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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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자마자 그야말로 허겁지겁 다 읽어 버렸다. 항상 전위적인 작품들로 파문을 일으키는 장정일 작가가 십 년 만에 발표한 책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이 탑재되어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장정일 작가의 소설 귀환에 즈음해서 많은 신문에서 “제대로 된 우파 청년”이 탄생했다는 기사들 쏟아냈다. 그동안 한국 문학계의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좌파 지식인 청년들이 아니었던가, 그에 대한 반발 심리에서였을까? 그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성적 담론의 언어적 유희에서 벗어나 뜨거운 감자를 꿀떡 삼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원래 책의 제목을 <금과 은>으로 정하려고 했다고 작가 후기에서 밝혔다시피, 이 책의 주인공 둘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는 빛고을 출신의 금과 부산 출신의 은이다. 금과 은이라는 항상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처럼 그들의 배경은 다르다. 금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지역타파를 외치며 진보운동을 한 후광으로 2003년 막 대통령에 당선되어 청와대로 입성한 노무현 대통령의 보좌관이 되어 고향을 떠난다. 한편, 또 다른 주인공 은의 아버지는 사업이 부도가 나서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게 된다.

진보적인 집안 분위기에도 금은 이상보다는 현실세계에 더 집착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와 반고경이라는 정체불명의 여인과 만나게 되면서, 황음(荒淫)의 세계로 빠져든다. 자 비로소 장정일 작가 특유의 성적 상상이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 가는 과정 속에 리얼하게 펼쳐진다. 한편, 강한 것은 아름답고, 그것이 바로 선이라는 도식화된 이데올로기화 되어가는 시인지망생이자 문학청년이었던 은은 어느 갤러리에서 만난 이름 모를 ‘환영[Maya]의 소녀’에게서 첫 사랑을 느낀다.

같은 대학에 입학한 금과 은은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 알아가게 된다. 장정일 작가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아 엇갈리는 감정의 실타래 속에서 금과 은의 이야기들을 종횡무진 구사한다. 독자들이 무척이나 궁금해할, 제목 <구월의 이틀>에 대한 설명을 대학 강의식의 구성으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틀’이 상징하는 시간은 바로 인생의 최절정에서 맞이하게 되는 고갱이란 것이다. 아마 찬란한 이십 대를 다 떠나보낸 이들이 들으면, 분개할지도 모르는 이십대 청춘예찬을 들으면서 저절로 ‘난 시절에 뭘 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 시절에 책도 읽지 않았고, 공부도 하지 않는 대신 죽도록 술을 먹었었다.

한 때 대문학(大文學)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우던 은은 예의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환영의 소녀’를 만난 뒤 은밀하게 꿈과 현실이 뒤섞인 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 노트에서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암시하는 글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현실과 괴리된 문학과 글쓰기에 대해 반발하게 되면서 은의 삶의 수레바퀴는 기이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보수진영의 총아로 촉망받던 교수 출신 작은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창 태동하던 뉴 라이트 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그리고 거북(拒北)선생을 만나 자신의 정신적 혹은 성적 멘토로 삼으면서, 걸출한 우파 청년으로 거듭나게 된다.

은과는 달리 스무 살 정도 더 먹은 연상녀와 황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금의 캐릭터에서는 기대했던 극적인 변신 대신 21세기 평범한 대학생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는 반고경과 갖는 ‘헐떡임’이 사랑이라고 착각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닌 반복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진 지옥이었다. 문득 김소진 작가의 어느 책에서 읽었던 “아름다운 지옥”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아마 ‘아름다운 지옥’이 존재한다면 금이 빠져 있던 그 허무의 바다였으리라.

개인적으로 <구월의 이틀>에서 장정일 작가가 구사하는 뉴턴역학적인 동시성(simultaneity)을 바탕으로 한 시간적 구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금과 은이 같은 시간대에서 각기 다른 무언가 - 예를 들어 황음의 세계에 빠진 금의 열락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환영의 소녀를 찾아 헤매는 은의 방황 - 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역설적이게도 그 행동들은 나중에 서로에게 상대적 파문을 일으킨다. 이런 방법을 통해, 장정일 작가가 서술한 다양한 인간 삶의 또 다른 층위들에 대한 묘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읽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겠지만, 나는 작가가 의도했다는 “우파청년 탄생기”라는 관점보다 꿈을 잃어버린 채 학문의 상아탑인지 아니면 취업소개소인지 모르게 되어 버린 대학에 갇혀 청춘을 저당 잡힌 이 땅의 젊은이들에 대한 장정일 작가의 일갈로 <구월의 이틀>을 받아들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가슴에 와 닿은 문구는 바로 ‘나한테 절실한 책을 읽어라’는 작가의 선언이었다. 아마 책 좀 읽는다는 책쟁이들이라면 무슨 뜻인지 바로 알 수 있으리라. 오래전 빙하시대를 불태워 버릴 기세를 가진 열정을 품고 있던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다. 참, 작가가 후기에서 <구월의 이틀>의 속편에 대해 완벽한 구상을 해두었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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