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세계사 - 지금의 세계지도와 역사를 결정한 59가지 전쟁 이야기
김성남 지음, 진선규 그림 / 뜨인돌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전쟁이란 무엇일까? 독일의 유명한 군사전문가인 클라우제비츠에 의하면 전쟁은 고도의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정치적으로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았을 때, 최후의 방법으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그 유명한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자도,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야말로 상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인류사에서 전쟁은 필요악처럼 그렇게 존재해 온 것도 사실이다. 김성남 씨가 글을 쓰고, 진선규 씨의 멋들어진 일러스트가 수를 놓고 있는 <전쟁세계사>에는 표지에 나오는 타이틀대로 “지금의 세계지도와 역사를 결정한 59가지 전쟁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제1장에서는 전쟁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부제로, 전쟁터에서 뛰어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전사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에피소드는 테베의 150쌍의 동성연애자들로 구성된 신성군단 이야기와 바이킹의 광전사(狂戰士) 베르세르크가 광대버섯에 들어있는 암페타민 다시 말해 각성제를 먹고 전장에서 그렇게 미친 듯이 흥분해서 날뛰었다는 가설이었다. 테베의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신성군단은 그런 끈끈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당시 최강의 육군으로 불리던 스파르타군을 대파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단다. 아무래도 전사 개개인의 개별 능력이 중시되는 고대의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전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다음 장에서는 전쟁 도구와 기술의 발달사를 그리고 있는데,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고대 최강의 무기는 로마군의 제식 병기로 에스파냐에서 생산된 철로 만들어진 단검 글라디우스와 7세기 중반 칼리니코스가 발명했다는 동로마제국의 비밀병기 “그리스의 불”이었다. 단순한 운동에너지를 전달하는 타격 무기로서의 검의 기능성에 찌르기를 겸한 글라디우스는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고 팍스 로마나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핵심 무기였다. “그리스의 불”은 당시 욱일승천하던 이슬람 아랍군의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717-8) 동로마 제국을 위기에서 모면하게 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수훈을 세우기도 했다. 물론 이런 기술들은 훗날 개발된 기관총 같은 대량살상무기에 비교할 순 없겠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 보았을 때 전세를 뒤집을 만한 첨단기술이었다.

이 책이 다른 전쟁을 다룬 책들과 변별이 되는 특징 중의 하나는 작가가 역사 속의 전쟁에서 어떻게 보면 비중 없이 다루어졌을 일반 병사들의 시점에서 종군기를 작성했다는 점이다. 특히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왕의 동방 원정을 따라 출정한 밀로스의 가상 일기는 인상적이었다. 변변한 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끝없는 알렉산드로스 왕의 원정에 신물을 내면서도 전투에서 이기고 약탈로 한몫 챙기겠다는 병사의 상상에서 당시 전쟁의 양상을 그려볼 수가 있었다. 아주 참신한 아이디어였던 것 같다.

역시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웅들의 일대기 중에서는 동로마 제국의 명장으로 유스티아누스를 보좌한 벨리사리우스와 나폴레옹에 대해 폄하하기 위해 숙적 영국의 매스 미디어에서 나폴레옹이 단신이었다는 프로파간다가 눈길을 잡았다. 동로마 제국의 기초를 닦은 유스티아누스였지만 명장 벨리사리우스를 계속해서 기용하면서도, 혹시나 그가 역심을 품고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카르타고와 이탈리아 원정에서 대성공을 거둔 벨리사리우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 주지 못하는 모습에서 황제와 뛰어난 장군간의 조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역시 프랑스 대혁명 이래, 전 유럽을 휩쓸었던 나폴레옹을 의도적으로 깎아 내리기 위해 그의 키가 작았다는 주장을 내놓은 영국의 매스 미디어들의 선전전 덕분에 아직까지도 나폴레옹에 대한 이미지 훼손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마지막으로 인류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전쟁들을 다루고 있는데 아마 무엇보다도 서방과 동방의 첫 대결이자 이후에 역사를 가른 페르시아 전쟁 당시의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을 저자는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전쟁의 승리로 인해 그리스 문명 세계가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승리 운운하는 것은 좀 지나친 도약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지상전을 맡았던 스파르타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전제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아테네 역시 극도로 억제된 신분에 의한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찌됐던, 페르시아의 침공 실패로 그리스 문명은 기사회생하게 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 건 사실이다.

13세기 코레즘제국을 초토화시키고, 계속해서 이슬람 세계를 향해 파죽지세의 진군을 하던 몽골군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부근의 아인잘루트에서 이집트와 시리아 맘루크들의 연합군을 상대하게 된다. 그동안 시리아와 이집트의 맘루크들은 중동의 패권을 두고 다퉈 왔지만, 몽골의 위협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연합하게 된다. 한편, 훌라구가 이끄는 몽골군의 주력은 대칸[大汗]을 위한 쿠릴타이를 위해 몽골로 돌아가고, 키트보가가 이끄는 잔여 병력은 맘루크 연합군의 매복에 걸려 전멸하고 만다. 이슬람 세계를 무적의 몽골군으로부터 지켜낸 이 전투에 대해 모르고 있어서 그런지 짧지만, 인상적인 에피소드였다.

전반적으로 책의 구성을 보았을 때, 참신한 시도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책 읽기에 부담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개설서적인 의도로 편집이 되어서 그런진 몰라도 깊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도 무엇보다 좋았던 일러스트레이터 진선규 씨가 그린 일러스트들로 유머가 배어 있으면서도 적재적소에 배치한 일러스트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제 막 세계에 유서 깊은 전쟁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로서 제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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