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모리미 도미히코라는 이름은 작년에 나온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라는 재밌어 보이는 제목의 책으로 알게 됐다. 아직 읽지는 못하고 지인에게 선물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작가가 당근 여자인 줄 알았다. 오늘 리뷰를 쓰기 위해 인터넷으로 작가를 검색해 보니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책에서 내내 낭창낭창한 의성어와 의태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를 하기에 여성작가로 착각했다.

작가의 연보를 살펴보니 그동안 도리미 작가가 발표한 책들이 거의 다 국내에 출간됐다. 특이할 만한 점은 일본 유수의 명문대인 교토대를 졸업한 그가 쓰는 소설의 배경은 모두가 교토 그것도 사쿄구라는 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2002년 월드컵이 열렸던 해에 처음으로 교토를 찾았었는데 기온, 난젠지, 킨카쿠지 그리고 철학의 길 등 한번은 직접 가봤던 곳의 명칭이 아주 익숙해서 더 좋았던 기억이다.

주인공 나는 대학교 3학년생으로, 지난 2년을 무위도식하면서 보냈는데 그 연원을 거슬러가면 자신의 숙적이자 단짝인 오즈가 자리 잡고 있다. 주인공의 전언에 의하면, 타인의 불행을 반찬으로 삼아 세 공기 밥을 뚝딱 해치울 정도로 악당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오즈가 해로운 행동을 하느냐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어디까지나 무익함에 초점을 맞춘 그야말로 일련의 얼간이 짓거리들로 하루해를 보낸다.

아마도 작가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나’는 검은 머리 아가씨와 감칠맛 나는 캠퍼스 연애 라이프도 꿈꾸고 하지만 태생적으로 게을러 먹은 위인이라, 귀차니즘으로 모든 것을 방치해 버린다. 대신 항상 ‘타기’할 대상인 오즈와 어울려 수상쩍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갖가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벌인다. 이런 일들에 대한 도리미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구체적인 묘사가 바로 이 책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의 핵심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정작 더 독자 제씨의 관심을 끄는 것은 모두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다다미 넉장반 세계를 중심으로 반복되는 메이트릭스(matrix) 같은 구성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똑같은 특징을 가진 캐릭터들의 등장과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해서 다만, 조금씩 다른 상황 전개가 읽었던 책을 두 번 세 번 읽는 것 같은 환영에 빠지게 한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으리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고체(擬古體)의 문장들이 구어체에 익숙한 독자 제씨에게는 적잖이 당황활 수도 있겠지만, 세 번째 이야기와 네 번째 이야기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뇌리에 의식화되어 어떤 색다른 전개가 펼쳐질지에 대해 기대감이 부풀기 시작한다.

책의 표지와 매장마다 오른쪽 페이지 끝에 매달려 있는 찰떡곰의 일러스트가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교토에서 벌어지는 예의 상황극을 좀 더 시각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일러스트들을 풍성하게 넣어 주었으면 책이 더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떻게 보면 방향성을 잡지 못한 채, 무의미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을 청춘들을 계도하는 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어느새 낭만이라는 어휘가 사라져 버린 채, 더 좋은 학점이수와 취업이라는 절체절명의 난제 가운데 허우적거리는 우리네 대학 청춘들이 떠올라 조금은 서글퍼지는 수상쩍은 청춘 사내들의 일탈기였다. 이제 곧 출간이 임박했다는 도리미 작가의 새로운 소설 <유정천 가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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