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 다빈치 art 4
앙리 페뤼쇼 지음, 강경 옮김 / 다빈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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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드가와 반 고흐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번에 다빈치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를 읽다 보니 그 누구보다 파리의 몽마르트르의 본질적인 모습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로트렉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들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누군가가 오래 전에 절판된 구판본을 구한다는 포스팅을 보고서,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다. 아마 재출간 요청이 꾸준하게 들어와서인지 다빈치 출판사에서는 올해 다시 이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서점에 달려가서 이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바로 읽지는 못하고, 두 달 만에야 비로소 다 읽었다.

프랑스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툴루즈 백작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난 앙리 마리 레몽 드 툴루즈 로트렉 몽파(이하 툴루즈 로르렉으로 부르겠다)는 남프랑스의 알비에서 1864년에 태어났다. 십자군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툴루즈 가문의 후예인 로트렉은, 근친결혼의 후유증 탓인지 8살과 9살 때 각각 양쪽 다리를 다치면서 152cm에서 성장이 멈추고 만다. 이런 장애가 로트렉의 남은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모두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툴루즈 가문의 영향으로 인해, 어린 로트렉 역시 그림에 소질을 보이기 시작한다. 허약한 신체를 가지고 어린 앙리를 위해 아버지 알퐁스 백작은 아들을 승마 연습장에 데리고 다녔다. 앙리는 특히 말에 열광을 했는데, 성인이 돼서도 서커스와 말에 대한 그림들을 계속적으로 그렸다. 아울러 알퐁스 백작은 아들을 동물화가로 유명한 르네 프랭스토의 아틀리에에 데리고 다녔는데, 이 과정에서 로트렉은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개발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사고 후에, 파리로 거처를 옮긴 로트렉은 당시 환락가의 대명사로 불리던 몽마르트르에서 비로소 자신의 영혼을 뉘일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를 찾게 된다. 내가 찾았던 파리의 몽마르트르는 나를 포함한 세계 각처에서 모인 관광객들에게 점령된 관광지였다. 하지만 19세기말의 몽마르트르는 화가 툴루즈 로트렉에게 환락과 쾌락의 공간인 동시에, 자신의 작품 활동에 있어 마르지 않는 소재공급처였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한 폭음하는 습관과 찬사와 비난을 한꺼번에 안겨준 무희, 가수 그리고 창녀들의 이미지를 바로 몽마르트르에서 찾게 된다. 정상적인 사랑을 구가할 수 없었던 그는, 밑바닥 인생들로부터 불완전하나마 위로와 평안을 얻는다.

신체적 장애로 인해 세상의 편견에 시달려야 했던 로트렉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유머로 항상 주변에 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평생지기였던 루이 파스칼과 모리스 주아양을 비롯해서, 몽마르트르 주점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티드 브뤼앙 그리고 로트렉의 스승이었던 페르낭 코르몽의 아틀리에에서 만난 반 고흐가 그들이다. 그러니까 반 고흐와는 같은 스승 아래서 동문수학하던 동료였던 것이다.

한편 로트렉은 19세기말 프랑스 화단에 지배적이었던 자연주의적 사조보다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몽마르트르의 인물들의 묘사에 더 치중을 했다. 당시 유행하던 일본 우키요에와 자신이 평생 존경하던 드가의 영향에 자신의 특이성이 더해지면서 화가로서의 일가를 이루게 된다. 평생 단 한 점의 그림 밖에는 팔지 못했던 반 고흐와는 달리 로트렉은 일반 대중의 상업적 코드와도 맞아 떨어지는 화가였다.

로트렉은 몽마르트르의 즐비한 카페들이 포스터는 물론이고, 유명한 가수들의 채색 석판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무궁무진한 작품세계를 선보여 주었다. 그의 작품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그는 아름다움조차도, 왜곡과 변형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시도했다. 이런 점에서 포스터나 판화집을 주문했던 고객들은 점점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지만, 잔 아브릴이나 이베트 길베르 같은 이들은 로트렉의 진가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와 진정한 소통의 단계에까지 도달하기도 한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자신의 예술의 정점에 서 있던 로트렉에게 뭍 여성들과 무분별한 관계와 폭음으로 인한 알코올 중독이 그의 정신세계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바로 이 장면에서 남프랑스 아를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동료 반 고흐의 말년이 떠올랐다. 결국 1899년 환각과 착란이 반복되자 어머니 아델 백작부인과 사촌인 타피에 박사는 로트렉을 마드리드가의 정신병자를 위한 요양원에 입소시키게 된다. 이후 화가로서 로트렉의 경력은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결국 반 고흐와 같은 37살의 나이로 로트렉은 자신에게 쾌락과 예술혼을 불어 넣어 주었던 이 지구별을 떠나고 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로트렉의 삶은 참 애절함으로 점철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작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은 어려서 당한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한 장애로 상쇄되면서 비록 자유를 얻기는 했지만, 평생 동안 자신을 괴롭힌 장애와 더불어 살아야만 했다. 어쩌면 그런 장애가 그의 불타는 예술혼의 원동력이 되지는 않았을까? 장애로 인한 추레한 외모 덕분에, 여성들의 끝없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진정한 사랑과는 항상 동떨어진 삶이 오히려 로트렉이 예술에 정진하도록 인도하지는 않았을까?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전혀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툴루즈 로트렉의 삶과 예술을 만날 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로트렉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에게 영향을 준 다른 작가들의 그림들 그리고 다양한 실제 사진들을 통해 로트렉을 재발견할 수 있는 아주 멋진 기회였다. 언젠가 될진 모르겠지만, 로트렉의 활동무대였던 몽마르트르에 가서 ‘빨간풍차’를 보게 된다면 세기말의 로트렉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음꽃이 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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