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여인의 속삭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6
알론소 꾸에또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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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 출판사의 일루저니스트 그 여섯 번째 이야기인 <고래여인의 속삭임>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자마자 바로 작가인 알론소 꾸에또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분명히 페미니즘 계열의 소설인데, 이 글을 쓴 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왜냐구? 어쩌면 이렇게 여성들의 심리 묘사를 잘 집어내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남성 작가였다. 그는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페루 리마에서 열심히 작가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페루 가톨릭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고래여인의 속삭임>의 플롯은 간단하다. 사십 대 초반의 유능한 국제부 신문기자인 베로니카 로스가 주인공이자 화자로 등장한다.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녀에게 벌어진 한 편의 공포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을 글 속의 글, 다시 말해서 액자식 구성으로 풀어낸다.

이웃 콜롬비아 보고타 출장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래 같이 거대한 옛 친구(그녀는 친구라는 표현을 거부한다) 레베카를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 몰래 만나 같이 읽은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같이 듣던 친구였지만 어느 사건으로 말미암아 지난 25년간 전혀 교류가 없다가 우연을 빙자한 필연으로 만나게 된다.

주인공 베로니카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피트니스 센터를 다니면서 다이어트를 하고 파티에 갈 때마다 타인에게 돋보일 화장과 드레스를 고르는데 시간 투자를 아끼지 않는 그야말로 사회에서 성공한 인텔리 여성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특히 알론소 꾸에또 작가의 베로니카 화장술에 대한 묘사는 이 작가가 정말 남자인가 할 생각이 들 정도로 세심한 터치를 보여준다.

한편, 페르난도 보테로의 화풍을 연상시키는 레베카는 뚱뚱한 몸매와 튀지 못하는 외모 때문에 늘 고독이 그녀의 벗이자, 먹을 것으로 위로로 삼는다. 이모가 물려준 유산으로 백만장자, 아니 천만장자가 된 레베카는 어느 순간 오래전 친구 베로니카의 삶 속으로 뛰어들면서 이 두 친구 간의 관계는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 소설이 순간, 미스터리 스릴러로 돌변한다.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레베카가 베로니카가 일하는 신문사로 수도 없이 전화를 걸고, 베로니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심지어는 그녀의 정부 패트릭이 사는 아파트 위층 맨션을 사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베로니카는 경악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과거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걸까?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 됐던 25년 전의 사건으로 알론소 꾸에또는 독자들을 유인한다.

베로니카와 레베카라는 상반된 캐릭터들의 대비를 통해, 꾸에또 작가는 현대인들의 외모 지상주의에 일침을 가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는 캐릭터인 베로니카의 강박적 다이어트는 레베카의 폭식과 상극을 이룬다. 하지만, 그 둘의 내면에는 모두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또 사랑받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베로니카의 흔들리는 가족과의 관계 역시 문제로 다가온다. 첫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일 니코와의 관계를 끝내고, 서둘러 결혼하게 된 지오반니와의 결혼생활은 열정, 애정 그리고 의무감의 관계로 소멸하여 간다. 오로지 아들 세바스티안만이 가정에서 그녀의 위로가 될 뿐이다.

25년 전 주변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던 레베카는 자신의 비밀친구 베로니카로부터 적극적 옹호를 원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결정적인 순간에 레베카와 선을 긋고, 그녀를 모욕한다. 그 순간, 레베카는 그야말로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이로부터의 배신은 그 숱한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결국, 레베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폭발시키면서, 이 둘의 위태위태한 우정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제목만 듣고서는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같은 에로틱한 느낌이 들었다. 고래여인의 속삭임이라니…….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캐시 베이츠 주연의 영화 <미저리>가 떠올랐다. 한편, 다른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작품들과는 달리 암울했던 과거의 정치적 이야기들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알론소 꾸에또 작품의 변별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꾸에또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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