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 - 죽음을 부르는 만찬
윌리엄 레이몽 지음, 이희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기에 앞서 영어 제목인 <TOXIC>의 뜻을 찾아봤다. TOXIC에는 ‘유독한, 치명적인 그리고 중독(성)의’란 뜻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 텍사스에 거주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독소>의 작가 윌리엄 레이몽(William Reymond)이 정한 이 제목만큼 이 책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단어도 없을 것 같다. 그는 주변에서 아주 간단한 관찰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방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어느 뚱뚱한 여성이 힘겹게 걷는 것을 보고 간단한 질문을 던진다. 왜 저 여인은 저렇게 뚱뚱한 걸까?

표지에서 리얼 다큐멘터리라고 선언했듯이, <독소>는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적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예전에 인류에 빈곤과 가난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먹고 살아남는 생존이 절대선이었지만, 이제 그런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현대에 이르러서는(물론 여전히 그런 기아 상태에 허덕이는 이들도 많다) 운동부족과 과다영양섭취로 대변되는 비만이 바로 공공의 적 1호가 되어 버렸다. 예의 빅 투(big two) 이론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비만사태를 모두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였다. 게으르고 식탐하는 이들이 비만과 과체중의 위협에 시달린다는 논리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걸까? 바로 이 시점에서 윌리엄 레이몽은 문제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2001년 미국을 뒤흔들었던 9·11테러 당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폭파되면서 약 3,000명의 인명들이 살상되었을 때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었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연간 40만 명이 되는 이들이 비만과 과체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수치이다. 테러사건에는 정부가 나서서 법을 제정하고 호들갑을 떨어 대면서 그 위협을 알리기 위해 그 난리법석을 떠는데, 왜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엄청난 의료비용과 고통 끝에 죽어가는 명백한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걸까?

<독소>의 저자 윌리엄 레이몽은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뚱보들에 대해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미국의 거대기업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소비자들의 건강을 볼모로 더 많은 탄산음료와 프렌치프라이들을 팔아먹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고안해 내기에 이른다. 이미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어대는 음식량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칼로리 양을 훨씬 넘어섰고, 이런 추세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 초일류기업들은 단 것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잡식성 동물의 딜레마와 먹보이론에서 한 단계 더 나간 신경마케팅의 영역까지 침투를 해서 자신들의 이윤의 극대화에 매진하고 있다. 산학이 연계된 이러한 움직임에 우리 소비자들은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이 되고, 특히나 가치판단의 기준이 제대로 서지 않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어려서부터 탄산음료와 햄버거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에 무의식중에 서서히 길들여지고 있다.

수년간 당뇨병과 비만을 연구해온 하버드대학 출신의 조지 브레이 박사는 미국에 광풍처럼 번지고 있는 비만유행병에 대해 기존의 열량 과다섭취와 운동부족이라는 빅 투 이론에 더해, 바이러스-약품 그리고 독소를 꼽고 있다(144p). 그리고 브레이 박사는 바이러스와 약품을 제외하고 비만의 주범으로 “독소”를 지목하고, 작가는 우리가 매일 매일 먹어대고 있는 독소의 본질을 파헤치는 작업에 착수한다.

윌리엄 레이몽은 비만 사태의 첫 번째 주범으로 코카콜라로 대표되는 탄산음료를 지목한다. 이미 70년대 초반 미국 의료 시스템을 붕괴시켰던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농무부 장관으로 얼 버츠를 임명하면서, 이번에는 미국인들의 식탁을 붕괴시키는 치적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뉴딜정책 이래 이루어져 오던 미국의 자영농 시스템 대신, 구 소련에 곡물판매로 비롯된 농산물 가격파동을 계기로 몇몇 대기업들이 거의 농산물 생산을 독점하다시피 하게 될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탄산음료 제조에 쓰이던 사탕수수 대신에, 최신 화학기술을 이용해서 훨씬 달면서도 30%나 비용이 저렴하게 공급을 초과하고 남은 대량의 옥수수에서 추출해낸 액상과당(HFCS:High-fructose corn syrup)이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대량소비 되기에 이른다.

미국의 거대 음료회사들은 이렇게 확보된 저렴한 탄산음료들을 기존의 시장에서 소화시켜낼 수가 없게 되자, 빅사이즈 전략과 동시에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마케팅전략으로 자신들의 영원한 고객들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비용의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자, 이제 탄산음료에 이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값싼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제공하는 미국 전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기업식 축산업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자.

이미 공업화된 미국의 축산기업들은 소비자들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윤추구에만 혈안이 돼서, 각종 호르몬과 항생제로 범벅이 된 소, 돼지 그리고 닭들을 도살해서 싼값의 육류들을 대량생산해낸다. 게다가 그렇게 엄청난 양의 가축들이 만들어내는 축산폐수와 배설물이 만들어 내는 악취 등 환경오염문제는 경악할 수준이다. 그렇다고 채소도 예외는 아니어서 에틸렌가스, 염소수, 인공착색제 심지어는 방사선까지 쬔 야채들이 우리네 식탁에 버젓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농약잔류물질의 폐해 역시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 비만사태의 상당 부분의 책임이 소비자들의 건강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이윤의 극대화만을 생각하는 거대기업들의 잘못된 윤리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윌리엄 레이몽은 고발하고 있다. 또한 비만을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국민들에게 유의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조차 거대기업들의 로비에 휘말려서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고 있으며, 오로지 비만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해괴한 논리만이 판을 치고 있다.

이에 대한 작가는 결연하게 자신의 깨달음을 예로 보여 주면서, 액상과당(HFCS)과 햄버거 패티로 대표되는 유해식품들 대신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제품들을 이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정치적 행위라는 발언을 통해 독자들의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당장 나부터 그 좋아하는 웰치(Welch)를 끊고, 참살이의 길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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