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느끼는 낙타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책이 출간되자마자 바로 샀는데, 이제야 다 읽게 됐다. 지난여름 막내집게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싼마오의 <사하라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서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싼마오 아줌마의 열혈 팬이 되어 버렸다. 사막의 모래 한 알까지 사랑해서 모국인 대만을 떠나 사하라 사막에까지 흘러든 싼마오 아줌마의 이야기가 어느 샌가, 가슴 속에 자리 잡은 모양이다.

<흐느끼는 낙타>에서는 <사하라 이야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싼마오와 그의 평생의 파트너 시멘트 머리 털보 호세가 사막생활을 하는 동안 보고 느끼고 경험한 8가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네 보통의 삶과는 전혀 동질성 없는 그런 환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무엇 때문에 그렇게 관심이 갔을까? 그건 아마도 싼마오와 호세의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과 박애 그리고 휴머니즘 때문이 아니었을까?

핍박받는 사하라위 여성들과 벙어리 노예, 그리고 나중에 사하라 독립운동으로 인해 카나리아 제도로 이주를 해서 알게 된 스웨덴 이웃 카를을 보살피려는 싼마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녀의 지고한 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혹자의 눈에는 오지랖 넓은 여인네의 지나친 간섭으로도 보일 수가 있겠지만, 휴머니즘이라는 인류 본성의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백만 가지로 이유로 실천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보다 용기 있는 그녀의 실천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아주 어려서 중앙아시아 일대를 탐험한 헤딘의 전기를 읽고서 언젠가 꼭 한 번 광활한 사막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다. 그런데 왜 다른 곳도 아니고 사막을 꿈꾸었을까? 마치 절대고독을 담보하고 일체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그 도도함 때문에? 도대체 사막의 무엇이 싼마오를 비롯한 많은 이들을 끌어당기는 마력 같이 작용하는지 궁금해졌다. <흐느끼는 낙타>를 읽으면서 싼마오가 기술한 글에서 어느 정도 그에 대한 해답을 본 것 같다. 사하라는 단지 그를 사랑하는 이에게만 자신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드러낸다고 했던가(125쪽). 이 얼마나 매력적인 선언이던가.

싼마오의 카메라에 얽힌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영혼을 담는 기계>는 사진을 찍는 이로써 충분히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개인적인 욕심만 앞세웠더라면, 어렵게 찍은 사하라위 여인네들의 사진을 버리지 않았을 텐데, 자신들의 영혼을 싼마오에게 빼앗기고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한 그들을 위해 조금의 주저 없이 필름을 뽑아내 버린다. 이 이야기는 초반에 등장하는 <벙어리 노예>에서는 사해동포주의(cosmopolitanism)주의자로서 싼마오의 면모와 은은한 공명을 이루고 있었다.

튼튼한 시멘트 머리를 한 호세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싼마오의 기술 역시 솔직 담백하면서도 근 40년 전의 진보적인 그녀의 결혼관을 엿볼 수가 있었다. 상대방을 구속하려다 보면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는 그녀의 말은 명언이었다(216쪽). 카나리아 군도 고메라 섬의 휘파람 말에 얽힌 이야기도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흐느끼는 낙타>에서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는 바로 타이틀로 정한 <흐느끼는 낙타>였다. 1970년대 중반, 사하라의 독립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비화되는 동안 싼마오는 현지에서 예의 사건들을 직접 목격한다. 폴리사리오 민족해방전선(책에서는 유격대로 표현한다), 인근의 모로코와 모리타니 그리고 알제리까지 개입이 되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국제분쟁이 시작된다. 7만 명 남짓 하는 사하라위 인들은 민족자결을 주장하면서 독자적인 국가 건설을 꿈꾼다.

이 와중에 스페인 본국에서 유학한 파시리와 그의 아내 샤이다 그리고 오피뤼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사막을 사랑한 이방인에게도 정치적 분쟁과 그에 수반된 전쟁은 피해갈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아주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다. 이 이야기는 어디선가 읽어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어디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 읽어본 듯한 기시감이 전율적으로 다가왔다.

결국 어느 순간 깨닫게 됐는데, 어려서 죽어라 모으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발췌돼서 실린 글에서 이미 <흐느끼는 낙타>를 읽었던 것이다. 정말 놀라웠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이달의 명작다이제스트’라는 제목으로 한 권의 책들에서 알짜배기만을 뽑아서 실어 주곤 했던 것이다. 아마 근 이십년 전의 일이라 제목도 그 저자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막을 배경으로 해서 펼쳐지는 이 비극적 로맨스는 어린 나이에도 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감동과 재회하는 그 순간의 감동이란…….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흐느끼는 낙타>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싼마오는 언제나 사막인으로 살고 싶어 했었지만, 그녀도 결국 진짜 사막사람들인 사하라위 사람들에겐 이방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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