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 싸부님 2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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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2편에서도 이외수 작가의 하얀 올챙이 우화는 계속된다. 조물주의 처지에서 본다면 파란만장해 보이는 우리네 삶 역시 부처님 손바닥 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재물을 쌓고, 잘 먹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하얀 올챙이와 까만 올챙이의 바다를 향한 여행은 어느 순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허무주의 극한을 보여 주기도 한다.

강원도 웅덩이를 떠나 저수지에서 수많은 인연을 만난 올챙이 사제(師弟)는 다시 바다로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인간이 빚어내는 오염 그리고 부질없어 보이는 인간만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사제는 인공호수에서 접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라는 불변의 진리와 먹고 먹히는 동물계의 먹이사슬 이야기가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스승인 하얀 올챙이의 시점에서 벗어나 제자인 까만 올챙이의 일기 형식을 빌어 구도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도 한다. 인간연구 세미나에서는 ‘고독’이라는 주제로 물고기들이 토론을 벌인다. 홀로 있기에 고독하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은 전혀 고독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고독은 여전히 그 휘황찬란한 아우라( aura)를 펼쳐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스승 하얀 올챙이는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큰 고독 속으로 뛰어들라고 했던가.

인간의 탐욕을 형상화한 물고기라고 지칭하는 금붕어 이야기 또한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금붕어를 창조해 냈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는 미모지상주의에 대한 이외수 작가의 일침으로 다가온다. 1급수에나 산다는 꺽지는 평화롭게 살던 어느 날, 인간으로부터 돌땅과 전기 찜질이라는 흉악한 행동을 당하는 바람에 가족을 모조리 잃고 자신의 기억마저 상실한 채, ‘ㄱ’을 발음하지 못해 “내 아조을 돌려다오“를 외치고 다닌다고 한다. 조금 더 거창하게 접근을 하자면, 우리 이웃 동물들과 평화롭게 사는 환경친화적 삶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물고기 세계에도 지식으로 무장한 녀석들이 난척하는 모습은 우리네 인간계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가 보다. 불과 얼마 전, 아륀지 발언으로 세상이 시끌시끌했었는데 물속에 사는 이 녀석들도 우리말보다는 영어 혹은 한자로 떠들어 대는 모양새가 어째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어황(魚皇)을 자처하며, 뭍 물고기들에게 혹세무민한 사이비 종교틱한 썰을 풀면서, 자신을 따르는 물고기들을 천당으로 보내는 모습에 절로 혀를 차게 됐다.

한 때 천주교에서 설파했던 “내 탓이오”라는 말처럼, 모든 문제의 근원을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서 찾아보는 노력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가 찾는 진리가 정말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진리의 축복 속에 살면서도 참 진리의 도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얀 올챙이 스승은 우선 내 안을 비우라는 말을 날린다. 나를 비우면, 진리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가 있을까?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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