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습격 - 영화, 역사를 말하다
김용성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최근 불거진 뉴라이트가 주도하는 교과서 파동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역사인식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예전에는 관찬 사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역사는 이제 열린 공간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역사관을 가지고 벌어지는 현상들을 종합해서 판단할 수가 있게 되었다. 오늘날 역사를 접할 수 있는 루트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다. <제국의 습격>에서 지은이 김용성 기자는 이런 다양한 방법론 중에서 영화를 통한 역사 보기의 예를 제시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명확하게 이 책의 서술 의도를 밝히고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래 무자비하게 시작된 서양의 제국주의의 침탈의 근원을 찾아, 식민지화 과정과 그리고 우리의 의식 밑에 깔린 뿌리 깊은 서양우월주의 등을 해명하려는 4대륙에 걸친 긴 여정을 시작한다.

굳이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이론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유럽 제국들은 신대륙에 착취한 금은과 같은 재화를 바탕으로 종래의 지중해 중심의 무역에서 벗어나 대서양을 넘나드는 대양무역에 나서게 된다. 르네상스 기의 상업의 발달로 자본의 축적을 통해, 산업혁명기를 맞아 비약적인 생산의 발전을 이루게 된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네덜란드 등의 유럽 제국들은 아메리카,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로 자원 침탈과 상품 시장 개척을 목표로 한 식민지 경영에 나선다.

아시아에서는 동북아시아 3개국인 중국-일본 그리고 한국 순서로 서구 열강의 강압에 못 이겨 종래의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개항을 하게 된다. 이후의 과정은 각국마다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개되긴 했지만, 일본을 제외하고 모두 전쟁을 겪거나 식민지화되고 만다. 이중에서 홍콩의 예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편전쟁 이후, 100년도 넘게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지난 1997년 중국에게 다시 반환된 홍콩은 현재 1국2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김용성 기자는 <차이니즈 박스>와 <화양연화>로 홍콩에 대한 단상을 전개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인 왕자웨이는 시간보다는 공간적 구성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경향이 짙다. 전작들에서 점프 컷으로 속도감의 미학을 보여 주었던 왕자웨이는 <화양연화>에서는 느린 영상으로 홍콩이라는 공간 속에서 실종된 관계에 중점을 둔다. 마치 오늘을 사는 홍콩인들에게는 이념보다는 홍콩이라는 공간이 더 소중하다는 듯이 말이다.

다음은 이 책의 핵심인 아메리카다. 지은이는 라틴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로 나눠서 서로 다른 장으로 구성을 했지만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으로 대변되는 북아메리카는 하나의 뿌리에서 둘로 나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콜럼버스의 도래 이래, 시작한 스페인의 식민지 경영은 포르투갈을 제외한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석권하기에 이른다. 제국주의 침탈의 공식처럼 선교사와 탐험가들이 앞장서면 그 뒤를 이어 군대가 진주하고, 경찰력과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들이 닥치면서 본국에서 온 정주민들을 지원한다.

원래 그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그들에게 수탈과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 게다가 식민지 경영을 하면서 동시에 이뤄진 노예무역은 인류사의 큰 오점을 남겼다. 식민화 과정에서 발생한 계급구조는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이룬 후에도 계속해서 국가통합과 발전에 저해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아울러 식민 모국에의 종속과 소위 매판자본들의 발호는 민중들에게는 지배계급만 제국주의 국가의 총독에서 자국의 특권계층으로 바뀌게 했을 뿐이었다.

미국의 경우 역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루면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화국 건설을 모토로 삼았지만, 그 자유가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노동력 부족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유입한 엄청난 수의 흑인들은 예외였다. 이런 이유로 해서, 미국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인종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을 통해 내부문제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한 미국은, 본격적인 팽창에 나서게 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 독립전쟁기를 다룬 멜 깁슨의 주연 <패트리어트>와 폴 해기스 감독의 <크래쉬>는 아주 적합한 케이스 스터디라고 할 수가 있겠다. 영국의 폭정에 항거해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독립의 대의를 앞세우지만, 노예제도와 같은 악습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대영제국의 압제에는 항거하지만, 자신들이 같은 인류인 흑인들에게 저지른 폭압은 정당하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모순 그 자체였다. <크래쉬>는 이민자들의 힘으로 세워진 미국이 이제는 더 이상 이민자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서, 빚어지는 인종간의 갈등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수작이다. 나와 다름으로 시작되는 차별이 아닌, 상호간의 이해와 소통의 필요성이 짚어내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는 아프리카의 근현대사는 한 마디로 말해 서구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오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현지에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된 국경선으로부터 시작해서 자원침탈과 인종차별에 갈등을 비롯한 모든 문제들은 바로 식민지배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있다. 특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았던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자원약탈, 부족 간의 정쟁 그리고 소년병 문제에 이르는 오늘날의 아프리카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용성 기자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서구인들의 시선이 아닌 아프리카인들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사실들에 주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동안 우린 너무나 할리우드에서 찍어내는 영화들에 길들여져 온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문법은 오직 돈벌이가 될법한 영화들과 그 짝을 이루면서 우리의 의식구조를 정형화시켜온 건 아닐까? 김용성 기자는 이 책 <제국의 습격>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영화들을 통해서는 새로운 시선에서의 접근을 그리고 조금은 생소한 영화들을 통해서는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들에 대한 계몽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캐나다 정주의 역사에 대해서는 미국의 그것에 비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아카디아(Acadia) 정착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다시 한 번 영상언어로써, 영화의 위력에 대해 그리고 그 다양한 해석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독서경험이었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어는 -> 어느 (21페이지)
2. 야마다 지로 -> 아사다 지로 (74페이지)
3. 중일전쟁 -> 청일전쟁 (77페이지)
4. 오스만트루크 -> 오스만투르크 (97페이지)
5. 스페인총독 -> 갈리아총독 (99페이지)
6. 투르먼 -> 트루먼 (115페이지)
7. 1789년 -> 1798년 (263페이지)
8. but we tried to fight -> but we tried to fight it (27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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