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심연 을유세계문학전집 9
조셉 콘라드 지음, 이석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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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을 이야기하면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을 이야기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사실 콘래드의 원작보다 코폴라 감독의 영화가 대중적인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을유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이 책의 표지 역시 영화의 스틸컷이 장식하고 있었다.

폴란드 태생(정확하게는 우크라이나)의 조지프 콘래드는 폴란드 유수의 가문 출신으로 제정 러시아에 반대하는 반정부활동을 하던 양친을 차례로 여의고 1878년부터 영국 상선에서 일하게 됐다. 선원으로 인도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콩고 등을 누비면서 훗날 작품 세계에 다양한 영감을 준 모티프들을 축적하게 된다. 세기말이었던 1899년에 발표된 <어둠의 심연>은 10년 전 벨기에령이던 콩고 자유주(벨기에 국왕이었던 레오폴드 2세의 사유지)를 직접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쓰였다.

이야기는 착취와 억압의 식민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호령하던 19세기 말,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불렸던 영국 템스강 위에서 넬리호라는 작은 배 위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말로(Marlow)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말로는 같은 배에 탄 다른 네 명의 동료에게 자신이 체험했던 기이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물론 화자는 다른 인물로, 소설 속의 소설이라는 액자식 구성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말로는 당시 영국의 식민주의를 고대 로마의 그것에 비유하며, 야만과 문명의 대결이라는 전통적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지도에 많은 관심이 있던 주인공은 콩고 강에서(소설에서 실제 지명에 대한 언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역업을 회사의 증기선 선장으로 채용되어, 미지의 탐험에 나서게 된다. 제국주의자들은 구슬이나 하찮은 면제품이나 황동선 같은 허섭스레기들을 가지고 원주민들로부터 귀한 상아를 착취하는 불공정 거래를 해오고 있다.

말로의 주된 임무는 강의 상류에 있는 내륙교역소에 가서 수집된 상아를 운반해 오고, 특히 커츠라는 이름의 신비에 쌓인 교역소장을 데려오는 것이다. 일단의 순례자들과 함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들의 여정은 미스터리 그 자체이다. 작가의 뛰어난 미개발 원시세계에 대한 묘사와 함께,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어 가듯 커츠라는 인물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이 조합을 이루면서 원주민과 커츠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우상화의 단계에 이를 정도의 외경심을 품게 되는 기이한 현실에 말로는 혼란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국, 자신이 직접 커츠를 만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소설을 통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커츠의 우상화는 마치 폴리네시아와 뉴기니 일대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화물숭배(貨物崇拜)가 떠올랐다. 소설의 곳곳에서 보이는 야만과 문명의 충돌이라는 식민시대의 이분법적 구조는 아프리카/유럽 혹은 원주민/문명인이라는 대립각의 날을 세운다. 원주민들이 병든 커츠를 위해 벌이는 서구인들의 사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의식과 제의들 역시 그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보인다. 소설이 쓰인 그 시절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주제가 보편화한 오늘날에 과연 문명이 선이고, 원시/야만은 악이라는 대결구조가 유효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편, 서구인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렇게 원하던 상아를 얻기 위해 야만적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문명인 대표로 나선 말로는 커츠를 찾아 나선 길에 오두막 근처 말뚝 위의 머리통을 보고서 기겁하지만, 자신의 표현대로 같은 조상을 하는 원주민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너무나 값없이 깎아내리는 역설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같은 인간으로서 그들도 이성과 지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부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아직 독서 훈련의 부족 때문인지 무척이나 다양한 텍스트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어둠의 심연>의 단면만을 캐낸 것 같아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19세기 말, 상업 자본주의로 무장한 서구인들 침탈의 시기에 원시 자연의 세계에서 인간성 본질에 대한 질문과 자연에 대한 도전과 응전의 모험기를 그린 조지프 콘래드의 걸작을 만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것에 대한 충분한 보답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한 번 <지옥의 묵시록>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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