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없는 파리 - 프랑스 파리 뒷골목 이야기
신이현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보통 사람들의 삶의 현장, 파리를 누비다

이 책의 표지를 처음 보면서, 한 가지 사실에 놀랐다. 작가 신이현 씨가 글 쓰는 작가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진’도 작가가 직접 찍었다니! 책을 보면 알게 되겠지만 사진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런데 신이현 작가는 책에서 그 사진들이 없으면 안 될 것만 느낌이 들 정도로 멋진 사진들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파리를 상징하는 명소들이 아닌 정말 못해도 파리에서 수년은 산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장소로 독자들을 인도하는 첫 걸음을 내딛는다.

참으로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작가는 파리가 관광객들만을 위한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는 선언을 한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몰려드는 유럽 대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파리지만, 프랑스 근대사를 통해 연을 맺게 된 전 식민지였던 알제리, 튀니지,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 등과 중국인들과 모로코 인들이 기존의 프랑스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이 아니던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이 빚어내는 오색찬란한 스펙트럼이야말로 오늘날 파리의 바탕이 된 게 아닌가.

그래서 작가의 시선은 우리네 관광객들이 흔히 찾는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혹은 베르사유가 아닌 진짜 파리지앵들의 숨결이 묻어나는 곳들을 찾아 나선다. 벨빌과 메닐몽탕의 허물어져 가는 벽에 그림을 그려대는 무명의 작가 네모의 그림이나, 어느 이름 모를 수녀원에서 만든 무화과 잼을 찾아 나선다던가, 거리에서 파는 싼 가격으로 허기를 때울 수 있는 파니니와 유대인 샌드위치 파엘라를 어디에 가면 살 수 있는지 넌지시 알려 준다. 예전에 도살된 소나 돼지고기들을 저장하는 창고로 쓰이던 곳이 현재 무명작가들의 아틀리에로 사용이 되고, 한 때 흥청거리던 유곽지역인 캥쾅푸와 거리가 보보스족들의 거주지로 거듭나는 과정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파리는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대도시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각양각색의 삶의 군상들이 매일의 삶을 영위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따라 오게 되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서로 피할 수 없는 명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 주게 되면, 반대급부로 무게중심이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자고로 파리의 건축에 큰 획은 그은 오스만과 르 코르뷔지에 같은 이들은 참으로 고심했을 것이다. 동시에 자신만의 색깔도 보여 주어야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고심의 과정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파리의 뒷골목 풍광인 것이다.

작가는 무조건 오래된 것이 좋다는 식의 옛것에 대한 찬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옛 것이 어떻게 해서, 오늘날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균형감 있는 시선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핵심주제다. 게다가 디테일한 묘사의 경우에는,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필치로 글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작가가 인도하는 파리의 뒷골목들을 누비는 듯한 상상력의 세계로 흡입시킨다.

한 달짜리 유레일패스를 끊고, 쉴 새 없이 파리의 이곳저곳을 누비는 여행객들이 아닌 마치 그 유구한 세월을 두고 유유히 흐르고 있는 센 강의 강물처럼 작가는 우리의 시선이 미처 미치지 못한 파리의 자그마한 뒷골목들과 다양한 삶의 풍경들을 잔잔하게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에펠탑 없는 파리>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두 번이나 파리를 찾았는데도 내가 파리에 가서 구한 게 무엇인가하고 묻게 되었다. 이 책 <에펠탑 없는 파리>는 나의 세 번째 파리행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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