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전쟁 -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 우리역사 진실 찾기 2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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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 학과 출신의 재미사학자라는 특이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백지원 씨의 <조일전쟁>을 읽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에 일어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 대전란을 나름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전이라는 시각으로 재해석한 아주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일반적으로 대륙에 붙어 있는 반도국가인 우리나라가 육전에 강하고, 해양국가인 일본이 해전에 강할 것이라는 상식은 이 책을 읽는 동안 공중분해가 되고 만다. 조선 건국 이래, 이렇다 할 전쟁을 치른 적이 없는 조선의 육군은 그야말로 허수아비 같은 존재였고 무로마치 막부가 붕괴된 이래 120년간의 전국시대를 겪은 일본 육군은 세계 최강이었다는 것이 이 책을 쓴 백지원 씨의 주장이다. 게다가 문(文)보다 무(武)를 숭상하는 일본 사무라이들은 어려서부터 검술과 창술 등의 무예를 익혀, 실전에서 조선군을 상대할 때 일당백의 기량을 지녔다는 냉철한 분석을 시도한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지러운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과 명을 정복하겠다는 터무니없는 과대망상증을 가지고, 천하를 품에 안은 후 몇 년간 치밀한 전쟁 준비 끝에 1492년 4월 조선정벌에 나서게 된다. 조선 정벌의 이면에는, 전국시대를 끝냈지만 평화가 정착되지 않았고 전투와 싸움에 이골이 난 사무라이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겠다는 무척이나 현실적인 계산이 뒤따랐다.

한편 저자의 표현대로 이웃나라 일본의 두목이 조선을 ‘식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동안, 조선에서는 주자성리학이 판을 치면서 저자가 꼽은 임진오적 중의 수괴에 해당하는 ‘등신’ 선조의 무능력함과 매일 같이 벌어지는 당쟁과 관료들의 부패로 인해 국가 기강은 바닥에 떨어지고, 국가 시스템이 마비될 지경에 다다르고 있었다. 게다가 동방의 왕국 조선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악랄한 신분제에 의한 차별로 인해 능력 있는 인재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펼칠 수가 없는 그야말로 ‘개 같은 나라’였다고 백지원 씨는 혹평을 하고 있다.

전쟁 발발 전에 일본의 침략이 임박했다는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가 방어시스템에 대한 재고는 물론이고 그에 대한 방비책이 전무했다는 사실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나마 훗날 성웅으로 꼽히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발발 1년 2개월 전에 전라좌수사로 임명이 되면서, 남해 바다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맞짱을 뜰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것 정도를 꼽을 수가 있겠다.

자, 이제 본격적인 임진왜란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군인 출신 박통 시절에 동병상련 식으로 우상화가 진행된 상승장군(常勝將軍) 이순신에 대한 역사에 근거한 실체적 접근으로, 만들어진 신화를 구축(驅逐)하기 시작한다. 조선 해군의 주력선인 판옥선은 일본군이 보유한 함선에 비해 화포 등의 무기가 잘 정비되어 있어, 해상포격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다. 임진삼대첩 중의 하나로 꼽히는 한산대첩 역시 이길 전투를 당연하게 이긴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오히려 13척의 함선으로 10배가 넘는 일본 해군을 상대했던 명량해전이야말로 이순신 장군의 빛나는 승리의 핵심이란다.

아울러 간신 이미지가 덧씌워진 원균과의 갈등 역시 전공에 대한 장계를 조정에 올리는데 있어 이순신이 페어플레이 하지 않아서 둘 사이가 틀어진 것이라고 조목조목 읊조리고 있다. 좀 더 나아가서 일본 해군을 쳐부수는데 있어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진 거북선의 활약 역시 지나치게 과장이 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사실 당시의 기술로 철갑을 두른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으며, 그 느려터진 기동력 때문에라도 일본군 박멸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뛰어난 무기였다면 왜 3~4척이 만들어진 다음에 다시 만들지 않았겠느냐는 저자의 주장이 어느 정도 먹히는 느낌이 들었다.

임진왜란 극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핵심으로 저자는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 지적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첫 번째로, 조선을 돕기 위해 명군의 파병을 꼽고 있다. 사실 전쟁 다음 해인 1593년 1월 명군의 진공에 이은 조명연합군의 평양성 탈환이야말로 임진왜란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일본군의 보급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한 전국에서 기의한 의병들의 활동 마지막 세 번째로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서의 활약이 그것이다. 조선 곳곳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의병들의 맹활약으로 원정군에게 필수적인 보급문제가 전선이 길어질수록 어려워졌다. 그래서 뱃길로 보급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남해바다에서 떡하고 버티고 앉아 일본 해군의 진로를 가로 막는 이순신 장군의 존재는 그야말로 일본 침략군에게는 눈엣가시 같았으리라.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오탈자를 유심히 보는 편인데, <조일전쟁>은 유난히도 오탈자가 많아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작가가 재미사학자여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았을 텐데 어쩌면 이렇게 오탈자가 많은지 정말 놀랐다. 게다가 주로 일본 지명과 인명에 대한 표기법도 통일되지 않아서 어디서는 도쿠가와가 도꾸가와로, 또 큐슈와 규슈가 병용되면서 헷갈리기도 했다.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모리 데루모토의 영지에 관해서도 425쪽에서는 120만석이라고 했다가 또 439쪽에서는 170만석이라고 되어 있고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데 있어서도 신중하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거슬렸다. 그러니 사소한 오탈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임진왜란 전체를 다루는 저자의 시각이 아주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쟁의 발발 원인으로부터 시작해서, 당시의 시대상, 경과, 전쟁에 관련된 인물들의 조명 그리고 전후의 영향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한 연구에 찬탄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뒷부분에 실린 10장 이후의 이야기들은 조금은 사족(蛇足)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미야모토 무사시의 이야기가 임진왜란과 무슨 연관이 있나 싶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임진왜란을 다룬 <조일전쟁>을 통해 그동안 미처 모르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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