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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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응준 작가의 <국가의 사생활>이 책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다. 도대체 얼마나 재밌기에 그렇게 입소문이 자자한 걸까? 아쉽게도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이응준 작가의 전작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의 전작들과는 문체나 전개 방식 등에서 상이하게 다르다고 하는데 알 도리가 없다.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확실히 재밌다는거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이야말로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을 한다. 우선 언제인가 우리의 관심사에서 사라져 버린 통일이라는 주제를 필두로 해서, 2011년 어느 날 갑자기 흡수통일이 되어 버린 5년 후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이응준 작가는 담담하게 스케치해내고 있다.

자그마치 120만 명이나 되는 북한 군인들이 사회에 쏟아져 들어오고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무기들이 시장에 깔리면서, 통일 한국에는 폭력이 난무한다.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폭력보다도 어느 순간 2등 국민으로 전락해 버린 공화국 신민들의 처우 문제다. 물론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현재에도 비정규직과 이주민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엄청난 통일비용이 들 미래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작가의 냉철한 분석들이 주도면밀하게 이어진다.

게다가 주인공은 북한 최정예 전사 출신의 리강이다. 그가 하는 일은 (일본 긴자에서 유래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최고급 술집 은좌가 자리 잡은 건물 안에 둥지를 튼 대동강이라는 폭력 조직의 행동대장 정도라고 해야 할까. 냉혈한 킬러로 과거 공화국의 혁명수출 전략의 일환으로 아프리카에까지 가서 그 실력을 보여 주었었다. 그가 속해 있는 대동강 조직의 보스 오남철은 단고기를 먹으며, 부르고뉴산 와인을 마시는 별난 취미의 소유자다.

리강이 아끼는 조직의 후배 림병모가 어느 날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이야기에 박차가 가해진다. 통일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기본 줄거리로 해서, 암흑가의 이면을 다루는 느와르 스타일의 전개는 확실히 독자들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무나 궁금해서, 책장이 절로 넘어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려서 맹목적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 알 도리가 없는 나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분단은 해가 갈수록 공고해졌고 자본이 판을 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통일은 어느 순간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타인의 문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응준 작가가 글 속에서 언급했지만, 20년 전 극적인 통일을 이뤘던 독일 역시 사회주의권에서 가장 부유했다는 동독을 껴안으면서도 엄청난 통일비용으로 휘청거렸다고 한다.

얼마 전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갈팡질팡했던 우리나라가 과연 독일 통일보다도 훨씬 더 많은 비용이 요구될 통일을 감당할 수가 있을까. 경제적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국가의 사생활>에서는 63년간 상이한 체제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갈등에 주목한다. 체제가 붕괴된 이들의 공허한 가슴을 종교나 무속(장군 도령)으로 채우려고 하지만 별무소용이다.

<국가의 사생활>에는 다양한 군상들이 등장하지만, 역시 이야기는 리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공화국 최정예전사가 통일 후에는 일개 조폭 행동대장으로 전락해 버린 비애는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던 장용수의 거울 이미지로 대체가 된다. 변질된 소영웅주의의 화신은 그렇게 레드아이의 힘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고 있다. 어쩌면 그의 일상의 모습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네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게 무엇일까. 궁극의 구원? 어쩌면 그런건 애시당초에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평화통일이 가져다 줄 물질적 번영에 대한 신기루 대신 아파트 공원에 모여 앉아 주인 없는 고양이를 잡아 불에 구워 먹는 이들의 모습에서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술집에서 술에 취한 천사표 아가씨가 손님들을 상대로 해서 전도를 하고, 유물론만을 신봉하는 공화국에서 신내림을 받은 장군도령이 활개를 치는 지독한 욕망의 카니발은 현상을 파괴하는 본질로 다가온다.

속도감 넘치는 전개, 뚜렷한 캐릭터의 설정 그리고 무엇보다 호감을 가질 만한 주제의 선택 삼박자가 빚어내는 <국가의 사생활>은 확실히 재밌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체제전복적인 작가의 상상력이 흡수통일을 택했다는 점이다. 문학에서도 자본주의는 보고 싶어하는 현실만을 다루게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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