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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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작가인 러시아 출신의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왼손잡이>를 읽었다. 장편 소설로 알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모두 두 개의 단편과 한 개의 중편으로 구성된 책이었다. 이번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차분으로 나온 책 중에서 두 번째로 읽은 책이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240KM 떨어진 오룔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니콜라이 레스코프는 19세기 러시아의 정서를 담은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한 것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출신 작가 중에서도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로 널리 인정받는다고 한다. 15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키예프에 사는 삼촌네 집으로 가서 살면서 철학과 경제학에 관한 책들을 널리 읽었다. 나중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1861년부터 자신의 문학 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왼손잡이>의 타이틀인 동명의 단편은 영어 제목으로는 <The Tale of Cross-eyed Lefty from Tula and the Steel Flea>으로 1881년에 발표된 작품인데, 긴 제목에 이미 내용이 담겨 있다. 민담 스타일의 액자식 구성을 따르는 <왼손잡이>는 나폴레옹 전쟁 후,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빈 회의에 참가했던 알렉산드르 황제가 영국 방문길에 진기한 선물인 강철로 만든 벼룩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태엽을 감으면 놀라운 점프를 선보이는 이 강철 벼룩에 매료된 황제는 영국의 뛰어난 기술을 칭찬하지만, 그의 충실한 신하 카자크 플라토프는 불만스럽기만 하다. 러시아의 툴라에도 그보다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장인이 있다는 거다.

훗날 알렉산드르 황제의 후계자인 니콜라이 황제가 등극했을 때, 이 강철 벼룩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황제는 플라토프에게 명령을 해서 영국인보다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이들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플라토프는 툴라 출신의 세 명의 장인에게 그들의 실력을 보여주라고 압박한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강철 벼룩에 매달린 끝에 장인들은 영국인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벼룩의 발에 편자를 박고, 그 편자에 장인의 이름까지 새겨 넣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여파로 벼룩의 태엽장치는 작동하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영국에 러시아의 이 놀라운 기술을 자랑하고 싶어진 황제는 장인 중의 한 명인 사팔뜨기 왼손잡이를 영국에 파견하기에 이른다. 그의 기술에 놀란 영국인들은 왼손잡이가 영국에 머무르길 간청하지만, 조국을 사랑하는 왼손잡이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조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한다. 레스코프는 <왼손잡이>를 통해, 서유럽 국가의 발전에 비해 낙후된 조국의 상황이 그렇지 않노라고 항변한다. 우리도 서구 못지않은 기술을 가진 장인이 있다는 자부심의 발로일까? 한편으로는 경직된 관료제 때문에, 러시아가 훗날 크림 전쟁에서 패하게 됐다는 추론에까지 도달한다.

두 번째 이야기인 <분장예술가>를 통해서는 러시아 발전의 족쇄 중의 하나로 손꼽히던 농노제에 대한 작가의 비판을 보여준다. 농노들을 악랄하게 학대하던 카멘스키 백작이 농노 출신의 여배우 류보피를 첩으로 들이겠다는 선언에 그의 뛰어난 분장예술가 아르카지는 기겁을 한다. 그 이유는 바로 류보피를 아르카지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둘은 사랑의 도피를 택하지만, 백작의 추격대에 잡혀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아르카지와 류보피가 사제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사제는 돈을 받고서도 그들을 추격대에게 순순히 내준다. 이 사건을 통해 니콜라이 레스코프가 종교에 대해 가진 반감을 살짝 유추해 볼 수가 있었다.

카멘스키 백작의 호의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아르카지는 황제의 군대에 들어가 귀족신분의 장교가 되어 금의환향해서 비참한 삶을 사는 류보피와 재회할 마지막 순간에 그만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다. 그렇게 살아남은 류보피는 눈물병(보드카)을 마시며 회한을 달랜다. 아르카지와 류보피의 해피엔딩을 바란 독자의 기대는 여지없이 공중 분해된다.

<왼손잡이>와 <분장예술가>가 정치적인 측면에서 다뤄졌다면, <봉인된 천사>는 러시아 사람들의 저변에 깔린 종교와 신앙의 면을 부각시킨다. 니콜라이 레스코프 최고의 작품으로 간주하는 이 중편 소설은 성실한 구교도로 세상의 그 무엇보다 이콘(성상화)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단의 석공들이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관리에게 빼앗긴 자신의 수호천사가 그려진 이콘을 되찾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그리고 있다.

합리주의 철학과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근대로 도약하고 있던 서유럽과 대조적으로 여전히 종교와 신앙 그리고 차르의 전제정치에 신음하고 있던 러시아 민중의 삶을 레스코프는 유려하게 그려냈다. 특히, 빼앗긴 수호천사 이콘을 되찾기 위해 최고의 이콘 화가 세바스찬을 찾는 과정은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난관을 겪고 드디어 이콘화의 초절정 고수를 찾아내 진짜를 가짜로 바꿔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스릴은 <봉인된 천사>가 과연 19세기 작품인가 싶을 정도였다.

<왼손잡이>를 통해 톨스토이나 도끼 선생과 같이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작가가 아닌 니콜라이 레스코프라는 또 다른 러시아 작가를 알게 돼서 일단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독서의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레스코프의 작품과의 만남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자기 민족을 잘 이해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혼을 존중한 작가의 작품을 초역으로 만나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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