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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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헌책방에서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와 만나게 됐다. 작년 여름에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그리고 얼마 전에 읽은 <야구장 습격사건>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나게 되는 오쿠다 히데오의 책이었다. 사실 내가 이 책을 그 수많은 책 중에서 집어든 이유는 바로 모두 5개의 단편 중에 <3루수> 때문이었다. 얼핏 살펴보니 야구 이야기였고,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바로 구매를 결정해 버렸다.

프로야구 십 년 차 베테랑이자 해마다 3할 타자에 올스타 출전경력을 가진 3루수인 반도 신이치는 개막전은 앞두고 연습 중에 1루 송구에 자신감을 잃고, 연달아 악송구를 저지른다. 그것도 한두 번이면 좋으련만 완전히 감을 상실해 버렸다. 결국,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라는 의견에 사실상 <공중그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라부 종합병원의 이라부 이치로라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게 된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아서 이 이라부 이치로라는 기발한 캐릭터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었던 나는 바로 그 캐릭터에 빠져 버리게 된다. 환자를 붙잡아 자신의 육감적인 사이드킥인 간호사 마유미에게 바로 비타민 주사를 놓게 하는 만행을 거듭하지만, 우선 환자와의 묘한 공명을 통해 문제에 본질에 다가가는 그의 실력에 놀라게 된다. 책을 계속해서 읽게 되면서 느낀 점이지만, 이렇게 기발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오쿠다 히데오 작가의 실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이렇게 멋진 캐릭터는 그의 다른 작품에 계속해서 등장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

<3루수>를 비롯해서 나머지 4편의 이야기들의 초점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신감을 잃고,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헤매는 화자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소통과 대화를 통해 말하기 부끄러운 이야기를 결국엔 이라부 이치로 의사에게 술술 풀어내게 한다. 소설의 특이한 점 중의 하나는, 이야기들이 모두 실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라부 이치로의 관점이 아닌 상담 환자들의 시각에서 전개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야기의 객관성을 확보한다고나 할까. 아울러 작가의 빛나는 유머는 곳곳에서 지뢰처럼 폭발한다. 어쩌면 이렇게 맛깔스러운 이야기들을 창조해낼 수가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끄트머리가 뾰족한 물체에 공포를 느끼는 선단공포 증세를 보이는 야쿠자, 서커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공중그네 묘기에서 매번 실패하는 곡예사, 잘 나가는 장인의 가발을 벗겨 버리고 싶은 너무나도 강렬한 욕망에 시달리는 이라부의 동창의사, 그리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서 너무 많은 작품을 발표한 다작작가의 고민을 엉뚱한 괴짜 의사 이라부 이치로는 한 방에 날려 버린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각각의 주인공들에게 오쿠다 히데오 작가는 매번 돌발적인 위기상황을 설정해 준다. 이들은 모두 이런 위기를 극복해내야 하는 힘겨운 임무를 부여받는다. 야쿠자는 보스에게 충성을 표시하기 위해 단도로 혈판장을 써야 하고, 스로잉 입스(YIPS) 증상을 겪는 3루수는 실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팬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런 설정 속에서 예상을 뒤엎는 촌철살인의 유머들이야말로 이 책의 진수처럼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소시민들에 대한 위로처럼 다가온다.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의 말처럼, 의사 앞에 서면 누구나 다 평등한 환자일 뿐이다.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존경을 받고,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이라고 하더라도 심신의 병리현상으로 의사를 찾아왔다면 마땅히 치유 받아야 하는 환자라는 말이다. 그렇다, <공중그네>의 키워드는 바로 “치유”였다. 남모를 자신만의 비밀을 가진 이라도, 도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순진하고 어수룩해 보이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 이치로 앞에서는 무장해제당하고 만다.

개인적으로 이라부 못지않게, 개성적인 사이드킥으로 등장하는 마유미짱에게 매력을 느꼈다. 전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조연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물론 남다른 비주얼과 튀는 복장의, 나태해 보일 정도의 간호사지만 환자의 팔뚝에 비타민 주사를 놓을 적에는 맛 간 의사 이라부를 보좌하는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에 읽은 <공중그네>는 오쿠다 히데오의 재발견이었다. 지난 2004년 일본의 나오키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이라부 이치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 더 풀>(2002)과 <면장선거>(2006)도 곧 읽어야겠다. 심신이 피로한 분들에게, 이라부 이치로표 비타민 주사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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