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조선인물실록 - 역사적 인물들, 인간적으로 거들떠보기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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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8년 출판계의 키워드 중의 하나는 “조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작년에 개인적으로 읽은 “조선”이란 말이 들어가는 책만으로도 4권이나 됐다. 이처럼 “조선”이란 키워드를 사용한 책들과 동일선상에 놓여져 있는 <발칙한 조선인물실록>의 저자 이성주 씨는 이미 2006년과 2007년에 소위 “엽기”라는 타이틀을 단 일련의 역사서적을 내면서 자유로우면서도 창조적인 역사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준 바 있다.

<발칙한 조선인물실록>에서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조금은 비틀리거나 왜곡된 인물들에 대한 교정과 더불어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들에 대한 전달에 이르기까지 아주 친절하게 다뤄주고 있다. 일단 각 에피소드들의 소제목부터 눈에 확확 들어온다. <왕보다 소주가 좋아!?>, <노비, 왕에게 딜을 걸다>, <부마 자리 거절했다가 막장 인생이 된 남자> 이 얼마나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들이던가.

이 책을 폈을 때, 가장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는 바로 부마의 자리를 사양했다가 그야말로 가문이 풍비박산이 나서 노비의 지위에까지 떨어진 전 춘천군 지사 이속(李續)의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선 초기의 절대군주 태종의 옹주를 며느리로 들이라는 왕명(?)을 거절했다가 그만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 인물. 호기롭게 부마 자리를 거절하기는 했지만, 왕조국가 조선에서 절대 권력자인 왕의 의사에 반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처절한 교훈이었다.

이 이야기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역시 태종의 즉위에 앞서 2차 왕자의 난의 주인공이었던 태종의 종형이자 태조 이성계의 4남이었던 회안대군 방간(芳幹)의 후예들의 왕족복귀를 위한 꾸준한 노력 또한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왕족에서 순식간에 역적으로 몰려, 평민의 지위에 떨어지게 된 회안대군의 자손들은 왕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수백 년간 탄원을 해서 결국 300여 년만인 숙종 대 조선조 왕족의 족보인 선원록(璿源錄:왕실족보)에 오르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다음으로 우리에게는 한석봉으로 더 잘 알려진 조선의 중기의 명필로 유명한 한호(韓濩)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도 흥미 있는 소재였다. 작가는 어머니와의 ‘떡 배틀’이라는 표현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희화화하면서, 그야말로 붓글씨 하나로 임금 선조의 총애를 받았던 한석봉의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역시 철저한 유교적 가부장 시스템 하의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신분상승을 위한 엘리트 코스인 과거를 거치지 않은 상태로 발탁된 한석봉에 대해,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기존 관리들의 질시는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중앙 요처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지방행정관 자리를 연연해야 했던 그의 한계에서 뛰어난 재능을 살릴 수 없었던 신분제 사회의 모순을 읽을 수가 있었다.

목화씨를 고려로 밀반입해서 일약 스타로 알려진 문익점에 대한 사실도 우리가 알고 있던 거의 전설에 가까운 전승과는 확연하게 다른 이야기였다. 고려시대 공민왕의 신하로 중국 원나라의 사신단의 일원으로 파견되었던 문익점은 그야말로 줄을 잘못 서게 되서 고려의 입장에서 보면 대역죄인이었으나, 운 좋게도 원나라에서 ‘수출금지품목’도 아니었던(이 점이 중요하다) 목화씨를 고려에 소개하면서 의생활에 일대 혁신을 가져 오게 되었다. 저자의 바로 이런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교정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우리네 역사 교육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인물은 바로 조선의 14번째 왕이었던 선조다. 조선이 개국한 이래, 전대미문의 국난이었던 임진왜란 당시의 임금으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자 유교국가 조선에서 모든 이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던 그가 한양으로 진격해 오는 왜군에 맞서 도성을 수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만 살겠다고 평안도 의주로 몽진한 상황은 마치 한국전쟁 당시 서울 사수를 외치고서는 도망가 버린 이승만 정부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7년 대전란이 끝난 다음, 공신을 정하는 와중에서 정작 전쟁에서 왜군을 맞아 싸운 이순신과 권율을 비롯한 장군들과 의병장들에 대해서는 인색하면서도 자신을 따라 몽진했던 인물들에 대해서는 더없이 한없는 아량을 베풀어 주었던 쪼다같은 군주라고 이성주 씨는 규정하고 있다. 분조를 해가면서, 각처의 의병들을 규합해 왜군에 항거했던 세자 광해군에게는 전위하겠다는 정치적 쇼를 하는 등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믹 드라마 같았다. 임진왜란 당시 출병했던 명나라에 대해 재조지은(再造之恩:거의 망하게 된 것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이라고 하면서 결국 전란극복은 자신의 힘이었다라는 식의 자기합리화와 끝없는 사대주의는 훗날 인조 시대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같은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성주 씨의 이런 창조적이면서도 딱딱하지 않은 대화체의 서술이 마음에 들었다. 역사란 모름지기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통해 현재에 배우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딱딱하고 정사(正史)적인 입장만을 취할게 아니라 재밌으면서도 독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대중적인 글쓰기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권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임의 대로 글을 쓰지 않는다는건 책의 권말에 수록된 참고 문헌들의 목록들을 보면 바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역사 서적들이 계속적으로 출간이 돼서 어렵고 딱딱하다는 기존의 이미지들을 벗고 좀 더 적극적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들었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폐루 -> 페루 (11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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