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탐험가 마젤란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내금 옮김 / 자작나무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국 나는 슈테판 츠바이크 전작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먼저 그의 책들부터 사서 모으고 있는 중이다. 20세기 가장 탁월한 전기 작가로 명성을 날린 츠바이크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 일단 <에라스무스 평전>을 읽었고, 다음 주자는 16세기 불가능해 보였던 세계일주에 나선 모험가 마젤란의 일대기를 그린 <위대한 탐험가 마젤란>.

 

츠바이크는 서론에서 향료가 대항해시대의 출발점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성지회복이라는 모토를 앞세운 십자군원정 역시 향료 수입이라는 경제적 이유도 한몫했을 거라는 합리적 추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유럽은 동방의 인도에서 오는 후추 수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집트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확보하는데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유럽의 후추를 비롯한 향료 수요는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유럽의 모든 부가 동방으로 흘러들어갈 심각한 무역적자 이슈가 대두되었다. 후추는 당시에 부르는 게 값이었다. 12단계나 거쳐야 하는 유통 상의 문제로 가격은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유럽 사람들은 향료 무역을 장악한 이슬람 세력의 패권을 쳐부수기 위해 다른 방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동방으로 가는 새로운 항해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유럽의 변방 포르투갈이 이 대모험의 선두 주자로 나서게 된다. 포르투갈의 엔리크 황태자(항해자 앙리)는 대항해를 위해 준비하는 데만 한 세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준비에 착수한다. 기존 우주론의 창시자였던 프톨레메우스의 지리 정보 대신 실제 항해에 나선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수집하고, 원양항해를 위한 새로운 선박 제조 기술개발에 나섰다. 결국 항해자 앙리의 적극적 후원 아래,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에 도착했고 뒤이어 바스코 다 가마가 대망의 인도에 상륙하는 개가를 올리게 됐다. 포르투갈은 비로소 아프리카와 인도 그리고 말래카에 이르는 세계정복을 시작했다.

 

전기의 주인공 마젤란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은 대체로 이러했다고 츠바이크는 쓰고 있다. 4계급 귀족 출신의 24세 청년은 포르투갈 인도 원정대의 일원으로 역사 무대에 등판한다. 인도와 모로코에서 7년 동안 조국을 위해 싸운 영예로운 기사에게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1세는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마젤란의 태도가 문제가 아니었을까? 절대군주 시대에 일개 군인의 무례한 태도에 국왕은 마젤란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유럽을 제외한 전 세계를 제멋대로 분할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미지의 세계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포르투갈이 이미 아프리카 해안과 희망봉을 거쳐 인도에 이르는 항해로를 개발하자, 스페인도 몸이 달았던 모양이다.

 

이 때 포르투갈 국왕의 마수에서 벗어난 마젤란은 세계일주라는 중세적 아이디어를 일거에 쳐부수는 대원정을 스페인의 젊은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서 허락받는데 성공한다. 이방인에게 그런 행운이 처음부터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조국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한 마젤란은 사방의 반대와 견제를 무릅쓰고 강철 같은 신념을 바탕으로 신중하면서도 치밀한 계획으로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그리고 미지의 동방의 세계로 가는 위대한 탐험에 나서게 된다. 265명 그리고 다섯 척의 함대로 구성된 마젤란 원정대는 세비야를 출발해서 대양을 향해 나선다. 그의 목적은 동방무역을 장악한 포르투갈의 방해를 받지 않는 새로운 무역 루트를 개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을 돌아 태평양을 횡단하겠다는 당시로서는 무모해 보이는 계획이었다.

 

아무리 치밀한 성격의 마젤란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주로 스페인인들로 구성된 선상 반란의 불길은 막을 수가 없었다. 스페인 귀족 출신 장교들은 사사건건 함대 사령관에게 반기를 들었고, 잘못된 정보 때문에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지 못해 사령관마저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공개적으로 반란을 도모한다. 타협을 모르는 사나이는 수하의 충성을 다하는 인원들을 동원해서 신속하게 반란을 진압하고 주모자들을 처형시켰다. 마젤란의 독재적인 리더십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이상을 가지고 불멸의 신화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그의 부하들은 지도자의 이상과는 다른 속세의 욕망만을 추구했다. 막탄 섬에서 마젤란이 어이없게 전사한 뒤, 지리멸혈한 그들의 모습을 츠바이크는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더 이상 부하들을 달랠 길이 없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마젤란은 태평양으로 가는, 훗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지금도 통과하기가 어렵다고 소문난 그곳을 난파되고 반란을 일으켜 본국으로 돌아간 배를 제외한 세 척의 배로 통과한 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젤란 원정대의 위험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잔잔한 태평양 바다를 지나면서 심각한 식량 부족으로 수많은 대원들이 기아에 시달리다가 죽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필리핀 제도를 발견한 마젤란은 세계일주 완성이라는 신화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신중하기로 유명한 사령관은 연이은 성공으로 자만했던 걸까? 성공은 부주의를 낳는 법인가 보다. 막탄 섬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작은 무력과시에 나섰던 사령관은 원주민들과의 소규모 전투에서 어이 없이 전사하고 만다. 성공과 신화를 창조하기란 어렵지만, 추락은 순식간이었다. 지도자를 잃은 원정대는 지리멸렬했다. 포르투갈의 방해공작과 난관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본국 스페인에 도착하는데 성공한 이들은 고작 18명 뿐이었다. 바스크 출신 배신자 세바스티안 델 카노와 그의 동조자들이 세계일주의 모든 영예를 독점한 것은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영광의 마지막 순간에 마젤란은 함께 할 수 없었지만, 그는 인류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해 왔던 세계일주를 통해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이것은 중세적 세계관을 허무는 역사의 결정적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훗날 파나마 운하가 개발되면서 굳이 위험한 마젤란 해협을 통과해야 할 필요는 없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현실로 만든 마젤란의 위대한 업적이 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서 읽은 마젤란 전기를 보면서 세계일주하는 꿈을 꿨었는데, 위대한 전기작가 츠바이크는 마젤란이 원정에 나서던 시절에 대한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유와 원인을 파악하고 원정의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합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냈다. 이 책을 통해 왜 특별한 기록자가 위대한 사업에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아킬레우스에게는 호메로스가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