <심문>이 2013년에 출간예정이라고 한다. 캐트린 댄스라는 이렇게 멋진 캐릭터를 가만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할리우드에서도 곧 영화화에 착수할 전망이라고 하는데, 과연 이 슈퍼 스릴러의 아우라가 어떻게 실버스크린에 옮겨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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