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동안 많이 들어본 작가인 리안 모리아티의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을 읽었다. 난 처음에 리안 모리아티가 남자인 줄 알았다. 책의 표지를 펼치고 나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소설은 잘나가는 회사 중역 마샤가 임사 체험을 하게 되는 극적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등장한 구급대원 야오. 마샤의 심장이 멎었다.

 

그리고 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오스트레일리아 자리봉이라는 곳에 자리 잡은 건강휴양지 평온의 집에 아홉 명의 완벽한타인들이 모이면서 이야기의 수레바퀴는 다시 돌아간다. 한물간 로맨스 소설가 프랜시스 웰티는 아직 발표하지도 않은 자신의 새로운 소설에 대한 혹평을 보고 그만 충격을 먹는다. 아직도 로맨스 소설이 소비되는구나 하는 순간도 잠깐, 각각의 사연을 가진 나머지 8명의 사람들이 평온의 집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다음 주자들은 제시카와 벤 부부다. 이 젊은 부부들은 남자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무려 람보르기니를 타고 나타났다. 남걱정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프랜시스는 그들이 마약거래상이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런데 나중에 드러나게 되지만, 챈들러 부부의 집에 도둑이 들었고 그것을 위로하기 위해 제시카의 어머니가 보낸 복권에 당첨되면서 그들은 그야말로 벼락부자가 되었다. 문제는 그 어마어마한 행운이 평범한 삶을 살던 제시카와 벤에게 그들이 원하지 않는 그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평온의 집을 찾은 이유는 부부상담이다.

 

어떤 이들은 살을 빼기 위해(중년의 다이어트는 왠지 필수라는 압박감을 소설은 전달한다), 삶의 위기에 처한 이들은 치유를 위해, 인터넷 연애사기를 당한 소설가는 그저 안식이 필요해서, 한 때 오지 리그 풋볼선수로 뛰던 왕년의 스포츠 스타는 무언가 삶의 전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다양한 이유로 건강휴양지를 찾는다.

 

문제는 평온의 집이 일반적인 유형의 건강휴양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게다가 놀라지 마시라. 소설 초반 심장이 멎어 죽은 것으로 보인 마샤가 무려 원장이다. 컨트롤 프릭(control freak)으로 볼 수 있는 마샤는 자신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젊은이 야오와 한때 자신의 비서였던 딜라일라를 고용해서 새로운 방식 치유를 시도한다.

 

물론 초반에 비싼 비용을 들여 건강휴양지를 찾은 이들은 지나친 통제에 불만을 표한다. 휴대전화 같은 전자기기는 물론이고 일체의 건강에 해로운 알코올과 간식들은 사전에 차단된다. 그리고 명상과 요가, 마사지 같이 딱 들어도 건강에 좋겠구나 싶은 그런 프로그램들이 제시된다. 압권은 4일 간의 침묵과 매일 이루어지는 혈액검사였다. 아니 낯선 이들과 대화하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일체의 대화를 중단하라니, 이게 무슨 해괴한 상황인가. 하지만 9명의 타인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자랑하는 마샤의 강권과 하루가 다르게 효과를 보이기 시작하는 프로그램 때문에 어느 정도 효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한다. , 독재자 같은 마샤의 수중에 놓인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이들은 제각각 다른 문제들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다. 누구는 친구들과 수다라는 방식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알코올에 의존하기도 한다. 특히 흥미로운 가족 문제를 제시하는 마르코니 부부를 살펴 보자.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들의 내면에는 3년 전 죽은 아들 잭에 대한 슬픔과 고통 그리고 연민이 자리 잡고 있다. 마샤가 고안해낸 해괴하기 짝인 없는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은 그동안 꽁꽁 숨겨온 내면의 고통을 상대방에게 드러내고, 스스럼없이 완벽한 타인들과 그것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마샤의 준비한 프로그램이 일방적으로 나쁘다는 비판이 옳은 것일까.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도 작가는 강조한다. 영원한 것은 없더라. 고통도 행복도 즐거움도, 그 어떤 감정도 영원한 건 없겠지.

 

소설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은 서로 모르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알아 가고 또 부지불식간에 닥친 위험을 돌파해 가면서, 자신들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극복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각각의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빠른 구성은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떻게 결말이 나는가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그러니 초반에 지지부진했던 나의 독서도 어젯밤에 새벽까지 그야말로 내쳐 달렸다. 로맨스 한 스푼, 비극적인 스토리 한 큰 술, 싸이코패스급의 스릴러 한 컵 그리고 밀실트릭 한 움큼으로 적당히 버무린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은 나에게 참 재미진 독서의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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