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피크닉 민음 경장편 2
이홍 지음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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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민음사에서 경장편 시리즈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두 번째 책인 <성탄 피크닉>을 읽었다. 이홍 작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프로필로 실린 사진을 보면서 빼어난 외모만큼이나 글도 그런지 궁금했다.

소설의 얼개는 은영, 은비 그리고 은재 삼 남매를 통해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아울러 작가는 공간적 배경으로 대한민국 욕망의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강남을 내세운다. 그리고 주된 시간적 배경은 2009년 11월의 어느 날부터 해서 지난해의 성탄절까지. 강남과 성탄절이라 왠지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가.

최근 우리나라 소설 주인공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게 되는 취업난으로부터 은영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일류대 졸업반인 그녀는 좋은 학벌에도, 생존을 위한 직장을 구하는 데 있어 악전고투 중이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근검절약을 신조로 삼는 언니 은영과는 사뭇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은비는 사실상 <성탄 피크닉>을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큰 사건을 잉태한 실제적인 주인공이다. 마지막 그녀들의 남동생인 은재는 학교 빼먹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외톨이 청소년의 초상으로 다가온다. 은재는 어이없게도 이웃집 607호에 사는 아기엄마 인주와 그렇고 그런 사이다.

이 세 명의 주인공들이 하나씩 큼지막한 짐을 들고 어디론가 헤쳐 모여를 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이홍 작가는 플래시백이라는 아주 유용한 기법으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은영 가족이 어떻게 욕망과 소비 1번지 압구정동에 둥지를 틀게 되었는가를 추적한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은영 가족이 로또에 당첨돼서 강남으로의 진입에 성공했고 엄마는 홍콩으로 그리고 아버지는 이혼해서 딴살림을 나게 되었다는 가족사를 관통한다.

자신들이 어렵사리 구한 서식처에 영주권을 얻기 위해 좋은 학벌로 무장한 은영은 번듯한 직장을 구걸하러 다닌다. 한편, 그녀와는 달리 은비는 진학도 그렇다고 생활전선에 뛰어들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부유한 지희와 어울려 다니면서 유흥과 쾌락을 즐긴다. 그럼 그 유흥비는 어떻게 조달하냐구? 클럽에서 만난 12명이나 되는 킹카오빠들을 삥 뜯는다! 참고로 그녀에게 성윤리 이런 건 묻지 말지어다. 막내 은재는 세상만사에 심드렁하다. 가족의 리더 은영은 그의 그럼 무심함이 은비의 무책임한 행동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삐걱대는 가족관계에 큰 우환이 닥치게 된다. 말썽꾸러기 은비의 킹카오빠 중의 한 명이 다짜고짜 그들의 보금자리로 쳐들어오게 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과부하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과연 이들은 이 잔혹한 성탄절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성남에 귀퉁이에 살던 은영 가족의 강남 입성 스토리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하긴 우리가 살고 있는 헌 세태가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욕망의 뻥튀기라고 할 수 있는 로또를 통해 당당하게 꿈에 그리던 공간으로 이동하는 은영 가족. 하지만, 강남이라는 낯선 공간이 그들의 삶을 빨아들이는 개미지옥화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냔 말이다.

강남이라는 욕망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에 큰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은영이나 은비 혹은 은재 같은 캐릭터들의 묘사는 소설적 클리셰(cliche)에 가깝다. 최근 출간되는 소설에 나오는 고만고만한 인물들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드코어 물을 발표해내는 편혜영 작가의 그것에 비하면, 엽기적인 살인이라는 소재에도 충격적 효과가 떨어진다고나 할까. 연전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꽃보다 남자>의 F4를 연상시키는 집단인 “카프”의 존재는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포장되어 있다. 일신의 영달과 강남 영주권을 위해서라면 이런 급박한 위기 가운데 가족마저도 뒷순위로 밀리게 되는 냉혹한 현실을 날로 드러낸다.

북글을 통해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이 많았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 그런 것들이 모두 휘발해 버렸는지 마음이 헛헛하다. 아마 기대한 만큼 글에 대한 욕망이 채워지지 않아서였을까? 아쉽다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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